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피어나는 4월.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는 듯한 이 계절을 두고,
시인 T.S. 엘리엇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말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꽃들은 만개하고, 세상은 생기로 가득한데
그는 왜, 봄을 잔인하다고 말했을까?
나는 매일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그 길가에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러나 차량 사이로 아무 저항 없이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며,
문득 가슴이 서늘해진다.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꽃잎은 마치 눈물 같다.
차도 위를 이리저리 떠도는 꽃잎들은, 어디론가 가야 할 길을 잃은 내 마음과도 닮아 있다.
나는 눈앞이 환히 밝아도, 여전히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
정처 없이 부유하는 꽃잎들처럼,
나 또한 이 봄날 속에서 갈피를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찬란한 풍경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꽃은 피었지만, 마음은 겨울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봄이 주는 설렘은 때때로 더 큰 공허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나에게도 4월은 분명 잔인한 계절이다.
봄은 언제나 희망을 속삭인다.
추위를 견딘 끝에 찾아온 생명의 계절.
벚꽃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령처럼, 매년 우리에게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속삭인다.
우리는 그 소리에 기대어, 다시 한번 마음을 열고, 다시 한번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그런 봄이 와도 우리의 현실은 늘 같을 수 있다.
되풀이되는 하루, 무뎌진 감정, 어디론가 향하지만 멈춘 듯한 발걸음.
봄의 따뜻함조차 녹여내지 못하는 공허가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은 해마다 그 자리에 피어났고,
우리는 그 꽃잎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간다.
방향을 잃은 듯 흩날리던 꽃잎도 결국은 땅에 닿고,
흙이 되어 다시 꽃을 틔우듯이, 우리의 방황도 언젠가는 길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이 찰나의 봄빛을 가슴 깊이 품으며
한 걸음,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딛는다.
어쩌면 그것이, 잔인한 4월을 살아가는 가장 따뜻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비록 이 계절이 아프게 다가올지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다시 피어날 수 있는 조용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오늘도 나를 일으킨다.
여러분의 4월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