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실 디제잉 -
"두환 씨, 디제잉하시면 혹시 수업 때 오셔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쪽으로 발표하면 굉장히 재밌을 거 같네요."
4월 중순. 교수님께서 나를 불러 취미에 관해 발표 주제를 선정해 주시고 기회를 주셨다. 머리가 부스스하고 추레한 복장의 나는 아직도 꿈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계속 바라왔던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공연하는 것을 작은 꿈으로만 목표했는데 의도치 않은 과정에서 그 초라하지만 웅장한 시작점에 선 셈이다.
대중음악의 이해. 사실 이 수업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먼저 듣게 됐고 졸업한 학과 동기가 내게 귀띔을 해줬다. 학교 내 다양한 음악에 자신만의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발표 수업을 재밌게 이끌어간다고 한다. 한 수강생의 경우에는 logic 프로그램을 이용해 짧게 음악을 프로듀싱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난 이후 재생해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미 학교에 전자 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동아리는 발견도 못했을뿐더러 마지막 학년 후회 없이 즐겨보자는 느낌과 오랜 시간 품어온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꿈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방학 중에 접한 소식을 통해 집에서 기약 없는 발표일을 위해 홀로 헤드폰을 끼고 공연 준비에 착수했다.
무릇 디제이란 음악을 찾고 들려주고 같이 노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적절한 테크닉을 가미해 흐름이 끊기지 않고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항상 믹셋(mixset)을 구성할 때나 상상도를 먼저 그릴 때엔 대중적인 음악과 심심하지 않은 전자 음악 두 곡을 어떤 식으로 자연스럽게 내 믹스에 녹여낼지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3달의 준비 과정에서 미친 듯이 틈나는 대로 음악을 강제로 청취하게 만들었으며 상상의 원천들이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힙합, 팝, 록 음악의 가사를 추출해서 전자 음악 비트 위에 얹어 매쉬업 작업을 하거나 기존 대중적인 음악 원곡을 틀다가 어떤 테크닉으로 자연스럽게 전자음악에 믹싱할 지를 계속 생각한 거 같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모토로 둔 생각은 '전자 음악(EDM)'이라는 단어에 대해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져보는 것이었다. 전자음악은 'EDM'한 단어로 정리되는 가벼운 개념의 음악이 아니다. 이는 개인적 소관으로는 미국 시장 입맛에 맞춘 단어이며 각 장르의 '맛'을 죽이는 단어라고 생각해서 대중들 앞에서 소개할 때나 사용하지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4/4 정박의 128 bpm으로 이뤄진 하우스음악, 소리의 질감으로 청자에게 다가가는 장르인 테크노 외 DnB(Drum and Bass), Hardstyle, trance, trap, dubstep 등 다양한 장르가 EDM이라는 단어 밑에 살아있다. 그래서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든 생각은 기존에는 house와 hardstyle을 주류로 하는 스타일을 잠시 접어두고 '대중'음악이라는 명목하에 다양한 장르를 준비해서 40-50분가량 공연할 심산이었다. 준비 기간은 4개월 정도 소요한 것 같았다. 집에서 틈틈이 공연의 레퍼토리를 준비했으나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장비'였다.
이른 아침부터 Dj Hwance, 신두환 학우께서 40분가량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뒤에 음료와 무알코올 맥주도 구비했으니 즐겨요.
컨트롤러와 헤드폰, usb는 준비가 됐지만 문제는 스피커였다. 집에 작은 스피커가 있긴 했지만 강의실을 채우긴 부족한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 내 총 동아리 연합회 국장을 맡은 후배에게 연락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후배는 흔쾌히 대여가 가능하고 신청서를 작성하게 도와줬다. 늦은 저녁 공연장에서나 볼 법한 스피커를 대여해서 집으로 걸어오는 과정은 너무도 힘들었지만 음량 테스트할 때 들은 웅장한 울부짖음은 내 상태를 긴장에서 기대로 바뀌게 했다.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이 부분은 생각 외로 단순하게 해결됐다. 교수님께서 차로 장비 운반을 도와주신다고 먼저 나 서주신 거였다. 그렇게 5.26 금요일이 밝았고 오전 9시에 강의실에 내 장비를 들고 입장한다.
