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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27. 2022

사실, 고양이는 꽃을 좋아해

엄마가 보고 싶은 젖소 고양이, 나의 이야기


어느 가곡에는 유월에 모란이 핀다지만 내가 알기로 모란은 5월이 되면 피어납니다.

이른 봄, 한옥 정원의 모래밭 분홍 튤립이 피어나고 정자 옆 가지런한 철쭉이 피고나면 수돗가 양지 바른 곳에 자주색 모란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때 즈음이면 어린이날 근처라 엄마와 아이들이 손을 포개고 웃으며 나들이를 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나는 이것을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보다가 꽃 한 송이가 내 얼굴보다 더 큰 모란꽃 그늘 아래로 쑥 들어가 앉습니다. 자주색 큰 꽃송이에서 달짝하고 포근한 향기가 내 코끝으로 들어옵니다.

집사는 그런 나를 보고 '우리 젖소 고양이는 꽃을 좋아하네'라고 신기해 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집사를 처음 알게 된 날은 이렇습니다.

거짓말처럼 들릴 수 도 있겠지만 어느 이른 봄날 저녁에 나는 평상시처럼 버스정거장 뒤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색종이 유치원'이 나오는데 거기는 웃고 있는 아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날도 나는 그 웃는 아이들이 집에 가려고 노란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거나, 엄마가 데리러 온 아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뒤쪽에서 하얀 자동차가 어린이 구역 속도를 지키며 슬슬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승용차는 꼭 큰 고양이 같은 '갈갈갈갈'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어느 여자가 운전석 창문을 천천히 열더니,

눈을 천천히 깜박깜박거리며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 못 보던 예쁜 고양이네! 나, 이 근처 저쪽 한옥집에 사는데 다음에 우리 집으로 놀러 와"하는 것이었습니다.

첨 보는 여자 사람이 웃으면서 나 같은 고양이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 여자는 고양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나같은 엄마 없는 길고양이에게 말을 걸어오는지

반갑고도 이상하였습니다.

그 여자 사람은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 시간이 되면 자동차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저녁 무렵이 되면, 항상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 유치원 개나리꽃 덤불 아래 숨어 아이들을 엿보곤 했습니다.

'저 아이들 모두 엄마들이 있나 봐. 항상 엄마들이 데리러 와서 아이들을 한껏 안아서 집으로 데려가잖아'


나는 내가 나를 기억하는 순간부터 쭈욱 길에서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누군지 아빠가 누군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항상 무언가가 그립고 홀로 있으면 뭔지 모를 허전함이 자꾸만 몰려왔습니다.

나는 털에 앉은 모기떼를 털어내듯 머리를 세게 흔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그 자동차 여자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코끝을 찡긋거리며 '이 근처에 산다고 했지? 그리로 한번 가볼까?'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있는 힘껏 고양이의 직관력을 발휘하여 그 여자 사람이 왔던 쪽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하얀 큰길이 보이고 낮은 오르막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의 한옥집에 노랗고 큰 나무 대문이 보였습니다.

'아! 저기구나!'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연어 빛깔의 튤립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빨갛고 하얀 철쭉꽃도 바람 따라 흔들리고 하얀 목단꽃도 우아하게 노란 수술을 뽐내며 피고 있었습니다.

한옥 정원에 꽃이 많아서 눈이 부셨습니다.

'이집 주인 꽃을 많이 좋아하나 봐'

때마침, 여자 사람은 한옥 그네에 앉아서 '향기 나는 까만 물'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습니다.

"어! 왔네! 고양이!"

 여자 사람이 반갑게 웃으며 그네에서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생각이 나서 왔어요. 여기서 사시네요?"

"그래, 어떻게 용케 우리집을 잘 찾았네! 이제 알았으니 놀러 오고 싶음 언제든 와" 하고 여자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너는 이름이 뭐야?"라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이름? 그게 뭐예요?"

"아, 너는 아직 이름이 없구나... 그럼, 내가 너의 이름을 지어 불러 줄게. 어디 보자. 너는 젖소와 같은 무늬의 옷을 입고 있고,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그냥 보다가 만났으니 '젖소! just saw!' '젖소'라고 부를게!"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이름은 '젖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이름이 생전 처음으로 생겨서 너무 기뻤고, 그 여자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아서 '젖소'라고 불러주면 언제나 '야옹!'하고 대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매일 그 한옥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 여자 사람이 허락하든 말든 나는 그 집에 아예 머물러 살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 사람은 내가 허락하든 말든 나의 따뜻한 집사가 되어 주었습니다.

