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10화. 마지막 한 달

by 김정은

복지관과 수십 년을 함께한 할머니

우리 복지관에는 고우신 할머니가 계신다. 복지관과 수십 년 동안 인연을 함께 해 온 할머니는 복지관에 전화하실 때마다 본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직원에게 호통치시는 호탕한 성격이시다.

할머니는 항상 건강하고 활기차셨다.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다른 어르신들과도 잘 어울리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변화

무더운 여름이 식어가는 어느 날, 할머니를 담당하던 요양보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식사를 거부한 채 물만 먹는다는 전화였다.

할머니를 찾아가 보니 이전과 다르게 기운이 없으셨다. 줄곧 "입맛 없어, 밥 먹기 싫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식사도, 병원도 모두 거부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비뚤배뚤한 글씨로 병원을 절대 가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시며 완강한 마음을 보이셨다. 집에서 여생을 보내시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지만, 나는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할머니의 의지 존중하기

요양보호사는 할머니의 영양을 위해 보조식을 준비했고, 할머니가 욕창이 생길 수도 있으니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자세를 자주 바꾸시라는 당부를 드렸다. 혹시나 하는 응급 상황을 대비해 119에 바로 연락할 수 있게 조치까지 취했다.

저희의 당부에도 할머니는 영양보조식과 기저귀 교체를 거부하시면서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셨다. 할머니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시다며 오물이 있는 방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

바닥이라도 깨끗하게 치우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쳤다.

"이대로 죽을 거야! 빨리 죽고 싶으니까 도와주지 마!"

할머니의 딸도 할머니를 설득해 봤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 시간의 설득

나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와 함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세 시간이 넘도록 설득했다.

"할머니, 이렇게 여생을 보내시기 싫으시잖아요. 이렇게 여생을 보내시기 싫으시죠?"

할머니는 진심으로 돕고 싶은 우리 마음을 느끼셨는지 도움을 받겠다는 끄덕임을 보이셨다.

진정된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있었다.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들만 있다 보니 욕창 소독과 같은 의료 처치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할머니를 진료할 수 있게, 가정방문 의사 선생님에게 의뢰서를 보내고 할머니의 사정을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신속히 할머니 댁에 방문하여 면밀히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약 처방, 소변 줄 연결, 욕창 소독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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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통합돌봄의 실현

응급 처치를 끝내고 우리는 할머니를 병원으로 이송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를 했다. 할머니의 의사는 명확했기에 요양센터장, 요양보호사, 가정방문 의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보건소 등이 할머니의 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댁에서 지내시는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할머니 댁에 자주 방문하고,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만약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더 이상 집에서 관리가 힘든 경우에 병원으로 이송하자는 결론을 냈다.

돌봄 체계 구성

가정방문 의사: 주 2회 방문, 의료적 상태 점검

복지관 간호사: 매일 방문, 욕창 소독 및 건강 관리

사회복지사: 격일 방문, 전반적 생활 지원

요양보호사: 매일 오전, 기본 돌봄 서비스

보건소: 주 1회, 재택 의료 서비스


한 달간의 기적

그렇게 나는 가정방문 의사, 복지관 간호사, 사회복지사와 함께 매일 할머니 댁에 방문해 욕창 소독을 했고, 가정방문 의사가 방문하지 않는 날에는 복지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가 직접 욕창 상태를 확인하며 할머니의 건강을 확인했다.

이런 정성에 할머니도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할머니의 건강 검진을 위해 보건소 재택 의료 서비스를 연결하여 할머니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진료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요양센터장님과 협의하여 할머니 댁에 전동 침대를 설치해 할머니가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생활하실 수 있게 노력했다.

할머니의 변화

오물로 가득했던 방바닥에 누워 죽겠다고 소리치시던 할머니는 우리가 방문하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셨다. 할머니를 닦아드릴 때마다 "깨끗하게 닦아주니까 너무 시원해~"라며 손을 꽉 잡아 주기도 했다.

돌봄 공백 최소화

할머니에게 많은 관리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전에 할머니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3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한 돌봄 시간을 채우기 위해 주민센터에서 '돌봄 SOS' 신청했다.

그렇게 요양보호사와 SOS 돌봄으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할머니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공백은 복지관 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최소화했다.


아쉬운 결말

한 달 동안 지속적인 관리로 할머니의 욕창은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약과 영양보조식을 잘 드시질 않아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셨다.

의사 선생님은 소변의 양상이 좋지 않고 다리에 부종도 관찰되고 있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자녀들의 오랜 고민 끝에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할머니의 요양병원 입원을 결정한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과 함께 비가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달 동안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할머니가 원치 않은 입원을 하게 되어 속상했다.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가 치료 잘 받으시고 집에 다시 오면 다시 우리가 잘 보살펴 드릴 수 있으니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다.


전문가의 진정한 역할

누군가는 대변을 치우고,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집을 청소하는 일이 전문가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물 범벅인 바닥에서 어르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너나없이 소매를 걷어 바닥의 오물을 치우고 어르신이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전문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할머니의 의사를 존중하여 보낸 한 달 동안 함께한 간호사, 사회복지사, 가정방문 의사, 요양보호사들은 할머니의 행복을 바랐기 때문에 마음과 정성을 쏟을 수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치료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셨지만 함께한 한 달 동안 할머니에 대한 우리의 진심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현실

고우신 할머니 사례를 통해 우리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았다.

가능성:

다직종 전문가들의 효과적 협력

이용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제공

가정에서의 존엄한 돌봄 실현

병원 입원 지연을 통한 비용 절감


한계:

24시간 지속적 돌봄의 어려움

응급상황에 대한 즉각적 대응 부족

가족의 돌봄 부담 여전히 존재

의료적 한계 상황에서의 선택 제약


나에게 남은 깨달음

할머니와 함께한 한 달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1. 존엄한 죽음에 대한 고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와 안전 문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2. 팀워크의 힘

한 사람의 전문가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여러 전문가가 힘을 합치면 가능해진다.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협력할 때 진정한 돌봄이 실현된다.

3. 가족의 소중함

할머니 딸의 갈등과 고민을 보며, 가족 또한 돌봄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돌봄이다.

4. 시스템의 중요성

개별 전문가의 헌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과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할머니가 남긴 메시지

할머니는 결국 요양병원에서 평안히 돌아가셨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우리를 기억해주셨다.

딸이 전해준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 "복지관 사람들이 참 좋았어. 마지막에 그 사람들이 있어서 덜 외로웠어."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울컥했다. 우리가 할머니에게 해드린 것보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더 많았다.

사람의 마지막은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 전문가라는 이름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함께해야 한다는 것. 때로는 치료보다 따뜻한 손길이 더 중요하다는 것.


� 다음 화 예고 따뜻한 마무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지관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마주하게 되는 가장 충격적인 현실 - 고독사. 홀로 세상을 떠나는 어르신들 앞에서 느낀 무력감과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여러분은 소중한 사람과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존엄한 마무리란 무엇일까요?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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