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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사진 한 장
미소를 찾아 줘!
by
소행성RDY
Oct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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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솔직하다.
숨기고 싶었던 작은 떨림, 불편한 시선, 어색한 미소.
숨겼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럴 줄 몰랐지?"라고 하며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 버리고 마는 게 한 장의 사진일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조금은
생경한
시선으로 사진 한 장을
신기해하며
보는 중이다.
가을 저녁의
쌀쌀한 바람이 지나가는 어느 카페의 야외 테이블.
손님 테이블을 돌며 이쁨을 받던 고양이 한 마리가 마지막 손님으로 남은 우리 테이블로 다가온다.
반갑게 맞아주는 것을 이미 느낀 아이는,
폴짝
남편의 무릎 위로
뛰어오른다.
"어, 뭐지?"
라고 할 사이도 없이 남편의 허벅지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고양이. 의외로 내치지 않는 그.
그 모양이 신기해 사진을 찍는다.
고양이는 남편과 아이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법을 아는지 연신 이쁜 짓을 하고 두 사람은 좋아 죽겠다는 듯 웃음이 터진다.
몇 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사진을 살펴보던 중 시선이 머무는 한 장의 사진 속엔, 남편의 환한 미소가 보였다.
낯설어서,
오래 보게 되는 사진.
"
맞아
. 이 사람에게도 이런 표정이 있었지. 참 오랜만에 보는 미소네."
이 미소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구나.
"살다 보면 다 그래. 먹고살아야지. 가족을 책임진다는 게 그렇지 뭐.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어떤 합당한 변명을 근사하게 갖다 부쳐도 이 미소를 잊고 산 것에 대한 답이 될까?
문득 남편의 시간이 너무 고되었었구나 싶다. 가족을 위한다는 것이 내 삶을 뒤로 미루라는 이야기는 아닐 텐데, 사진 속 환한 미소까지 잊고 살아야 했다니 너무 억울하지 않았을까
?
가족을 위해선 지갑을 잘도 열면서 자신을 위해선 인색해지는 남편.
자신을 위해 살라는 아내의 말은 어쩌면 한낱 뜬구름 같은 말
,
알량한 배려심일 뿐이었으리라
.
미안해 진다.
자신이 더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사진 속 평화로운 그 미소, 너 어디 있니?
남편에게 많이 미안한 어느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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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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