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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산은 잘못이 없잖아?
님과 웬수되는 줄....
by
소행성RDY
Oct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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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악산!
금산사가 있는 김제 방향으로 방향을 정한다.
"휴게소 커피 중 여기가 제대로 맛을 내는 것 같아."
여산 휴게소에 들른 김에 커피를 한 잔 사주며 그가 말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니네.
요즘 휴게소엔 어지간하면 프랜차이즈 커피던데.
반갑다.
'커피, 온전히'
음, 커피맛에 대해 1도 모르지만 그런 내가 먹어도 느낌이 좋다.
"정말 괜찮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근 20년 만에 다시 찾은 금산사는 기억 속의 오래된 절이 아니었다. 주변 산책로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새로운 법당이 지어졌고 지금도 건축 중에 있었다.
우리는 금산사 구경은 뒤로 미루고 등산길로 접어든다.
"난 정상할 생각 없어. 적당히 가다가 돌아오자."
난 분명히 말하고 출발했건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나 보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에 다리는 벌써 그만 가자고 난리가 났구먼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 저쪽 봉우리 보이지? 조금만 힘내."
"아니 조금만이 2.6 km야? 장난하냐?"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 4.8km. 걸어온 것보다 더 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니 점점 화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계속되는 계단에 숨은 차고 다리는 뻣뻣해진다
"모악산 정상을 굳이 가야 해? 난 그냥 딱 즐길 만큼만이면 되는데."
화는 짜증으로 번지고 앞서 걸어가는 그의 등짝도 보기 싫어진다.
화가 난 상태로 등산을 하는 건 난생처음이다.
말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온몸이 말하는 중이다.
대답도 하기 싫고 쉬기도 싫고 무조건 걷는다.
얼마 전, 월류봉은 1봉을 지나치면 5봉까지 갈 수밖에 없어 끝까지 갔고, 어느 산은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서 어쩔 수 없이 한 바퀴 다 돌았던 산들 생각이 지나간다. 오늘은 내려가도 되는데 왜 굳이 정상을 고집하냐고!
속으로 씩씩거리며 정상을 가긴 갔다. 운무가 끼어 흐릿하다. 내 마음인가?
여전히 짜증이 안 풀린다.
하산하는 길.
나는 왔던 길로 갔으면 했지만....
반대편 하산길로 가자고 한다. 어쩌겠나. 따라가야지.
이건 또 뭐야?
길은 더 멀어지고 봉우리를 또 올라가야 하산길로 연결이 된다니.
무슨 산이 이래?
아니지.
산은 잘못이 없잖아.
그래. 참자!
특이하게 조릿대가 산 한쪽을 다 차지하고 길을 내주고 있건만 하나도 안 들어온다. 이쁜 줄도 모르겠다.
마음이 지옥이면 천국에 있어도 지옥을 본다나?!
딱 그 짝이다.
봉우리 하나를 또 넘는다. 청룡사라는 절까지 1km.
내리막이 장난 아니게 급경사에, 넘어진 큰 나무가 등산로를 그대로 막고 있고, 무슨 원시림인 줄 알았다. 사람이 다니긴 다닌 거야?
미안하다 소리 잘 안 하는 그가 오늘은 정말 미안했나 보다.
"미안해. 다시 높은데 올라가자 안 할게."
그래도 화를 풀기 싫다. ㅋㅋ 뭔 심술 이래.
올라가며 새끼 뱀도 본터라 우거지고 인적 드문 길이 무서워진다. 등짝은 미워도 후다닥 따라간다.
멀리 절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안심이 되는지 걸음이 느려진다. 휴, 드디어 다 와가는구나. 5시간 동안 11km 정도를 걸었다. 이런...
다녀간 사람들이 얘기한 것보다 1시간은 더 걸린 듯하다.
계곡에 발 담그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좋은 자리를 찾고 있더니만 그가 나를 부른다.
못 이기는 척
바위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두고 발을 담근다.
금세 발이 시려올 정도로 가을 계곡물은 차다.
"너무 좋다. 와 봐. 같이 담가 봐."
나 언제 화났었니? ㅋㅋ
모든 게 풀려버렸다. 계곡물에 동동 떠내려갔나?
생각한다.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도 순간이고, 그 화가 풀리는 것도 작은
것에서 구나.
"님과 웬수가 될 뻔하더니, 계곡물 한방으로 끝내버리는구나."
"오늘은 정말 미안해. 고생했어. 가서 맛있는 밥에 고기 사 줄게. 막걸리도 한 잔해."
그래서
산채비빔밥에 파전에 막걸리까지 마셨다.
"진안 막걸리 맛 좋아요. 물이 좋거든요."
식당 사장님의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씀이 듣기 좋다.
어라, 여긴 김제인데? 지리적으로 가까워 진안 막걸리를 쓰시나 보다. '모악산 막걸리'도 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하산 후 마시는 막걸리의 맛은 지역마다 달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캬.. 맛있네. 근데 오늘 막걸리가 ○○ 막걸리보다는 맛있고, ○○ 막걸리보다는 맛이 덜하다. ○○막걸리가 최고였던 거 같아. 맛이 달라서 재미있어."라고 혼자만의 평가를 하기도 한다.
운전하는 그에겐 미안했지만 술술 넘어간다.
가을 모악산에 추억이 생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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