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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27. 2022

금슬 좋던 고양이, 할미냥의 이야기

금슬 좋던 고양이 부부이야기

안녕하세요? 한옥 정원에 사는 젖소 고양이입니다.

지난번엔  호랑이를 닮은 ‘고랭이’ 이야기를 해드렸지요? 오늘은 ‘할미냥이’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할미냥이는 우리 한옥 정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고 털이 푸석푸석하며 몸이 제일 야위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부터 저렇게 몸이 야위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해 전, 할비냥이가 살아있을 때는 털빛이 반질반질하니 노란 호박처럼 윤이 나고, 동작이 빠르기를

꽃 위를 나는 나비가 나비인지 할미냥이가 나비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빨랐습니다.     

할미냥은 이 정원에 오기 전에 할비냥이랑 다른 이웃집에서 항상 빨간 하네스 줄을 가슴과 목에 두르고 살던

집고양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집 주인이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오더니 조금 있다가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하던 것이 전체 일곱 마리의 고양이가 한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유~ 이 예쁘고 귀여운 것들! 정말 귀여워 죽겠어!"   

그 집주인은 데려온 고양이에게 모두 방울이 달린 목줄과 하네스를 묶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집 주인에게 아기가 태어났고 그 아기가 자꾸 재채기를 해대자 '정말 귀여워 죽겠어'라던 고양이들은 모두 공원에 버려졌습니다.  

젊은 할미냥과 할비냥도 하루아침에 길고양이 신세가 된 것이었습니다. 첫날에 할비냥과 할미냥은 바깥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우선은 철쭉꽃이 줄지어 핀 관목 덤불에서 숨어 지내기로 했습니다.

둘째 날이 되어 배가 고프자 할비냥이가 말했습니다.

"임자~ 배가 많이 고프지? 우리 함께 공원 밖으로 나가서 먹을 것을 찾아봅시다"

할비냥이 먼저 덤불에서 나오고 따라서 할미냥이 나왔습니다.

두 눈에 까만 안경 무늬가 있는 할비냥은 할미냥을 위해서는 언제나 용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할미냥이 할비냥의 뒤를 따라가고 있을 때 할비냥이 말했습니다.

"임자, 저기에 큰 한옥집이 보이는 구료. 저리로 한번 가봅시다"


ㄱ자 한옥집 노란 나무 대문 사이로 아담한 정원이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비냥과 할미냥은 자세를 낮춰 대문 아래를 가뿐하게 통과해서 '이 집엔 누가 사나?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을 좀 구할 수 있을까?' 하고 마당 안쪽을 살피고 있을 때 뒤뜰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비냥과 할미냥은 한옥집 대청마루 대들보 모서리에 숨어 '누가 있나?' 하고 조심스럽게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여자 사람이었습니다.


여자 사람은 정원의 일을 끝낸 호미와 괭이를 뒤꼍의 벽에 나란히 걸고 있다가 고양이  마리를 보고 반가워하며 '안녕! 고양이!'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우리 집에 귀여운 고양이가 둘이나 놀러 왔네! 근데 어떡하냐?  고양이 밥이 없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무언가 생각이   집안으로 얼른 들어가 버렸습니다.

할미냥은 '무엇을 좀 먹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했다가 여자 사람이 그냥 들어가 버리자 힘이 쭉 빠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 다시 현관문이 열리고 여자 사람이 '참치캔' 가지고 나오더니 한옥 섬뜰에다 접시를 놓고 거기에 참치를 쏟아 으며 말했습니다.

마침 참치가 있었네! 어서 와서 먹으렴”


먼저 할비냥이 슬슬 경계를 하며 섬뜰 위로 올라섰습니다. 비릿한 참치 냄새가 코끝에 스치자 배고파서 아우성치던 배가 더욱 꼬르륵거렸습니다. 할미냥도 할비냥을 따라서 섬뜰 위로 올라섰습니다.

둘은 너무 배가 고팠던 탓에 염치 불고하고 참치 접시 앞으로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할비냥이 먼저 한입 먹더니 할미냥에게 말했습니다.

'임자, 어서 먹어봐. 내가 먹어보니 이 음식은 너무너무 맛이 있네. 어서 먹어봐'

배가 고픈 할미냥은 접시로 얼른 다가가서 참치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운 할미냥이는 할비냥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영감, 영감도 먹어요. 같이 먹어야지. 왜 항상 나한테 먼저 먹으라고 하고 기다려?"

그렇습니다. 할비냥은 항상 할미냥에게 음식을 양보하고 기다리다가 할미냥이 어느 정도 먹으면 할비냥이

먹기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할미냥이 좋아하는 고기가 나오면 그날은 틀림없이 할비냥은 할미냥 옆에서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며 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은 참 금슬 좋은 부부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둘은 이 한옥집의 마당 고양이 1,2호가 되었습니다.

한옥집 마당 고양이 1,2호가 된 할비와 할미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오는 초여름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오후가 되도록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고양이 집사가 된 여자 사람과 나는 내리는 비를 보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집사의 손에 들린 오묘한 커피 향이 빗소리와 함께 섞일 때 집사가 말했습니다.

"젖소야,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왜냐하면, 내가 정원에 꽃을 심잖아? 그러면, 꼭 그다음 날에 비가 오더라. 정말 신기하지?"

