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리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가족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일상은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순간이다.
부드러운 담요를 덮고 책장을 넘기거나, 향긋한 차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위엔 광안대교의 불빛이 물결처럼 번지고,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밤공기가 볼을 스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소음이 조용히 가라앉고, 나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충전하는 시간이 있기에, 다시 시작되는 일상 속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단순한 생활의 터전이 아닌 가장 안전한 안식처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쉼을 찾는 건 아니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다.
그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땀’으로 씻어내는 사람이다.
주말이면 늦잠을 자도 괜찮을 텐데, 오히려 평일보다 더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두 시간 넘게 달린다.
운동복은 땀에 젖어 축축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은 환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반짝이는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의 먼지를 모두 씻어낸 사람처럼 평온하다.
그는 숨을 고르며 말한다.
“푹 쉬었다.”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쉼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적으로 ‘휴식’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이라 정의된다.
하지만, 과연 쉼이란 단순히 멈추는 것일까.
나처럼 일주일 동안 세상 속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
조용한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무는 것.
그게 누군가에게는 가장 깊은 회복일 수 있다.
하지만 남편처럼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몸을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마음의 여백을 채우는 사람도 있다.
쉼은 결국,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내 안의 리듬을 회복하는 행위 인지도 모른다.
가끔 남편은 내게 묻는다.
“같이 아침 운동 나가볼래?”
나는 이불속으로 몸을 더 깊이 숨긴 채 대답한다.
“운동 후 상쾌함이 있다는 건 알지만, 내겐 이불속이 더 달콤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피식 미소 짓는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
누군가는 책 속에서 쉼을 찾고,
누군가는 여행지의 바람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떤 이는 대화를 통해, 또 어떤 이는 혼자만의 음악 속에서 자신을 회복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쉼을 찾아가고, 그 다름 속에서 나를 돌아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쉼’을 소중히 여기는 걸까.
매일같이 쉴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주말은 과연 이토록 달콤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낸 날들 끝에 맞이하는 고요함.
그것이야말로 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위로다.
고된 하루 끝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마음을 녹이고,
남편이 땀을 흘리고 와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이 온몸을 깨우듯이.
쉼은, 나를 다그치지 않고 다독이는 시간이다.
서로 다른 쉼을 살아가는 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더욱 유연하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나에게는 집 안의 고요한 시간이, 남편에게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시간이,
각자의 쉼이 된다.
휴식에도 정답은 없다.
오직 ‘나답게 쉬는 방식’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