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프라이어 고등어구이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2003년작) 중에서-
내가 '육류파'이기는 하지만 가끔 담백한 생선이 입에서 당길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신선하고 살집 두둑한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산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바삭하게 튀겨내어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이게 바로 꿀맛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은 순식간에 비워내는 밥도둑 같다.
오랜만에 먹는 생선구이는 참 맛있는 반찬이다.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 거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생선구이만큼 뒤처리가 하기 싫은
음식도 없다.
그릇이야 세제로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온통 기름투성이인 주방바닥과 탁해진 실내 공기이다.
환풍기를 켜놓고 창문을 열어놔서 연기는 다 빠져나가는 듯 보이지만, 미세한 기름기가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기름이 타면서 나오는 연기는 폐건강에도 안 좋다는데, 맛있게 먹는 순간보다 걱정하고
뒤처리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빼앗기는 듯하다.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맛있는 생선구이를 외식할 때나 먹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방법은 있다. 프라이팬에 직화로 구운 것만큼은 못해도, 맛있는 생선구이를 탁한 연기 없이 해 먹을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비슷한 이유로 집에서 자주 해 먹지 않는 삼겹살구이 용도로 몇 년 전 들여놓은 에어프라이어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에어프라이어는 전원을 켜고 180도 10분 동안 예열 중이다.
그때 또르르……한 녀석이 굴러왔다.
고등어를 굽다가 다소 생뚱맞은 출현이지만 나중에 요긴하게 쓸 것이기에 자몽도 한쪽에 잘 보관해 놓는다.
본격적으로 고등어구이에 돌입, 생선 비린내가 날 예정이므로 속바스켓은 스테인리스로 장착하고
종이 포일을 바닥에 깐다.
해동하지 않은 자반고등어를 냉동실에서 꺼내어 바로 굽기 모드로 세팅한다.
냉동된 재료를 미리 해동하는 걸 또 잊고 말았다.
식사메뉴를 미리 계획해서 짜는 일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서 요리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어차피 익으면 똑같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해본다.
해동을 안 했기 때문에 레시피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인 180도로 15분 세팅했다.
생선이 구워지는 동안 에어프라이어 공기구멍으로 비린내가 난다.
생선이라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킁킁-
뒤집어서 15분 더 구워주니 드디어 바람직한 비주얼이 본색을 드러낸다.
프라이팬에 넉넉하게 기름을 두르고 바싹 구워낸 생선구이보다는 분명 덜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기름 한 방울 넣지 않았어도 윤기가 흐른다.
향신료와 오일이 들어간 음식들을 즐기는 날이 많더라도 가끔은 기본에만 충실하여 다소 심심해 보이는 요리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고등어구이를 한다니까 식구들은 고추냉이 간장을 찾는다.
이미 간이 돼있는 자반고등어에도 양념이 필요할 정도로 우리 입맛은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있나 보다.
양념을 약하게 할수록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몸이 건강해지는 맛 말이다.
그동안 갖가지 자극적인 양념에 혹사당해 온 여린 입맛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다른 가족들은 간장을 찍어먹으니 별미라고 좋아했지만, 나는 별다른 소스를 첨가하지 않고 즐기는
고등어구이의 맛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오늘은 생선구이를 먹고 난 후의 일이 별로 겁나지 않는 날이다.
프라이팬을 이용할 때면 하이라이트 주변이 기름 범벅이 되곤 했지만 오늘은 기름이 안 튀어서 닦아내는
수고를 덜 수 있었고, 쾌적한 공기는 숨쉬기도 편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로 에어프라이어 설거지를 하기로 한다.
더러워진 바스켓을 통째로 물로 씻어낼 수 있어서 속이 다 후련했다.
에어프라이어를 구입할 때 오븐형보다 용량이 작아서 끝까지 고민했지만 나에게는 바스켓형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바스켓을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생선 비린내는 남아있고, 그냥 놔둔다면 <가지 토스트>에서도
<에그 타르트>에서도 생선향(?)이 날지도 모르니 에어프라이어 안의 냄새는 꼭! 바로 없애는 편이 좋다.
자몽을 후식으로 먹고 껍질만 모아서 바스켓에 늘어놓는다.
170도에서 5분간 돌렸는데 껍질이 바싹 마르며 비린내를 잡는 역할을 해주었다.
내부에 배어있던 생선냄새는 잘 빠졌으며 덤으로 상큼한 과일향까지 얻었다.
레몬, 오렌지, 귤 등의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이라면 다 괜찮다고 해서 평소에 귤을 까먹으면 껍질을
냉동실에 모아두고 있다. 생선구이하는 날에 비린내를 잡는 용도로 말이다.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생활의 지혜'를 몸소 실천하는 내가 정말 지혜로워지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조리기기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 제품이라서, 관리에도 신경을 써주면 좀 더 오랫동안
유용하게 잘 쓸 수 있다. 귀찮아도 사용 후에 세척이 바로 이루어진 다면 다음 요리할 때도 깔끔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주방에서 에어프라이어를 열었을 때 새것처럼 손질돼 있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바로 정리 정돈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랄까?
설거지가 잘 되어 있는 깨끗한 그릇을 볼 때 몽글몽글 피어나는 기분 좋은 감정은, 화려한 레시피 없이도 훌륭한 반찬이 되는 담백한 생선구이 한 점을 먹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
행복은 크기가 아닌 빈도수라고 한다.
살면서 사소한 행복감을 많이 느껴보기로 작정하니까 별일 아닌 일에서도 웃음이 터진다.
주책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이렇게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기대 이상의 편리한 조리기구 덕분에 식사도 청소도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