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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환 Jun 23. 2023

지구가 둥근 건 구석에서 홀로 울지 말라고 둥근 거야.

- logic, before you exit, 공백의 20대 -

야 너는 진짜 복학하면 술 자주 마시자. 음악 취향 맞는 애를 드디어 만나네.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내 음악 스펙트럼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록 음악이니 힙합, edm은 내가 직접 좋아해서 듣게 됐다 할지라도 그 외 IDM, 재즈, 블루스, 올드팝, edm의 하위 장르는 고마운 주변인들의 추천으로 나만의 우주를 넓혀갔다. 갇힌 우주에서 거대한 빅뱅이 일어난 건 20살 가을. 선배들한테 불려 다니면서 한량처럼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어떤 형을 알게 됐다.


 키가 꽤 크고 마른 몸매에 생긴 건 여우처럼 눈이 가로로 주욱 찢어졌고 팔 곳곳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는 휴가 나온 형이었다.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썩 부담이었다. 선입견을 가지는 걸 지양하는 나였지만 술을 마시며 툭툭 뱉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곁에 있던 형들이 내가 썩 정을 붙이는 걸 못하자 그 형에게 넌지시 음악을 좋아한다고 내뱉자 여우 같던 눈이 잠깐 크게 떠지며 내게 얘기를 꺼낸다. 음악 하나로 선입견을 없애고 최근 인천으로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martin garrix와 hardwell을 좋아한다라고 얘기하자 그분은 월디페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티켓을 버렸다, 자기는 san holo와 porter robinson, 그리고 IDM을 좋아한다며 서로의 간극을 좁혀가고 있었다. 나도 san holo의 light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그런지 이 대화를 시작으로 안 들어가던 술이 계속해서 들어갔고 서로 번호 교환을 하고 잘 지내보자며 내년에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자리를 파했다.


 2018년 3월, 복학한 그 형을 필두로 얼추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학번에 연연하지 않고 4명끼리 모여 전례 없는 모임을 만들게 됐다. 벚꽃이 한창 학교에 흐드러질 때면 돗자리를 가져와서 기어코 이파리 하나를 집어서 술에 띄워 마시고, 음악을 틀고 별도의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춤을 계속해서 춰대는 것이 행사장 풍선인형 같아서 재밌었다. 그런 낭만에 취해 이 무리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학우들이 꽤 있었다. 그렇게 대여섯 명끼리 뭉쳐 서로 함께하고 어울려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저 성향이 비슷하다고 한 울타리에 서로를 잡아주고 있었을 뿐이지 서로 알아가려 했던 모습은 부족했던 거 같다. 내가 그 해 11월 27일에 입대를 하고 12월 종강하는 시기가 다가왔을 때 그 형과 13학번 선배의 마찰이 있어서 무리에 슬슬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것. 이후 군대에 있는 내게 스트레스를 계속 주는 장난을 쳐대는 형에게 환멸이 나서 나도 연락을 끊고 살았다.


잠깐 시간 되면 우리 응어리 좀 풀자.


 그렇게 전역을 하고 20년 9월에 복학을 하고 어설픈 상태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2학기 첫 전강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 길에 카톡 알림이 뜬다. 2년가량을 연락을 끊고 살았던 그 형이었다. 카톡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 걸치면서 응어리 좀 풀자고 한다.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도 내심 그리운 만남이었다. 그렇게 만난 형의 모습은 18년도에 봤던 모습과는 달리 꽤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우울증이라면서 약을 먹고 있다고 한다. 서먹했던 안개를 걷어내면서 다시 서로에게 햇살을 쬐어주면서 관계를 개선했고 21년도 투룸에서 생활할 때는 13학번 형을 제외하고 우리 집에서 파티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마지막 파티를 했던 건 여름 방학이 그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시기. 출판사 취업을 준비하는 형을 응원하면서 밤새 술을 들이켜던 그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9월 30일. 그날은 학과 학술제 준비 때문에 저녁시간에 학교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18학번 후배로부터 들려오는 전화. 그 형이 죽었다고 한다.


 믿기지 않았던 사인과 갑작스러운 이별에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이내 다리에 힘이 탁 풀린다. 학교로 향하는 길에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고 소모임 부원들에게 수업을 진행하던 중 감정이 주체가 안 돼서 화장실을 자주 왔다 갔다 했었다. 수업이 끝나고 3일을 술만 마시며 피폐한 삶을 보냈다. 13학번 형한테도 전했고 더 고민할 시간도 없이 차량을 렌트해서 그 형 고향의 묘원으로 향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자리라 그런지 비석도 없고 뒤에는 어린 나무 하나가 심어져 있었다.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다녀온 건지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저 앞으로는 봉고차 한 대가 딱 서더니 중년의 부부가 노란 봉투에 뭔가를 가득 담고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부모님이셨다. 이쯤에서 13학번 형은 뒤로 가서 홀로 오열하고 나는 홀로 외로워했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많이 힘들어했던 거 같다. 취업은 안되고 외로운 날들을 보내고 연애에 실패하고 벼랑 끝까지 몰려갔던 거 같다. 그렇게 떠나기 며칠 전에 연락 와서는 해맑던 목소리로 전화했던 그 형의 표정과 심리를 감히 파악할 수 없지만 애써 괜찮은 척했던 그 형의 시도에 계속 슬펐던 거 같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을 추슬러본다. 당장 괜찮아지지는 않았다. 누구와 말도 섞지 않고 술도 3주 정도는 아예 피한 거 같았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중 외국 래퍼 logic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It can be hard.
It can be so hard.
But you gotta live right now - Logic ft. alessia cara - 1-800-273-8255 -
please just tell me you're alright
Are you way up in the sky
Laughing, smiling, looking down
Saying, "one day we'll meet in the clouds"
Up in the clouds. - Before you exit - Clouds -

 예술 쪽으로 유독 관심이 있던 그는 대학교에서 잡지를 만들곤 했다. 그의 집에는 명품 옷들이 수두룩하게 즐비하기도 했고 적어도 어떤 분야 안에서 알고 있는 지식의 깊이는 누군가들의 얄팍함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깊이 었다. 시도 꽤나 잘 썼고 낭만이면 좋아죽는 인간이었다. 예술인의 모든 걸 동경한 그는 외로움까지 동경해서 그런 걸까.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던 이들처럼 결국 어느 곳에 호소하지 못하고 홀로 땅으로 꺼졌다.

before you exit - clouds

  노래의 제목은 어떤 기관의 번호처럼 지어져 있는데 실제로 '자살 예방 번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기관의 전화번호다. 우리는 왜 감기나 장염이 걸리면 병원에 곧잘 찾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아프면 정신병원을 찾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발걸음을 왜 쉽사리 향하지 못하는 걸까. 의학 기술이 좋아져서 이젠 앵간한 병은 다 치료가 가능하지만 마음의 병은 아직 쉽게 치료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을 보듬어주고 관심 가져주는 그런 사회가, 노래에 나오는 전화번호의 역할처럼 외롭지 않게, 마음의 감기를 낫게 해주는 약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음악 선택을 맡겨놓고 청취하고 있다. 20대의 시작을 함께한 이가 떠나가니 어느 한 공간이 거대한 공동(空洞)이 되어버린 거 같다. 나오는 before you exit의 clouds. 땅으로 꺼지지 말고 평생 찾아 헤매던 낭만 찾아 구름 너머로 비상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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