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와 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소진이 찾아왔다. 중증 사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부담이 되고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딜레마적 순간을 피하고 싶었다.
꾹꾹 눌러 담아왔던 마음이 터져버린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복지관 회의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울어버린 사건과 나를 오랜 시간 지켜본 상사 두 분이 나를 보고 무섭다고 이야기해주었을 때였다.
내가 신뢰하는 상사 두 분의 말씀에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것이 심리 상담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함을 알게 되었다.
최근 기관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있었는데 평가서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잘한 점/부족한 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소진 극복을 잘하는 것 같다.' '소진 극복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평가회에서 직원이 질문을 했다. "힘든 건 알겠는데 전문가는 소진이 오지 않아요.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심리 상담이 필요한 사람 혹시 있어요?"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마음속에 화가 있었다.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을 해야 할지 모르다니.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는 물어보면 알 것이고 어떤 지원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물어보면 알 것인데.
심리 상담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던 나는 너무나도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심리 상담은 10회기가 기본이고 회당 10만 원 정도였다. 교육비로 3회기를 할 수 있다. 1년간 교육비는 30만 원 지출. 그리고 상담 더 필요하면 70만 원 자비 지출.
나는 다짐했다. 직원 교육비 30만 원으로 심리 상담을 받지 않을 것이다. 대신 외부 자원을 확보해서 상담을 받을 것이다.
다행히 노원구에서 지원하는 사회복지기관종사자 심리지원사업이 시행되어 복지관에서 1등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복지기관 종사자 심리지원은 총 600포인트가 '상담포유' 사이트로 제공되고 대면과 화상은 회당 100포인트, 카톡 상담은 회당 50포인트가 차감되는 방식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심리상담을 통한 깨달음
작년부터 이어온 무력감이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을 기대하지 않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의 경력이 생기니 순수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모습은 사라진 채 요령껏 적당히 하는 것도 배우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생기는 상처와 업무적 어려움은 사명감을 낮추고 나 자신을 보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것은 내가 모두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누가 회사에서 그렇게 에너지 100을 쓰라고 했냐.', '너가 100을 쓰고 와서는 왜 집에 와서 이러고 있어'라고 자책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회사에서 에너지를 100도 쓰지 않고 있었다.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하루 종일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어떤 것이 힘드냐고 물어봐도 나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내가 어떤 게 힘든 줄 알았으면 이러고 있겠냐!", "어떤 게 힘든지도 지금 모르는 그런 상태야"라고 말이다.
나는 용기를 내서 정신과 의원에 방문했다. 정신과에 가는 동안 의사 선생님한테 어떤 증상을 이야기해야 할지, 어떤 부분을 조금 도와 달라 할지 수많은 고민을 했다.
첫 번째 시도의 실패
그런데, 주말은 예약제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감기에 걸리면 이비인후과를 가듯이 그냥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가는 내내 떨리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들어갔던 정신과 진료 도전은 실패했다.
그대로 돌아 나오면서 괜히 심술이 났다. '다시는 안 갈 거야. 어차피 약만 받아서 나오려고 했었어. 나는 아프지 않아, 힘들 때 약 먹으려고 했다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두 번째 시도
일하던 중 숨이 막히고 짜증이 났다.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의문이었다. 이내 다시 정신과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차를 내고 정신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두 달 정도 약물 치료를 해보자고 했고 초기 약 조정을 위해 3일~4일 간격으로 약을 조정했다.
약물 치료의 효과
약 복용 한 달째가 됐을 때 나의 마음은 굉장히 편안했다. 어떤 느낌이냐면 '나는 예전에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효과가 있는 걸 보니 내가 1년 동안 마음이 아픈 상태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심리 상담을 하면서 남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남편의 객관적인 한마디가 로테이션을 신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은아 너는 월급 150만 원을 받아도 이 일이 너무 재밌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너가 사례관리팀에 간 뒤로 너가 너무 힘들어 보여."
