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님은 어떻게 J형이랑 만나게 되셨어요?" J의 직장동료들과 모임을 하게 되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다. 마치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께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조르는 것이나, "식사는 하셨어요? 날씨가 좋네요"와 같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이만한 질문도 없긴 하다.
이 질문이 나올 때면 나는 웃으며 J를 바라보고, J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럼 결국 내가 내 입으로 J가 나에게 고백을 하던 순간과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아주 민망한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 회사에서 로맨티시스트로 소문난 J이지만, 우리의 첫 시작을 말하는 것만큼은 부끄러워서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단다. 그렇게 내가 풀어내는 우리 연애의 시작은 '옛날 옛적에~'로 이어진다.
J와 나는 2011년 4월, 벚꽃이 만개하던 어느 봄날 처음 만났다. 당시 나와 J는 A대학교의 학보사 수습기자였는데 캠퍼스가 달라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해 4월에 전국 학보사 기자 캠프가 열렸고 우리는 그날 처음 대면식을 하게 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본 그 순간을 우리 둘 다 또렷이 기억하는데, 내 기억 속 J는 위로 한껏 치켜 올라간 호랑이 눈썹을 하고 엄청난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를 하던 모습이다. '쟤는 표정이 왜 저러지? 기분 안 좋은 일 있나 봐'라고 생각하고 나는 곧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잔뜩 신난 채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노느라 J의 존재를 금방 잊어버렸다.
반면 J는 강당에 있던 나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곰돌이 자수가 큼지막하게 들어간 분홍색 맨투맨을 입고 무려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J는 당시 내 모습을 보고 '참 해맑고 순수해 보인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크고 반짝이는 눈과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 후 J는 6개월간 내게 끊임없이 고백을 했고, 나는 5번째 고백을 받았을 때 사귀자는 대답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관계는 햇수로 12년째 함께하는 중이다.
첫눈에 반하는 순간을 표현하는 문장은 많다. 귀에서 종소리가 들린다거나 눈앞에 후광이 비추며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거나. 과학적으로 사람은 단 0.2초 만에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어 첫눈에 반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경험이 없어 이 말이 이해되진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찾아보자면 흩날리는 벚꽃을 넋을 놓고 보게 되거나 동경하던 연예인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느낌과 비슷하겠거니 추측해볼 뿐이다.
J는 스무 살에 첫눈에 반한 사람이 첫사랑이었고, 결국 첫사랑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첫눈에 반하던 순간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아직도 나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의 공기와 온도, 내 모습까지 박제된 것처럼 선명하다고 한다. 첫눈에 반하는 마법의 효과는 연애를 시작하고 시간이 꽤 흐른 뒤에도 유효하게 작용하곤 했다. 별 것 아닌 걸로 다투다 짜증을 내는 내게 화를 내려고 하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첫눈에 반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며 화가 스르르 풀렸다고 하니, 나는 가만히 앉아서 다툼을 해결하는 이득을 꽤나 본 셈이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비극으로 끝나곤 한다. 첫사랑은 원래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첫사랑에 대한 동화 같은 스토리와 비극적 새드 앤딩이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건 애초에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외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를 마주치고 단 0.2초 만에 사랑에 빠지는 건 상대와 마주한 그 순간의 외적 요소에 100% 의존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쉽게 깨지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첫눈에 반했던, 반짝이는 그 순간은 너무나 짧지만 상대방을 자세히 알게 될수록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게 되는 시간은 불같은 감정을 순식간에 잠식해버리기 때문이다. 0.2초 만에 찾아온 스파크 같은 감정이 순식간에 퇴색되는 과정은 하얗게 피어난 목련꽃이 바닥에 떨어져 갈색으로 갈변되는 모습 같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변질된 실망의 순간은 애써 잊어버린 채 반짝였던 첫사랑이 만개했던 순간만을 무용담처럼 풀어내는 걸까.
여기까지 긴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면 듣고 있던 J의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 사람과 9년간 단 한 번도 헤어지지 않고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해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스토리니까. 똑같이 0.2초의 기적을 선물 받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0.2초를 12년까지 이어올 수 있던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J에게는 첫눈에 반했던 마법이 아직 풀리지 않았고, 나는 그 마법 덕분에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