 

나는 정원 가득히 꽃이 피는 이 한옥집이 너무 맘에 들었고 따뜻한 마음의 집사도 참 좋았습니다.

게다가, 벌써부터 이 집에는 나이 든 할미 고양이와 할아버지 고양이가 있어서 나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할미, 할아버지 고양이는 마당에서 나와 함께 놀아주기도 하였습니다.

오월의 햇살이 하늘 가운데 걸릴 때나 저녁이 되어 꽃그늘이 지고 어둑할 때, 나는 항상 모란꽃 그늘이나 보라색 수국꽃의 잎사귀 아래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집사는 그런 나를 보고 '우리 젖소 고양이가 꽃을 참 좋아하네'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꽃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엄마냄새가 나는 것 같거든요.

엄마가 있다면 꼭 이런 꽃향기가 날 것 같습니다.


하늘에선 별들이 반짝반짝 뽐내고 한옥집을 치마처럼 둥글게 감싼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춤을 출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마당에 조용히 서있는 연두색 목마한테 다가가서 얼굴을 비비며 물었습니다.

'연두색 목마님... 혹시, 나의 엄마예요?'

키가 엄마만큼 클 것 같은 연두색 목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좋은 집사도 있고 할비 고양이와 할미 고양이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

 나는 엄마품처럼 포근하고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목단꽃 그늘 아래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집안이 떠들썩해졌습니다.

할미 고양이는 어깨를 들썩 거리며 통곡을 하고 집사도 어느 아주머니와 함께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기지개를 얼른 켜고 마당으로 달려 나가 봤습니다.

할미 고양이와 금슬 좋던 할비 고양이가 집 앞 도로에서 차사고가 나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내가 알고 가까이에 있던 존재가 한순간 사라져버리고 없다는 사실이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다음 날, 할미 고양이는 정신이 나가서 그루밍도 하지 않고 대문 앞에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집사한테 가서 물었습니다.

"할미 고양이의 마음이 많이 아프고 외로울 거예요. 할비 고양이가 엄청 보고 싶겠죠?"

"그래... 그럴 거야. 하지만, 할미를 사랑한 할비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되어서 할미를 보고 있을 거야. '할미... 나 없어도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해'하고. 할비는 할미가 행복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진심으로 원할 걸!" 집사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그럼, 할미가 외롭지 않도록 내가 곁에서 많이 도워줘야겠어요, 그런데 집사는 왜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거죠?"

"나? 외로울 때도 있지. 하지만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외롭지도 않고 행복해지더라. 사랑을 주는 거지. 그러면, 정말 행복이 퍼지더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도 내가 너에게 먼저 말을 걸었잖아?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가족이 되었지"


"가족!" 집사가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난 가슴이 뭉클하면서 뜨거운 어떤 것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행복함이 나의 온몸을  따뜻하고 포근히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동무가 되어주는 할미, 나와 마당에서 함께 놀아주던 할비, 나의 음식을 챙겨주고 내가 아픈지 돌봐주는 집사, 마당 한구석에서 열심히 먹어대며 큰 똥을 싸 대는 허스키까지 모두 나의 가족이었습니다.


나는 그날부터 할비를 잃은 할미에게 더욱더 살갑게 꾹꾹이를 하며 다가갔습니다.

"할미! 나랑 놀자! 이거 맛있는 거 나랑 같이 먹어"  

장난을 먼저 걸고 할미의 그루밍도 도와주고 집사가 옴폭한 수키와에 챙겨주는 사료도 함께 먹었습니다.

할미 냥이가 조금씩 기운을 차려 가는 모습을 보니 나의 마음이 더욱 따뜻해 갔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더니 더 행복해지고 하루하루가 외롭지 않았습니다.

나는 밤하늘에 더욱 빛을 내는 별들을 보면서 내일은 또 우리 가족에게 어떤 행복한 일이 생길까 하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집사가 외출하고 돌아오더니 박스에서 꽃을 한가득 꺼내어 수돗가에 세워 둡니다.

나는 또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번엔 또 무슨 꽃일까?'하고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고 꽃송이가 내 얼굴에 스쳐가도록 볼을 비벼봅니다.

그것을 보던 집사는 "우리 젖소는 꽃을 참 좋아한다니까! 나랑 똑같네!" 하며 '하하하'웃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나는 꽃을 참 좋아하는 고양이입니다. 그리고 참 행복한 고양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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