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할 때는 내가 간호사라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했다. 명찰에도, 복장에도, 내가 쓰는 언어에도 '간호'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복지관에서, 재택의료센터에서, 현장을 바꿀 때마다 나는 내 정체성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
서류에는 사회복지사, 기관 소개에는 간호사, 실제로는 행정도, 교육도, 사례관리도 함께했다. 어느 순간, 나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여자간호대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한 학생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도 간호복지사가 되고 싶어요."
그 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내가 해온 일을, 누군가가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그 이름은, 그동안 내가 겪은 정체성의 경계들을 하나로 꿰어주는 말이었다.
어느 회의 자리에서였다. 사례에 대해 간호적인 의견을 냈더니,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그건 의료 쪽 이야기고요. 우리는 생활을 보는 거잖아요."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반만 맞았다.
나는 생각했다. "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나누지 못할까."
현장에 나가 어르신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두 개의 감각이 동시에 작동한다. 하나는 '간호사의 눈', 또 하나는 '복지사의 마음'이다.
간호사의 눈으로는 발을 먼저 본다. 부종은 있는지, 상처는 없는지, 보행은 안전한지. 손의 떨림이나 시선의 초점, 약 봉투에 적힌 복약 시간까지 빠르게 스캔한다.
하지만 문득, 어르신의 식탁 위에 놓인 반쯤 비워진 국그릇을 보면, '복지사의 마음'이 움직인다.
"혼자 드셨어요? 요즘 식사는 잘 하고 계세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하나의 시야로는, 결코 한 사람을 온전히 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간호사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간호와 복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는 '돌봄'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이 일을 해왔다.
간호복지사란 무엇인가?
단순히 두 개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의료적 지식과 사회복지적 시각을 통합하여, 사람의 건강과 복지를 전인적으로 지원하는 전문가다.
김말순 할머니를 떠올린다. 치매 초기 단계에서 우울증까지 겹친 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그냥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만약 간호사로만 접근했다면 약물 복용과 인지 훈련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로만 접근했다면 심리적 지지와 사회적 관계에만 중점을 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시각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혈압약이 우울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의료적 관찰과, 동시에 할머니가 가족과의 갈등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계신다는 사회적 이해. 이 둘을 연결할 때 비로소 할머니를 온전히 도울 수 있었다.
8년간의 현장 경험을 통해, 나는 간호복지사의 구체적인 역할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이순옥 할머니의 사례
80세, 당뇨와 고혈압이 있으시고 독거로 생활하고 계셨다. 배달 봉사자가 "요즘 할머니가 말씀이 줄어든 것 같다"고 보고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간호사의 관찰: 혈압 160/90mmHg, 얼굴이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 오른쪽 팔이 왼쪽보다 덜 올라감.
사회복지사의 관찰: 평소보다 의욕이 없어 보임, 집안 정리 상태 평소와 다름, 사회적 활동 참여 의지 감소.
통합적 판단: 뇌졸중의 전조증상 + 사회적 고립의 심화
즉시 119에 신고하여 병원으로 모시고 갔고, 검사 결과 경미한 뇌졸중이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큰 후유증 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다.
만약 의료적 관찰력이 없었다면 단순한 우울감으로 치부했을 수 있고, 사회복지적 관점이 없었다면 신체 증상에만 매몰되어 할머니의 전반적인 상황을 놓쳤을 것이다.
복지관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여러 개의 만성질환을 갖고 계신다. 하지만 각각의 질병을 따로 관리하는 것보다, 어르신의 전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건강을 바라볼 때 더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정수빈 할아버지의 당뇨 관리 사례
78세, 당뇨를 앓은 지 15년이 된 분이었다. 매달 병원에 다니시고 약도 잘 드시는데 혈당 조절이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약물 조정, 식이요법 교육, 운동 처방
통합적 접근:
인슐린 보관 방법 확인 → 냉동실에 얼려서 보관하고 계셨음
혈당 측정 패턴 분석 → 한 달에 서너 번만 측정
실제 식사 관찰 → 흰밥과 김치만으로 식사
가족 지지체계 → 독거로 건강관리 동기 부족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여 종합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고, 3개월 후 할아버지의 혈당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고령화 사회: 복합적 욕구를 가진 고령자 증가
만성질환 증가: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관리 필요
가족구조 변화: 전통적 돌봄 체계의 한계
사회 격차 확대: 취약계층에 대한 세심한 접근 필요
고우신 할머니의 마지막 한 달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 하셨을 때, 우리는 가정방문 의사, 복지관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보건소가 함께 돌봄 체계를 구성했다.
가정방문 의사: 주 2회 방문, 의료적 상태 점검
복지관 간호사: 매일 방문, 욕창 소독 및 건강 관리
사회복지사: 격일 방문, 전반적 생활 지원
요양보호사: 매일 오전, 기본 돌봄 서비스
보건소: 주 1회, 재택 의료 서비스
이때 내 역할은 단순히 의료적 처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조정하고 연결하는 역할이었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요양보호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사회복지사의 생활 지원 계획과 의료적 필요를 연결하며, 가족의 요구와 전문가의 판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나갔다.
8년의 여정을 거쳐, 나는 이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간호복지사입니다.
나는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통합적으로 돌보는 실천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의료와 복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의 건강과 복지가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는 전문가 간의 소통을 돕고,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더 나은 돌봄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서울여자간호대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한 학생이 내게 쪽지를 건넸다.
"선생님, 저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간호학과에 편입했어요. 선생님의 길을 따라가고 싶어요."
그 쪽지를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 길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겪었던 혼란과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내가 만들어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지도가 되고 싶어서.
간호복지사가 되기까지 8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간호복지사이고, 이것이 나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누군가는 "이름 없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름이 없었던 일들이 모여 하나의 길이 되고, 그 길 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돌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름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나는 그 믿음으로 오늘도 일한다.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 연재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름 없는 일로 세상을 바꿔가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함께 걸어요.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매돌봄 #고독사 #재택의료 #죽음 #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