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휩쓸린 뒤에야 깨닫는 것들

by 이영미

쉰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지 못할 때가 많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후회할 일을 만들고, 뒤늦게 돌아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제는 좀 다르게 반응하자’, ‘이번에는 참아보자’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감정이라는 녀석은 예고 없이 솟구쳐 올라 나를 덮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후회와 자책,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내게 부족했던 건, 절제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성숙한 방식이었다.

직장에서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겸손보다 교만이 앞설 때가 있었다.

내 의견이 더 옳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늘 후회와 미안함뿐이었다.

그 미안함조차도 “죄송합니다”라는 형식적인 말 한마디로 덮어버리곤 했다.

정작 내가 남긴 상처의 깊이는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반성은 진짜일까? 혹시 나 자신을 위한 위안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질문도 오래가지 못한다.

‘다음에는 좀 더 참자’, ‘똑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라는 자기 합리화 속에서 금세 희미해지고,

어느새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말이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나를 돌아보던 어느 날,

뜻밖의 장면에서 나는 ‘진심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30년 넘게 야쿠르트 아주머니들, 지금은 ‘프레시 매니저’라 불리는 분들을 관리하는 점장으로 일해왔다.

얼마 전, 함께 일하던 매니저님이 퇴사하시면서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내가 직접 그 구역을 인수인계하게 되었다. 외곽의 공단과 시골 마을이 섞인 구역.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나는 한동안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석한 시골길, 낡은 간판, 적막한 골목. 이 길을 누군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갔을 것이다.

문득, 혼자서 이 구역을 묵묵히 개척해 온 매니저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이 길을 걸었을 그분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왜 이토록 고된 길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물론 일이었겠지만, 단지 ‘일’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감내하셨을 것 같았다.

그 외로웠을 길을 묵묵히 견뎌낸 시간들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 깊은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단 한 마디로 표현했다.

“너무 대단하십니다, 매니저님.” 내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렸다.

이 짧은 말이 과연 그분의 마음에 와닿았을까?

혹시 그저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았을까?

나는 진심을 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분이 지은 짧은 미소 속에서 확신할 수 없었다.

말로는 다 담지 못한 마음이, 공기 중에 맴돌다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나는 자만심이 많은 사람이다.

감정에 휩쓸리고, 후회를 반복하면서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하루를 마치고 일기를 쓰던 그 시간처럼,

지금도 글쓰기는 나를 가장 조용히 변화시키는 리추얼이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조금씩 더 알게 된다.


나는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심이 말 한마디로 흩어지지 않고, 행동으로 전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단순한 후회를 넘어서고 싶다.

감정이 앞설 때 한 걸음 물러서고, 말하기 전에는 한 번 더 생각하며, 상대방을 먼저 바라보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며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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