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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다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한 문장들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by 생각창고

소설 읽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단편 소설을 즐겨 읽는데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우선 짧아서 시간상 부담이 적고요 그 와중에 재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짜여진 구성과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을 짧은 지면에서 그려내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를 보는 재미가 무엇보다도 큽니다. (구성과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소개할 때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체호프의 소설들은 이것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체호프는 보통 현대 단편 소설의 완성자라고 불립니다. 예일대 교수이자 문학 평론가인 헤럴드 블룸은 그의 책 '헤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에서 투르게네프와 체호프를 거쳐 헤밍웨이에서 완성되는 단편 소설의 계보를 이야기하는데요 그만큼 단편 소설에서 체호프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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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는 유모와 풍자가 있고요('관리의 죽음', '드라마'),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습니다('공포').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역량이 정말 뛰어난 작가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체호프 단편의 백미는, 아름답고도 우아한 문장들입니다. 보고서 쓸 때 차용할 수 없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문장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평생의 문장 및 어구를 뽑으라면 주저 없이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한 빛줄기'를 뽑는데요, 단편소설이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 역할도 한, 아주 희한한 경험도 덕분에 했습니다.


정말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한 문장'을 써보고 싶고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하게'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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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의 모범을 보여주며

일에 임하는 자세 및 목표를 문장 하나로 제시하여 주었기에 이 책은 나에게 고전입니다.




안개 기둥들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어떤 것들은 서로 껴안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인사를 나누었고 어떤 것들은 수도사가 넓은 소맷자락에 감긴 손을 기도하듯 하늘로 치켜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공포' 중에서-


왜 음악과 미술을 거부하지요?

이해를 못하니까.

그는 겸손하게 말했다.


그가 종잡을 수 없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올가 이바노브나는 알아듣기가 쉬웠다.


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베짱이' 중에서 -


모든 사람들이 무미건조해서 마치 물방울처럼 서로 구별이 안 되는 이 고장 사람들을 참을 수 없어요.

-'베로치카' 중에서-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휘익 바람이 불어오더니 권태며 먼지와 같은 오늘 하루 동안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미녀' 중에서-


칼날처럼 차갑고도 우아한 빛줄기가 물병 위에서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다.

-'티푸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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