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길 때

가지 토스트와 카푸치노

by 아이스블루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웠다. 아침 햇살이 식탁 위의 하얀 접시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것들을 먹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년작) 중에서-



저녁밥상을 다 치우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일 아침밥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가족들 때문이 아니라 '내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보통은 다수가 원하는 메뉴로 준비하고는 하지만,

먼저 "밥이냐 빵이냐"로 종류가 갈리고 조금이라도 더 챙겨 먹이려면 순순히(?) 먹겠다는 음식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내 취향과 같다면 좋겠지만 이제 다 커버린 아이들까지 각자 입맛도 다르다 보니 내 맘대로

마련한 음식을 무조건 먹어주길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빈속으로 내보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고, 밥과 국을 고집하는 남편과 아들에 맞추어

웬만하면 함께 밥을 먹던지,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침밥은 좀처럼 먹히지 않는다는 딸아이를

따라서 나도 덩달아 아침을 건너뛰기도 한다.

물론 하루를 시작하려면 나도 뭐든 챙겨서 먹어야 하겠지만, 폭풍 같은 출근시간이 지난 후 느지막이

여유롭게 내 몫을 준비해서 먹는 것이 아무래도 속 편한 일이다.

특히 멋 부리면서 나만을 위한 메뉴로 "조식“을 먹기로 작정한 날은 마음가짐부터 다른 날들과는 좀

다르다. 한 끼 대충 때우느냐, 아침을 즐기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찐 가지, 베이컨, 양파를 다지고 미트스파게티 소스와 섞어서 빵 위에 얹고 에어프라이어에 굽는다.



완성된 소스를 소분하여 냉동시켜 놓으면 한동안은 편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특별히 아침메뉴로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대체로 준비가 간편한 샌드위치나

빵을 커피와 곁들인다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바쁜 아침시간이라서 최대한 조리가 간편한 메뉴로 준비를 하게 되고, 전날밤에 만들어놓은 국이나

미리 사다 놓은 빵이 냉장고에 마련되어 있다면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가족들의 아침밥 챙기는 일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인가 보다.

그러다가 가끔 나 좋은 거 만들어 먹고 싶을 때는 닭가슴살과 베이컨 등을 넣은 샐러드나 평소 좋아하는

재료로 토스트 토핑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이번에는 어제 요리를 하고 애매하게 한 개가 남은 가지를 이용한 토스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내 아침을 위한 “요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요리무식자가 건강에 좋다는 가지로 할 수 있는 반찬이 기껏 가지찜 정도이다 보니, 이렇게라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갑작스러운 요리의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자주 하던 메뉴가 아니어서 요리를 꽤 잘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숨겨왔던 창의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다!

식빵에 계란을 씌워 버터에 구운 토스트도 훌륭하지만 가끔은 풍성한 야채와 다진 고기를 넣은

스파게티소스를 얹고 모차렐라 치즈로 마무리한 피자토스트도 나의 아침을 분위기 있게 바꿔주는

일등공신이 되어준다.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주메뉴가 빵종류라고 하면 내 머리로 다른 음료를 생각해 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커피 외에는 말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유가 좋은 선택이겠지만, 맛있는 빵에다가 영양까지 너무나 완벽한 우유보다

단순히 입에서 좋아하는 카푸치노가 나에게 더 끌리는 아침식사의 완성된 모습이다.(어쨌든 우유가

들어갔다.)

직접 집에서 만들어온 세월 덕분인지 카푸치노 만들기에 있어서 웬만한 바리스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뽑아낼 수 있는, 여기가 파란 다방인지 별 다방인지 헷갈린다고 뿌듯해하며 스스로 칭찬도 한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깔끔하고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당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우유거품이 달콤한

카푸치노가 좋고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모카포트가 손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1인 1 패드는 물론이고 에어팟, 노트북등 전자기기에서 만큼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IT공화국'인

우리 집 살림살이 중에서 가장 아날로그 감성을 뿜어내는 것은 아무래도 모카포트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내 손때가 가장 많이 묻어있고 좋아하는 커피를 만들어 내는 도구가 말이다.

퀄리티 높은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그 이름도 찬란한 커피머신을 갖고 싶었지만, 지속적으로 요구될

머신 관리에 지레 겁먹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후, 생각 끝에 들여놓은 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모카포트였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과정도 즐겁지만 쉬운 손질이 더 즐거운 모카포트는 이제 브런치를 준비하는

순간에 빠져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너무나 익숙하여 마치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임무를 마친 후,

시크하게 그릇건조대에 걸려있는 모카포트의 모습까지....

아침식사와 관련된 모든 풍경들은 이제 당연하게 존재하는 내 삶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천천히 먹는다고 해도 20분이 채 안 걸리는 아침식사를 위해 토스트를 위한 재료를 미리 준비하고 수동으로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복의 순간들을 기꺼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누리고 싶은 브런치를 생각할 때면

행복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가지로 만든 토스트와 풍성한 거품의 카푸치노향 가득한 아침식사>가 예약되어 있기에

기대감으로 설레는 주말밤이다.



느리고 손도 많이 가는... 이것이 내 아침식사를 만드는 방식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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