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5, 에픽하이, sleepless in______, 두 명의 동창
강원도 태백. 산에 둘러싸인 채 외부와 단절된 폐광도시이자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동네. 눈치를 심하게 보긴 해도 그래도 철저하게 개인으로써 살아가진 않는, 그런 곳. 외롭진 않지만 무언의 관심 속에 피곤해지는 그런 곳. 이곳은 내 고향이다.
내 인생에 대학축제는 딱 한 번이 끝이다. 매번 그때마다 서울이니 인천이니 좋아했던 아티스트들을 보러 가겠노라고 버스를 타고 상경했던 게 큰 이유였다. 대학에서 조직의 동질감을 느낄 기회를 스스로 져버린 내 업보는 스스로를 마이너하고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어냈다. 그래도 별로 외롭다는 느낌은 크지 않다. 단지 내가 동경하고 상상 속에서는 최종적으로 바라온 삶의 이상향을 보는 경험이었으니.
입대 전이었다. 휴학을 하고 시간이 많았던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다. 대학과 고향만을 기차로 전전하는 단조로운 루트가 아니라 전국을 노 다니고 싶은 나름의 버킷리스트였다. 매미가 단말마를 내뿜던 늦여름 어느 날 낮. 고등학교 동창 놈에게 연락이 온다. 입대 전에 서울 와서 실컷 놀아보자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녀석과 썩 그렇게 친하다고는 생각 안 했지만 걔는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생각은 길게 하지 않았다. 다음 날, 고터에 도착하고 온수역에서 내려 그 녀석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달간 서울 살이의 시작이었다.
서울특별시. 고층 빌딩과 네온사인의 호흡, 도시를 가로지르며 나있는 혈관들, 그 안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개인만이 존재하는 동네. 태백으로부터 민족의 젖줄을 받아도 그 중심으로 서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가까이 지낸 건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인가. 지금 서로 가까워진 건 콘크리트 산들뿐인 곳. 벽과 대화하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의 말이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철저한 개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후끈하지만 냉랭한 곳. 이곳은 서울이다.
온수역 8번 출구를 나와 10분 이내에 그 친구가 사는 원룸이 나온다. 뭐랄까. 태백에 놓여있는 3층 정도의 연립 주택과 같은 사이즈. 그것은 척박한 서울 속 태백이었다. 녀석을 조우한 건 졸업 후 2년 만이었다. 못 본 새 살이 많이 후덕해졌지만 성격은 붙임성이 좋아졌다. 녀석의 방은 습하고 좁고 낙후됐다. 내가 살던 원룸과는 완벽하게 다른 환경. 인류학자들이나 가질법한 낯선 곳에서 놓인 벌거벗겨진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경험한다. 이런 곳에서 2 달이라는 게 썩 내키진 않는다.
일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돈이야 넉넉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정도였다. 즐길 건 태백을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 방탈출, 맛집 웨이팅, 홍대 놀이터, 클럽, 한강 라면 등 모든 게 새로웠다. 다만 잠실로 페스티벌을 다녀온 이후 친구와 한강 라면을 먹으며 캔맥주를 마신 경험이 서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정도가 이번 2달 서울 살이의 결과물이다.
"외롭고 피곤하고 사람이 만나고 싶다. 그래서 다시 태백 가고 싶다."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말이다. 20살 정도면 이해가 가능하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서기를 한다는 청춘들의 첫걸음이 누가 쉽겠는가. 하물며 고향은 서울보다도 즐길 거리가 현저히 적은 곳 아닌가. 처음에는 기만인가 싶었다. 하지만 녀석이 사뭇 진지할 때 나오는 표정이 있는데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잠깐 품은 선입견은 거두기로 한다. 캔맥주의 거품처럼 한철 가득한 웃음을 거두고 우수에 찬 낯으로 얘기를 꺼낸다. 여자친구도 있고, 나름 서울살이도 적응했고, 학창 시절 그렇게 혼자라는 거에 무게를 두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고독하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막상 다 군대 가고 연락두절이던 찰나 나한테 연락했다고 한다. 어쩐지 녀석의 처음 보는 적극적인 정 붙이기 행동은 낯설었지만 모든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1년만 살아도 서울살이를 안 해본 동향 사람은 고향을 나온 사람의 처지를 모르나 보다. 저 너머엔 강남의 풍경이 보인다. 화려한 조명과 시끌시끌한 소음. 그리고 강남에서 잠실로 거슬러 올라오는 지하철엔 낯빛이 어두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서로가 서로를 이격 한 채, 머나먼 곳만 바라보는 존재들. 도시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사람들의 모습. 지금의 나는 현실에서 잠시 떨어진 채 자유를 누리는 존재. 치열한 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개인으로 있는 그들과 내 친구의 진면모를 모르는 거다. 왠지 모를 두려움과 오한에 있기가 싫어진다. 한 달하고 3주가 지난 화요일. 그렇게 나의 서울살이는 뒷맛이 찝찝한 채 끝을 맺었다. 마치 쏠배감펭 물고기와 같다. 화려하지만 독을 품은, 그런 도시.