평소 비몽사몽한 상태로 입실하는 곳인데 저 앞에서 발표를 가장한 파티를 하려고 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최종 리허설과 음량 체크를 하다 보니 학우분들께서 들어오셨다. 많이 당황하셨을 거다. 저녁이라면 모를까. 아침부터 디제잉 파티라는 게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에 빠뜨린 것은 교수님께서 파티 분위기를 내자며 마실거리를 사 오셔서 비치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맥주와 음료수를 들고 자리에 앉아있는 학우들과 교수님 앞에서 대망의 공연이 시작됐다.
베뉴(venue)에 상관없이 공연을 하겠다.
내가 염두에 두고 셋을 준비해 왔지만 음악이 시끄럽고 비트가 빠르고 신난다고 해서 관중들이 신나는 건 아니다. 시간이 이른 시각에 시작한 점도 있지만 앉은 채로 청취하고 있는 이 어색함을 빨리 푸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시간을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MC진행을 썩 선호하진 않았지만 과하지 않은 선에서 육성으로 호응을 유도했고 빠른 bpm으로 공연을 이어가던 중 잠깐 텐션이 느슨해진 틈을 타 소찬휘의 tears와 하드스타일(hardstyle)을 선곡하고 믹싱 해서 선보이자 이 타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점점 고조됐고 일어나서 즐기기 시작했다.
하드스타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떼창이 가능한 노래와 전자음악을 믹싱하고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이자 뒤에서 장비 운용에 대해 궁금해하던 학우들이 앞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해오던 레이빙(raving) 분위기를 조성하는 성공 하자 이제는 정말 흥분해서 음악을 섞으며 같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흔히 아는 'everybody make some noise'를 남발했으며 다 같이 점프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술과 기계를 장만하고 처음으로 만든 매쉬업을 사람들에게 공개했을 때는 순간의 벅차오름에 마지막 30초는 전율이 돋았다.
(장비 구매 후 만든 처음 매쉬업//언에듀케이티드 키드 vs illenium - Make U dance vs Takeaway (Hwance mashup))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이 음악에 대해 아는 선을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어떤 연유로 시작했고, 가슴속에 홀로 품어 온 활동명 'DJ Hwance'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했으며, 래퍼로 활동하시는 학우분과 사운드 클라우드(sound cloud)에서 서로 계정을 팔로우하는 등 멍하면서도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전율에 '버킷리스트를 이룰 때 느낀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 교수님께서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감동했다며 내게 술을 사주셨고 서울에서 진행하는 World Dj Festival을 추천해 드렸고 일요일 1일권을 예매하셨다. 2주일이 지나고 축제를 얘기하실 때에는 정말 흡족하셨는지 자랑을 하시는데 괜히 뿌듯했다.
장르에 관계없이 음악은 지구상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며 그걸 여러분들이 증명해 주셨다.
- hardwell 잠정 은퇴 공연 中 클로징 멘트 -
살아온 곳도, 지향하는 음악도 다 다른 나와 다른 분들이었지만 1시간가량 되는 시간에 서로가 한 음악 아래에서 다 같이 뛰는 경험은 언제 경험해도 신났다. 무엇보다 단순 관객의 입장보다는 그런 공연을 주도해 가는 뮤지션으로서 그 광경을 보니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가 만들어졌다. 음악은 단순히 듣는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작은 연결 고리들이 모여 유대감을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게 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취미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정진해서 사람들 앞에서 나의 에너지와 음악을 들려주고자 한다. 동아리를 만들고자 했던 과거의 시도들이 물거품이 됐어도 어떤가. 일시적으로 지향점이 사라졌어도 끝까지 마음의 품은 가치를 이룩해 낸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꺼져가는 장작에 강력한 불쏘시개를 넣어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강의실이라는 무게와 경우가 있는 공간임에도 우리의 흥을 억제하지 못해서 파티룸으로 변모해 버렸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 취미에 더 정진할 것이며 그늘과 밑바닥에 서서 땅만 쳐다보던 나는 이제 고개 정도는 하늘로 올려다볼 수 있게 됐다. 날개가 다 타서 떨어지는 이카루스가 될지라도 계속해서 이 에너지와 음악을 전파할 것이다.
5월 26일. 내 뜨거운 정열이 여름 햇살과 섞인 채 나를 비춰줬던 금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