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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Aug 08. 2015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 한줄평 : '다름'과 '틀림'의 경계를 어떻게 정할까? ★★★★ 


1. 다름과 틀림, 그 구분하기 어려운 경계선

   

 주인공이 창조한 괴물은, '다름'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합니다만,

 가장 공을 들여, 신중하게 접근했던 가정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외모가 다르다는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몇 차례 시도를 더 합니다만 끝내 인간 사회에 진입하지 못합니다.


 그의 '다름'이, 그리고 이 다름을 수용하지 못한 인간사회가 결국 그를 '틀린 존재'로 만들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인간의 외양을 갖추었으나 인간이 아니었기에 학습을 통해서, 진솔하게 다가감을 통해 진정한 인간사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자신을 창조한 주인공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없애줄 짝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둘 만의 공동체를 이루겠다고, 다시는 인간사회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하고(나름 타당한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그 이후 파국을 더욱 향해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지요.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극단으로 몰고 가거나 핍박하면 그들은 틀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그것은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겠지요.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람들을 몰아갈 때, 비극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을, 굳이 소설을 통해서만은 아니더라도

실제로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 소설의 묘미가 여기에 있는데요,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조금은 더 넓은 포용력을 가지라고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간일까요? 어떤 형상을 가져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름을 인정하고 있나요?  


2. 제목에 관하여


제목인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주인공의 성(last name)입니다.

주인공의 성을 따라서 제목을 지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괴물에게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았다는 것, 나름의 시사점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괴물을 주인공의 다른 자의식이 투영된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은 설명력이 약한 것 같고요,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묻고 책임 및 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만든 피조물에 대해서 스스로 감당을 못하고 끝내 모든 비극을 초래하고 마니,

의도와 목적성이 불분명하고 단순한 열정만으로 시작하고 진행한 일이 어떤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이지요.


 '차가운 머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뜨거운 가슴'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아니, 뜨거운 머리를 통제하지 못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며, 결국 본인이 모두 질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상징적인 장치가 아닐까 합니다.   


3. 소재에 관하여 : 인조인간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인조인간이 등장하는데, 물론 이 작품과는 만들어지는 과정도 다르고 역할도 많이 다릅니다만 둘 다 굉장히 수준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간 및 인간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간의 창조'라는 소재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줍니다만 자칫하면 싸구려 결과물을 낳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이 작품의 저자인 메리 셸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전통을 자랑하는 소재를 이용,

싸구려 공상과학소설을 만든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사색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만들냈다는 것입니다.(비슷한 시기 전후로, 또는 문학사를 통틀어서 인조인간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공부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작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소재를 택해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풀어가라고 충고하는데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소재이나 재미있게 풀어가기 어려운 이야기 거리를 탁월하게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4. 건조한 창조자와 피조물과의 관계 : 자기 이야기만 하고, 거리를 좁히지 못하다.

   

제가 읽은 번역본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과 괴물과의 대화를 읽다 보면 마치 인간과 기계가 대화하는 듯한, 서로간에 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굉장히 건조한 문체로, 의도적으로 작가가 기록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원어로 읽어보면 답이  나올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괴물은 상당히 무겁고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고요. 이 두 등장인물들은 서로간의 간극을 끝내 좁히지 못하고 파국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지요. 이 건조함으로 점철된 둘 간의 대화와 좁혀지지 않는 거리, 비극적인 이야기 전개에 대한 나름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고 결론을 내봅니다.


5. 빅토리아 시대 영국, 과학문명의 발전과 그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다


저자인 메리 셸리가 살았던 시기는, 대영제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입니다. 산업혁명으로부터 촉발된 과학문명의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합리주의 모더니즘적인 사고가 지배하면서 불가능은 없다라는 우월감이 팽배했던 시기이지요.  

신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생명의 창조라는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을 법도 한데요,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강하면 그만큼 이 힘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은 법,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이 무한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학문명에 대해 나름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6. 여담입니다만 저자인 셸리가 동료들과 나누기 위해 재미 삼아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배경을 알고 나서 만약 이 사람이 맘 먹고 달려 들면, 정말 감당 못할 걸작도 가능했겠구나라는 생각도 동시에 했지요. 동료들 중 한 명이 그 유명한 바이런입니다.


다름과 틀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만들었기에,

나하고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기에,

이 '프랑켄슈타인'은 내 맘대로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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