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엄마가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저녁 혼자 먹고 가야 해. 그런데 학원 다녀오기 전엔 올 거야."
"응. 괜찮아."
"엄마 어디 가는지 안 궁금해?"
"산에 가겠지 뭐."
"미안해, 서울 뮤지컬 보러 가는 거야."
"어? 혹시 그거?"
"응. 미안해. 혼자 가서."
"힝, 나도 가고 싶은데..."
엄마가 한동안 산으로 돌아다니며, 어쩌다 뒷전으로 밀려난 아이다. 학원 가기 전 이른 저녁을 혼자 먹고 다닌 지가 꽤 되었다. 별내색이 없더니 어제는요즘 들어 계속 혼자 저녁을 먹고 간다는 말을 하는데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아이에게 내일은 꼭 집에서 너를 기다리겠노라한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친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뮤지컬 <킹키부츠> 표를 예매 성공했다는 거다. 공연일이 내일인 표를 덜컥 잡아버린 능력자라니. 아이와 약속이 생각났지만 거절할 수도 없다. 이미 2번을 본 동생이 나와 가기 위해 취소표를 열심히 클릭해 가며 예매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에게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고 엄마는 서울 가는 기차를 타고 설레는 하루를 보내고 왔다. 가벼운 가을 옷에 몸은 가뿐하고 발걸음은 경쾌하다. 익숙하지 않은 서울길은 동생이 있어 마치 동네를 돌아다니듯 막힘없이 잘도 돌아다닐 수 있다.
뮤지컬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흥겹고 신나고 재미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뮤지컬이 끝나버렸다. 박은태 배우를 비롯해 등장 배우들의 노래와 춤에 흠뻑 빠졌던 시간. 박은태 배우의 가창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시원시원하게 부르는 노래에 귀가 호강한다. 화려한 의상 또한 빼놓을 수 없고. 객석으로 내려온 엔젤들의 팬 서비스에 환호와 박수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주인공 롤라와 찰리의 무대에서 둠칫둠칫 코믹스러운 댄스와 퍼포먼스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관객과 함께 호흡해 준 것 같아 꽉 찬 시간이었다.
동생과 공연의 여운을 즐기며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탄다. 어둠을 뚫고 기차는 다시 현실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싫지 않다. 내가 다시 살아야 할 현실로 옮겨왔음이 좋다. 아이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완벽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싱크대를 본다.
라면 냄비가 보인다. 엄마가 흥겹게 하루를 보내고 온 사이, 아이는 혼자 라면을 야무지게 끓여 먹고 학원을 갔나 보다. 미안함이 올라온다.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괜찮은가 그제야 걱정도 된다. 이 무심한 엄마를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