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때부터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확인하는 지금까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참, 잘 놀았다."
산으로, 산으로, 그야말로 산으로 싸돌아다닌 한 달이다.
한동안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타는듯한 태양이 얼굴을 찌푸리게 하더니, 어느새 긴 옷을 자연스레 꺼내 입고 산길을 오르며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몸으로 느낀다.
그것뿐이 아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은 목마름을 해결해 주던 물의 줄어드는 양에서도 알 수 있다. 늘 하산 전에 마지막 한 모금까지 탈탈 털어 마셨다. 그러다 어느샌가 물병에 물은 비워지지 않는다.
몸이란 얼마나 영악하게 반응하는지 딱 지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만 찾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루 필요량의 물을 마시라는 말, 그건 몸의 의지가 아니라 계산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수치를 의도된 행동으로 채워주는 게 아닐는지.
하여튼 여름의 막바지와 가을의 초입을 산에서 보낼 수 있었다. 마치 억눌린 욕구가 폭발하듯 채우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 사람처럼.
오랫동안 하루를 통째로 한 가지 일을 계획하고 나를 위해서 써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늘 시간을 쪼개고 나눠서 매일 시간을 배치한다.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던 시간이었고, 내가 선택했고, 후회를 해 본 적은 더더욱 없지만 나대로 자유를 그리워하고 쫓기고 싶지 않은 욕구가 쌓여갔었나 보다.
그러다 내가 스스로 선택했던 삶의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무력화되었다. 정말 갑자기 내 의사가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었지만, 드디어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고, 내 몸도 더 이상 종종거리며 쫓아다니지 않는다.
조금은 무기력하게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산이 보였다. 산언저리에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던 나에게, 이제 하루 몇 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된다는 사실이 점점 현실로 느껴졌다.
대전을 벗어나 등산을 해도 누가 뭐라 하지도, 누가 기다린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누군가, 아니 엄마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내 삶을 뒤흔든 후로, 엄마와 동행하던 길에서 벗어나 이제 홀로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린 시절 내 놀이터였던 산. 삶의 밑바탕을 이루던 그곳으로 나도 모르게 돌아가고 싶은 끌림이 있었을까?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떤 갈망이 산을 그리워하고 본능적으로 이끌었던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 허기진 영혼, 엄마의 부재가 몰고 온 공허함과 헛헛함이 살고 싶어 찾아낸 맑은 옹달샘 같은 곳이 내겐 "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어서 좋다. 사계절이 바뀌어도 산은 그냥 산일뿐이다. 그 우직함이 그 무뚝뚝함에 위로를 받는다. 내겐 그런 것이 산이다.
계절은 어느덧 가을과 겨울을 논하는 시기다. 어느 날 사정없이 불어온 태풍 속을 걸었던 여름. 지루하리만치 오래 머물던 늦더위는 나의 회복을 기다려주고 있었나 보다. 산 길, 숲길을 걷다 보면 옷은 땀에 절여지고 몰골은 헝클어지다 못해 초췌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게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왜 산으로 떠나는지 좀 더 명료하게 그 이유를 알아갈 때쯤엔 가을이 손을 내밀어 나를 꼭 잡아주었다.
"참 잘 놀았다. 최고의 놀이였고 여행이었다. 산으로 가는 길이 내게 허락되었음이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