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 snake, a different way, 2023.5.26
기다림을 억누른다는 건 지나간 상황을 뛰어넘고자 실행하는 처음이다.
- 부활 3집 「기억상실」 커버 문구 中 -
좋아하는 것을 정신없이 사랑하고 집중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 나의 일을 남들 앞에서 '쇼 앤 프루브(show and prove)'하며 즐기는 순간은 어떤 느낌이 들까. 26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런 일을 펼칠 순간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6년을 홀로 방에서 즐긴 디제잉을 남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 그것도 강의실에서 발표과제라는 목적으로 말이다. 나의 2023년 5월 26일. 그 하루를 위해 한 달을 준비했기에 방 안에서 믹셋(mixset)을 구성했던 지난날의 기억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떨리고 벅차오른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일컬어지는 밴드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故 김재기(부활 3대 보컬)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다. 그는 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 바 있다.
"(「사랑할수록」이 120만 장 팔렸다는 이후) 희열의 극이다. 또 그런 희열의 극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 그 자체도 희열이다."
이는 곧 한 길을 묵묵하게 걷고 길 끝에서 값진 결과를 얻어낸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극한의 카타르시스요, 그런 카타르시스를 티 내지 않아도 얻는 명성과 인정은 다른 차원 너머에 있는 희열을 향하게 하는, 끝이 시작이 되는 순환의 굴레이다.
음악이 좋아서, 그림이 좋아서 시작하는 예술가의 처음은 꽤나 큰 다짐이 필요하다. 최근에 알게 된 국내 DJ인 38 sun의 경우도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과감히 이 씬(scene)에 뛰어들었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의 경우는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학생'과 '발표과제'라는 이중장치로 구성된 안전장치 내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꽤 축복이다. 그런 앞날을 두면서 최근에 나는 5년 전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게 됐다. Dj snake의 「Above the noise」가 바로 그것이다.
I represent the people that have no hope. I represent all the young kids with big dreams. One of us made it. This is just the beginning. I'm DJ snake. Impossible is not a French.
- Beats presents: Above the noise (DJ snake) -\
다큐멘터리 링크: https://youtu.be/BtKHnWhLMX8
그를 처음 본 건 2018년 잠실에서 진행한 스펙트럼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봤다. Pardon my french 브랜드의 옷을 입고 온 그의 태는 차원이 다른 귀티가 흘렀고 강렬한 베이스 음악과 뭄바톤을 앞세운 믹셀은 하우스 음악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줬다. 2019년에도 EDC 축제에 내한 온 바 있지만 이 때는 너무 피곤해서 먼저 나왔다.
앞서 설명한 DJ 38 sun은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디제잉을, 나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모험을 하지 않고 강의실에서 수업의 목적으로 디제잉을 한다면 DJ snake의 경우는 완전한 밑바닥에서 시작을 했기에 그 시작점이 다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를 그만두고 레코드 샵에서 일을 하면서 각 분야에서 유명한 아티스트들을 마주하기도 했으며 빈민촌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의 친구들과 벽에 락카 스프레이로 예술을 하는 그라피티와 랩을 하며 경찰에 쫓기지만 '뱀'처럼 잘 탈출하면서 지속적으로 일탈을 저지르는 등 파란만장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런 밑바닥에서 음악시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세상에 자신의 모국인 프랑스를 알리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다큐멘터리의 끝에선 프랑스를 대표하는 개선문 위에서 그의 노래 A different way를 재생하며 다큐의 막을 내린다. 이와 별개로 snake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DJ Afrojack의 경우도 발로 직접 뛰어다니며 자기 자신을 어필할 것을 최근에 영상으로 제작한 바 있다. 이들의 삶은 결국 어떤가. 세계를 주름잡는 DJ가 되어 신을 주도하고 다른 카타르시스를 향해 멈추지 않고 정진하고 있다.
이번 발표를 위해 발표 한 달 전부터 믹셀 리스트를 갈아엎고 수정하고 작업하면서 밤잠을 설쳤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공연을 한다는 게 처음이라 어떻게 보면 가슴 떨려서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커서 그런 거 같다. 그래서 5월 시작부터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만 2번을 갔다 올 정도로 병원에 신세 지는 일이 잦아졌지만 그래도 좋았다. 방구석에서만 고뇌하던 지난날의 나에게 그 하루는 어떤 지향점이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나에게 5월 26일은 지난날의 쾌락보다 다른 차원의 카타르시스이자 또 다른 시작점이 될 날이다. 2주 전 대학교 앞 굴다리에서 디제잉 파티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지방에도 디제잉 문화가 드디어 개인의 취미로만 사유되지 않고 축제만이 아닌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에 수록된 그의 싱글 A different way는 이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가사라는 점에서 가사에선 어떤 고귀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발매곡에 대한 일종의 마케팅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가 앞서 설명한 가치와 신념은 과연 이성에 대한 사랑에 국한되는 가사인지에 대한 회고를 가지게 한다.
지금 시점은 참 재밌으면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시기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레이브 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싹을 틔움랑 말랑한 시작점에 서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굴다리 파티 학우분들이 됐든 어떤 개개인들이 됐든, 혹은 내가 됐든 우리는 문화 정착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선두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디제잉을 선망만 하는 이들에게는 용기와 자극을, 우리에겐 자부심을, 전체적인 그룹엔 건강한 문화의 정착과 재미를. 지난겨울 크리스마스 압구정에서 건국대 디제잉 동아리 부회장을 지내고 있는 친구의 클럽 공연을 보러 간 경험을 떠올려본다. 장소를 넘어, 학벌을 넘어, 우리 사이 존재하는 많은 간극을 넘어 이건 단순한 유흥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이자 삶이다. 불가능은 없다. 하고자 하면 다 될 것이고 벽을 허물고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단순한 소음 위에 있는 그 너머의 다양한 가치를 찾아내고 일궈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