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 8년째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건강 관련 일이면 무조건 간호사를 찾는 복지관 덕에 고독사를 가장 많이 목격한 직원 중 한 명이 되었다.
나는 암 병동과 내과 병동에 5년간 근무해서 매일매일 환자의 임종을 보는 것과 사후처리에 익숙하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임종을 맞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왜 이렇게 고독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계를 맺었던 어르신의 죽음에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우선, 지역사회 즉 가정에서의 고독사는 내가 병원에서 보던 임종과는 달리 너무나도 외롭고 처참하다. 몇 개월 입원 후에 퇴원하는 병원과 달리 복지관에서 만난 분들과는 수년째 라포 형성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내 친구나 옆집 아주머니의 임종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복지관에서 일하다 보면 '안부 확인'이라는 업무가 있다. 며칠째 연락이 안 되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어르신이 있으면 직접 댁을 방문한다.
첫 번째 고독사 현장
"김○○ 할머니 연락이 며칠째 안 돼요."
요양보호사의 신고로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다. 119와 경찰서에 신고 후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계신 할머니. 옆에는 부러진 안경이 있었다. 아마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어지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살아계셨다. 하지만 3일 동안 화장실 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계셨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제가 복지관에서 온 간호사에요."
할머니는 간신히 눈을 뜨시며 말씀하셨다.
"아, 다행이다... 이렇게 죽는 줄 알았어..."
그 순간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도감과 절망이 뒤섞인 그 눈빛.
하지만 모든 발견이 이렇게 다행스럽지는 않았다.
두 번째 고독사 현장
"박○○ 할아버지가 며칠째 안 보여요. 우유도 그대로 있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온 신고였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우유를 가져가시는 분이었는데, 3일째 우유통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냄새도 냄새였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침실 바닥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고, 손은 전화기 쪽으로 뻗어있었다. 아마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전화기는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세 번째 현장 - 가장 가슴 아팠던 사례
이○○ 할머니는 매일 복지관 경로식당에 오시는 분이었다. 2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오시던 분이 3일째 안 보였다.
"할머니 어디 가셨을까요?" "병원에 가신가?"
다들 궁금해했지만,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는 늘 혼자 오시고 혼자 가셨다.
나는 동료와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작은 원룸이었는데, 문틈으로 전단지가 가득 꽂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할머니는 침대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 계셨다. 하지만 가슴이 아픈 건 다른 이유였다.
탁자 위에는 복지관에서 받아온 도시락 용기가 깨끗하게 씻어져 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복지관에서 나눠드린 반찬들이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달력에는 복지관 프로그램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할머니에게 복지관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홀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무기력감의 시작
어느 정도였냐면 업무처리 속도 1위이던 내가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출근해서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뭘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컴퓨터 내에 있는 파일들을 여러 번 클릭해 볼 뿐, 머릿속이 멍해진 바보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잠이 들었고, 온종일 한 끼를 먹지 않았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사례를 외면하기 시작하다
중증 사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부담이 되고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딜레마적 순간을 피하고 싶었다. 꾹꾹 눌러 담아왔던 마음이 터져버린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복지관 회의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울어버린 사건과 나를 오랜 시간 지켜본 상사 두 분이 나를 보고 무섭다고 이야기해주었을 때였다.
나는 회의시간만 되면 날이 서서 "사회복지사는 건강 사정을 이야기 못 하나요?", "기본적으로 할 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와 같은 발언을 해서 회의 분위기를 경직시키는가 하면, "더 이상은 못해"라는 말을 늘 하고 지냈다.
8년 동안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위기 상황, 즉 응급상황에는 내가 있었다. 고독사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엔 기관에 이렇게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있는데 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건가? 하면서 마음이 힘들어졌다.
나는 이렇게 물속에 가라앉는 사람처럼 바닥까지 찍어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퇴사를 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영영 이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감 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건복지부 제안 사항
안녕하세요! 저는 ○○복지관 간호사 □□□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근무하며, 독거 어르신들을 많이 찾아뵙고 만나게 되는데, 관련하여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여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의 복지관이 속해 있는 ○○단지에서는 독거 어르신들께서 지병으로 가정에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세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는 어르신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홀로 집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화장실에서 유명을 달리하는 그 순간 '119'에 연결될 수만 있다면 어르신들께서 가정에서 쓸쓸히 돌아가시지 않고 병원에서 작은 처치라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답장은 현실적인 한계를 이야기했다. 예산 문제, 기술적 문제, 관련 부처간 협의 문제...
복지관에서 울어버렸다. 창피하게 감정이 북받쳐서 말도 못 할 정도로 말이다. 대학 교수님이 오셔서 슈퍼비전을 해주는 시간이었는데 사례관리자의 소진에 관련한 이야기를 듣다가 울어버렸다.
교수님에게 슈퍼비전을 받은 사례가 애도의 과정을 다뤄야 하는 사례였는데 우리는 클라이언트의 애도 과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시간을 들여 이야기하는데 사례관리자가 경험하게 되는 애도의 과정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았나 생각했다.
교수님이 주신 자료에서 애도의 과정에는 4단계가 있다. 그중 나는 1단계 충격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만 사회복지사 아니다. 나만 간호사 아니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다.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다. 서비스 담당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동주민센터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119와 경찰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모든 일은 나 혼자 개선할 수 없다.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사망하신 어르신의 마지막 길이 너무 초라해서, 그것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어르신이 고통스럽게 사망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노력하면 그걸 내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하자.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1.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이해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고, 존엄하게 떠날 권리가 있다. 비록 혼자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 분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2. 예방의 중요성
고독사를 막을 수는 없지만, 고독한 삶을 줄일 수는 있다. 평소의 관심과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3. 시스템의 한계와 인간의 역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하지만 시스템의 틈새를 메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우리 같은 현장 전문가의 역할이 그래서 소중하다.
4. 나 자신을 지키는 법
무한정 감정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다. 전문가로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국 나는 다시 일어섰다.
고독사 현장에서 느낀 절망감과 무력감.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모든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모든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완벽한 돌봄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최선의 돌봄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함께라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 다음 화 예고 절망의 끝에서 다시 일어선 김정은.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 그리고 업무 로테이션까지. 번아웃에서 회복하기까지의 솔직한 과정을 이야기한다.
여러분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무너진 경험이 있나요? 그때 어떻게 다시 일어서셨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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