나는 졸리는 눈을 하고 빗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면서 '고로롱고로롱' 잔잔한 '골골송'을 불렀습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집사는 커다란 하얀 봉지에서 사료를 꺼내어 주며 말했습니다.

"어? 이상하다. 오늘은 왜 할비냥이 안보이지? 아까 점심때까지도 보였는데... 할미냥? 할비 어디 갔어?"


할미냥은 "정말 이상하네요. 비가 와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밖에 산책을 나갔는지 안 보이네요"

"곧 들어오시겠죠, 뭐. 할미, 어서 저녁 드세요"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할미냥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어도 할비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미냥은 대문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할비냥을 기다렸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할비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뒷집 사람이 대문으로 들어오더니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집에   안경 고양이 말이에요? 안보이죠? 글쎄, 며칠 전에  오던  있죠? 저기 앞에 도로에서 차사고가 났는데 얼룩 고양이  마리가 쓰러져 있더라고요.    고양이 같더라...   고양이 맞나 보다.. 정말, 할배 고양이는  보이네, 아이고 어째..."


할미냥이는  소리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같았습니다.

"야아옹! 아이고~ 영감! 나를 두고 어데를 갔소? 고양이는 생명이 아홉 개라던데... 왜 나한테 안 돌아와?"

그날부터 할미냥이는 시름시름 앓는 것처럼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대문가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구석진 곳에 들어가서 멍하니 웅크리고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노란 호박같이 둥그렇던 몸도 점점 야위어 가고 예쁜 삼색 무늬의 털옷도 점점 빛을 잃고 초췌해져 갔습니다.

할미냥은 혼자 앉아서 할비냥이를 생각하며 울다가 그만 눈병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만 먹으면 쓸고 닦아내고 가지런히 윤을 내던  그루밍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가서 온종일 헤매고 다니다 들어오고 하더니 어느새 입가에는 구내염이 생겨버렸습니다.

"고양이들의 시간이 사람보다 4배 정도 빨리 간다더니, 우리 할미냥이가 할비냥 가더니 슬퍼서 시간이 더 빨리 가버렸네" 핼쓱한 할미를 보고 집사가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정말로, 고양이들에게 시간은 빨리 나 봅니다.  눈에도 할미냥은 갑자기 나이가  많이  것처럼 보였으니 말입니다.


집사는 동물병원에 가서 할미 고양이를 위한 약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할미냥이 안 먹을까 봐 할미냥이 좋아하는 고기에다가 약을 빻아서 몰래 넣어 주었습니다.

다행으로 할미는 고기를 잘 먹었고, 나는 할비냥이 했던 것처럼 할미냥이가 양껏 먹도록 곁에서 기다려 주었습니다.

"할미냥, 꼭꼭 씹어서 많이 먹어. 먹고 나아서 나랑 같이 놀아야지. 나는 세상에서 할미냥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알지? 내가 할미 좋아하는 거?"나는 할미냥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할미냥은 고기를 먹다가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자. 그리고, 네가 이제부터 내 손자 해라"

나는 할미냥의 손자가 되어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어딜 가든 항상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들판의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는 늦가을이 되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자, 어디서 숨어 있다 나왔는지 수다스러운 참새들도 더 많이 날고 간혹 새앙쥐들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먹다 흘린 사료 알을 노리던 까치 두 마리도 신이 나서 폴짝폴짝 정원에 뛰어다녔습니다.

소나무옆 하얀 구절초꽃의 노란 나비들도 춤을 추며 이리저리 날아다녔습니다.

할미냥이는 섬돌가에 기대고 누워서 "아이고 다리야, 어깨도 콕콕 쑤시네..."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며 그루밍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새양쥐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쪼르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벌떡! 할미냥이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갑자기 슈퍼맨이 되어 그 생쥐를 잡으려고 돌진했습니다.

우와! 우리의 할미냥이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서 저렇게 팔팔하게 뛰는지 집사와 나는 턱을 아래로  떨어 뜨리며 쳐다보았습니다.

할미냥이는 점프를 하고 돌아 잽싸게 앞발을 휘두르며 새양쥐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달렸습니다.

이윽고, 정원을 달리던 할미냥이의 입에는 작은 새양쥐  마리가 물려 있었습니다.

할미냥이가 우릴 보고 씨익 웃으면서 다가왔습니다.

"집사야, 그동안 나 아파서 돌본다고 수고 많았지? 이거 정말 좋은 건데, 우리들 고양이가 제일로 좋아하는 거야. 내가 특별히 집사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할게! " 할미냥이 말했습니다.

"그래. 집사! 어서 받아! 할미냥이가 정말 고마워서 주는 거야" 나도 옆에서 집사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어! 꺅! "

생쥐를 본 집사는 소리를 꺅하고 지르더니 얼른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별이 총총한 그 밤에 나는 하얀색 구절초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할미가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데 그 싱싱한 새양쥐를 집사한테 선물한 건 정말 엄청난 사랑의 표현이었어.

한마디로 고양이의 보은이었지, 암!

그런데, 할미냥이는 언제 저렇게 건강해졌대...?'


잠이 든 할미냥이가 옆에서 꿈을 꾸는지 뒷발을 차대며 잠꼬대를 하였습니다.

"아이고, 내 고기! 내 고기.... 야아옹....."

나는 할미가 깰까 봐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 것을 참으며 포근한 단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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