군 전역 이후 찾은 서울은 좀 똑같으면서도 달랐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림막이 더 강해진 상태였지만 어둑어둑해질 무렵 시끄러운 소음과 네온사인만큼은 여전했다. 휴가를 나오면서 잠깐 봤던 기억은 저 멀리 과거에 뒀다. 축제와 관련한 규제가 완화되고 그렇게 서울로 향했다. 음악 축제도 가고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1주일 정도 다른 동창의 집에서 지내게 됐다. 두 번째 왔을 때 제일 먼저 느꼈던 점은 서울의 원룸은 어딜 가나 확실히 좁고 각박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학교 다닐 때 장난기도 많았지만 공부도 깨나 잘했던 녀석이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면서 음악 축제를 데려가달라고 했다.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 크게 난 8월의 밤. 기생충 영화의 폭우가 생각나는 그런 밤이었다. 가천대역 출구를 나오자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비 오는 날 질주를 한창 하다 보니 녀석의 원룸건물 입구였다. 집 앞에서 서있던 녀석은 오랜만에 나를 봤어도 별 다른 이질 감 없이 크게 날 맞이해 줬다. 처음 서울에 와서 마주한 동창의 풍경이 오마주 돼서 그런지 안쓰러웠던 느낌이 컸다.
이틀 동안 비 오는 소리에 우리는 그냥 누워있었다. 빗물 속 펄떡거리는 아가미 인간. 그 꼴이 딱 우리였다. 우중충한 점심에는 중식을 시켜 먹으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그 친구는 취업준비에 한창이었다. 도전하면서 고독해지고 영원할 줄 알았던 고향 친구들과의 연락은 어느 순간부터 두절됐으며 정신병 걸릴 거 같아서 환기할 겸 내게 축제 가자고 부탁한 거라고 했다. 어딘가 이질감이 들면서도 익숙한 대화주제와 방의 크기, 그리고 습한 공기. 4년 전 그 친구 때와 같아서 그런 걸까.
"안 외롭냐."
딱 이 말이었다. 이 말이 가슴을 때린 건지 녀석은 응어리진 내용들을 풀어낸다. 아르바이트를 나가도, 클럽을 가도, 대학을 가도. 뭔가 시끌시끌하고 즐거운데 그 안에 자기는 없다고. 묻혀가는 느낌에 목소리를 내어보아도 결국엔 제자리라고. 홀로 다니지는 않는데 외롭고 묻히는 걸 넘어 잊히는 기분. 그게 지금 자신이라고 한다.
그런 녀석을 데리고 축제를 끌고 다니고 새벽 6시까지 아무 근심걱정 안 하게끔 돌봤다. 그런 과정에서 다른 대학 사람들과 연을 맺어주고 그분들이 재학 중인 대학교 주점에도 놀러 갈 만큼 열성적으로 다리를 놓아주는 등 도시의 소음과 군중 속에 둥둥 떠있는 무인도로 남겨두게 하지 않으려 했다. 이 노력이 어느 정도 먹힌 걸까. 더 이상 비가 오지도 않았다. 계속 달고 있던 아가미를 뗀 녀석은 아직도 앞에 있던 느낌을 완전히 지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아진 거 같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축제가 끝나고 8/15 월요일. 창밖으로 서광이 비춰 들어온다. 청량리까지 배웅을 나온 녀석 뒤로 수많은 군중들이 저마다의 파티션을 치고 걸어간다. 여전히 많은 외로움이 녀석과 공존하지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또 밤새 뒤척이고 있다./불안한 생각들과 후회들이 내 방안에 모여든다./저 처량한 달빛이 달빛이 나야./저 쓸쓸한 별빛이 별빛이 나야.
에픽하이 - In Seoul 가사 中
어딜 가나 파티션을 치고 있는 그 풍경에 스며든 건지 아니면 나는 나만의 외로움을 즐기는 건지 집 밖을 나온 순간 나는 스스로 파티션을 친다. 귀에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다니는 게 외출하고 처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수많은 건물들을 거치면서 본 풍경은 나만 다른 세계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나에겐 방학이고 휴일이고 쉬는 날이어도 저들에겐 한 주의 시작이고 치열한 전쟁터로 다시 나가는 날이었다. 12시 언저리 기차가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분주하게 움직이는 무리들 속에 시시껄렁한 모습으로 앉아 감상에 젖는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봤던 동창의 모습과 이번에 올라와서 본 동창의 모습은 다 똑같았다. 서울이라는 지역엔 원인불명의 풍토병이 있는 거 같다. 그건 지방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이 많지만 어디에도 기댈 사람이 없는 지역. 서로에게 가림막을 치는 경계선이 뚜렷한 지역. 도시의 소음에 개개인들의 존재가 묻힌 지역. 서울.
휴대전화에선 에픽하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4년 전, 산책로를 걸으며 느낀 쓸쓸한 감정이 올라오는 멜로디와 스스로 선을 긋게 만드는 사회 속에 출구는 없고 온몸에 땀만이 맺힌 채 쓸쓸해하던 친구의 우수에 한껏 젖은 표정이 기억의 저 너머에서 올라온다. 동시에 단칸방 중앙에서 외로이 자장면 한 젓가락을 뜨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운 녀석의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내게 서울이란 지역은 더 이상 낭만만이 넘치는 도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삶의 주 무대인 점을 떠나 '우리'가 아닌 '나'가 너무 많다. 무서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