그렇다. 나는 150만 원을 받았을 때도 '사람이 일을 이렇게 즐겁게 할 수도 있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던 사람이다. 지금은 주임이고 월급도 배로 올랐는데, 왜 나는 매일 매일이 울상일까.
로테이션의 의미
나의 간호사 첫 입사 부서가 복지서비스팀이었다. 3년 차가 되었을 때 기관의 방향에 따라 친한 동료와 함께 사례관리팀으로 로테이션이 되었다. 당시 나는 사례관리팀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8년 경력 중에 3년이 복지서비스, 5년이 사례관리팀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내 의사보다는 기관의 방향에 맞춰 살아왔던 것 같다. 기관의 방향에 맞춰 살았던 나는 "혼란스럽다", "나는 누군가요?"라고 리더에게 수없이 물어보았다.
그럼에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로테이션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내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복지서비스2팀으로 로테이션이 되었다. 사례관리팀에 있을 때도 했던 보건의료사업은 그대로 가져왔고 월계 커뮤니티케어 사업만 추가됐기 때문에 사업의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팀원이 바뀌니 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마음의 부담감이 줄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사례를 담당하지 않아서 마음의 짐은 적다. 사례관리라는 업무가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성을 근거로 하고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사례관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특히 보호자가 없는 수급 어르신이 많은 우리 지역의 특성상 사회복지사가 보호자에 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약물 치료를 받은 지 한 달 반째, 약물의 효과가 좋아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근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건강관리실 근무 중 멍하게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문하는 어르신의 인사말에 반응은 하지만 누가 다녀갔는지,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멍해졌다.
다음날 출근해서 팀장님에게 한 달간 무급 휴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은데, 그것을 유지하기에 현재 제 건강 상태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일하면서 심리 상담을 받고 정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업무 로테이션도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보는 중인데 근무 중에 멍하고 불안감이 심해져 쉬는 동안 나에게 집중하고 치료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무급휴직이 준 깨달음
한 달 간의 무급 휴직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시간이었다.
무급휴직 기간 동안엔 매일 만보 걷기를 했다.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릇이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니, 사업량도 많아지고 중간리더의 역할도 해야 했으며, 여러 강의 제안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나는 워킹맘이었다. 그것을 모두 담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10회기의 심리상담을 통해, 드디어 나는 이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위와 상관없이 사람답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셨네요"
그렇다. 바로 그것이었다.
상담을 통해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니, 우리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3년만에 나는 나의 죄책감을 그렇게 내려 놓았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처참하게 돌아가신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나의 치유되지 않았던 마음이 그대로 올라 왔던 것이다.
무급휴직이 끝날 무렵 나는 한가지 다짐을 했다. 내가 복지현장에 있는 동안에 복지관 간호사를 돕는 책 1권과 사회복지사를 돕는 책 1권은 꼭 써야겠다고 말이다.
내가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은 나의 생각을 글로 전하고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그 일을 함께 하면된다.
삶의 밑바닥에 앉아 생각해보니, 앞으로도 나는 수없이 좌절 할 테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게되었다.
번아웃에서 회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
1. 인정하기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
2. 전문적 도움받기
심리상담으로 마음 돌보기
정신과 진료로 뇌의 균형 맞추기
약물의 도움 받기
3. 환경 바꾸기
업무 로테이션으로 부담 줄이기
휴식으로 재충전하기
체력 기르기
4. 의미 찾기
내가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 발견
상처받은 마음의 뿌리 이해하기
새로운 목표와 비전 설정
복직 후 나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만큼 모든 것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는 최선을 다할 수 있다.
� 다음 화 예고 번아웃에서 회복한 김정은, 이제 그녀 앞에는 새로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과 그 속에서 찾은 진짜 답. 마지막회에서는 자신만의 길을 확신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다.
여러분도 힘든 시기를 겪으며 전문적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나요?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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