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욕쟁이 길고양이, 고랭이
욕쟁이 길고양이가 한옥집의 새 가족이 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한옥 정원에 사는 고양이, 젖소(justsaw)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한옥집에 살게 된 고양이들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들려 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오늘은 '고랭이'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고랭이'라는 한옥 대문 옆에 사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고랭이! 안녕!' 하고 대문으로 들어서시면 되겠습니다. 고랭이는 황토색 호랑이 줄무늬와 검은색 고등어 줄무늬가 섞인 털옷을 입고 있습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호랑이와 정말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고양이=고랭이'가 그 애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매일 우리의 아침과 저녁밥을 챙겨주며 한옥의 마당과 정원을 관리하는 주인이 나에게 말했니다.
"젖소야, 고랭이가 요즘 하악질이 많이 줄었지? 처음 왔을 땐 하악질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는데."
내가 생각해도 고랭이의 하악질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크아악! 캭! 캬~아! 흐아악!'
인간의 말로 해석한다면 '이 자식! 한번 혼나 볼래? 에이씨! 죽어볼래?'정도 될 겁니다.
어쩌면 더 심한 욕일 수 도 있구요.
사실, 처음 고랭이가 한옥 대문 근처를 기웃거릴 때 나는 녀석이 못마땅하고 자꾸 눈에 거슬렸습니다.
호시탐탐 한옥 대문 근처에 서성거리며 우리가 노는 모습을 노려보듯 보고 있는 녀석이 싫었습니다.
그 녀석이 첫 번째 한옥 대문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집사는 '어? 못 보던 고양이네!'라고 하더니 그 녀석을 보고 가만히 앉아서 눈을 천천히 깜박깜박하는 거였습니다.
눈을 천천히 깜빡깜빡하는 것은 우리 고양이의 언어로 '우리 좋은 친구가 되자'라는 뜻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입을 옆으로 살짝 벌리며 집사에게 나지막이 고로롱거리며 말했습니다.
"저기, 저 녀석 조금 기분 나쁘지 않아? 난 저 녀석이 싫어. 얼굴도 정말 사납게 호랑이처럼 생겨서
나를 노려보고 있거든"
"괜찮아, 너희들도 처음에 그러지 않았니?"
"아니. 집사, 저 놈은 이상해. 앞발을 보라고!"
그 녀석의 앞발은 권투 글러브처럼 뭉툭했습니다. 저 솜뭉치 앞발 속에 날카롭고 거친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 앞발에 호랑이 기운이 넘친다는 것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사는 그 길고양이 녀석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한옥 정원에 살게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급한 마음에 얼른 할미냥을 찾아 불렀습니다.
'할미냥~ 할미냥~ 어디 있어?'
할미냥은 물이 담긴 수키와에 얼굴을 넣고 물을 홀짝이고 있었습니다.
귀가 어두운 할미냥은 물 마시기를 멈추고 잠깐 있다가 고개를 슬며시 들었습니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걸쭉한 침과 함께 턱수염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입병이 난 할미냥은 약을 먹고 있었지만 고양이들에게 '구내염'이란 병은 잘 나아지지 병입니다.
'할미냥! 할미냥도 봤어? 저기 첫 번째 한옥 대문에 어떤 녀석이 얼씬거리며 우리를 엿보고 있는 거?'
"으~응, 응. 나도 봤어. 아까 심심해서 집 앞 산책을 나가려는데 못 보던 녀석이 있었어. 그런데 그 녀석 우리 집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할미냥, 할미냥은 어떻게 생각해? 난 그 호랑이 닮은 녀석 생긴 것부터 맘에 안 들어. 게다가, 아까 나한테 나쁜 하악질 욕도 자꾸 했었어. 그래서 더 싫어. 만약, 그 녀석이 또 대문 근처에 나타나면 난 못 들어오게 막을 거야. 할미냥도 내편이 돼줄 거지?"
"글쎄..." 하고 할미 냥이 말을 흐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다음 날, 하늘이 파랗고 하얀 흰구름이 노래 부르며 흘러가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하얀 마아가렛 꽃이 산들바람의 손길을 따라 기분 좋게 춤을 출 때, 첫 번째 대문에서 녀석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나는 '이때다' 하고 할미냥에게 "할미냥! 지금 그 녀석이 왔어! 빨리 가보자!"라고 소리치며 대문으로 얼른 달려갔습니다.
기와가 얹힌 나무 대문 옆에는 대나무 빗자루가 비스듬히 기대어 졸고 있었고, 불을 때는 황토색 아궁이엔 검은색 궁둥이의 가마솥이 걸려 있었습니다.
연노랑 대나무 빗자루 옆에 그 호랑이 닮은 녀석이 기분 나쁜 실눈을 뜨고 꼼짝 않고 서서 말했습니다.
"야! 나도 여기서 살고 싶어. 길거리는 위험하고 먹을 것도 없어서 배가 많이 고프다고!"
"안돼! 여긴 내 영역이야! 난 널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아!"나도 지지 않고 으르렁하고 대꾸했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내 앞발에 맞아봐야 정신 차릴래? 캬악! 캭! 캭!" 하악질의 욕을 하며 그 녀석이 말했습니다.
"누가 모를 줄 알고! 네가 들어와서 여기서 대장 노릇을 하고 싶어서 그러잖아! 난 용납 못해!"
"그래? 누가 이기나 볼까! 크아악! 캭! 하아악!" 그 녀석이 더 심한 욕을 해대며 덤비려고 자세를 낮추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이야~아~옹! 야~옹!! 캭! 하아악!" 하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그 녀석이 그 큰 권투 글러브같은 솜방망이 앞발을 내쪽으로 날카롭게 마구 세게 휘저었습니다.
앞발을 쫙 뻗으면서 그 속에 감춰뒀던 뭉툭하고 거센 발톱을 확 하고 폈습니다.
녀석의 냥 펀치가 내 눈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 녀석은 등을 동그랗게 말아서 몸집을 크게 하더니 꼬리를 펑! 하고 크게 부풀려 세웠습니다.
나의 꼬리도 마치 강력한 정전기가 생긴 것처럼 펑! 하고 부풀려졌습니다.
그 녀석이 내 주위를 천천히 돌며 얼굴을 낮게 하고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우웨~에엥! 캭캭! 내가 너보다 훨씬 힘이 센데! 네가 이래도 나랑 계속 싸울래? 나도 여기 한옥에서 살 거야!"
나는 싸움에서 지는 것이 싫고 또 지게 되면 그 녀석이 우리 한옥에 살게 될 것이 뻔했으니
끝까지 싸워볼 작정으로 그 녀석에게 덤벼들며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 녀석은 달리기가 어찌나 빠른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하악질을 해대고 나의 냥주먹을 피했습니다.
동네 아파트 사람들이 그 녀석과 내가 싸우는 험한 광경을 보고 창문을 열고 소리쳤습니다.
"훠어이! 훠이! 저 길고양이들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네! 왜 길고양이 사료를 챙겨줘서 이렇게 시끄럽게 만드는지, 원!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집사가 뛰어나오면서 우리를 말렸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계속 그 호랑이 닮은 녀석을 보며 으르렁거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녀석과 나는 계속 영역 다툼을 했습니다.
낮동안 한옥 정원에는 집사가 일을 하고 있으니 집사가 없는 틈을 이용해서 녀석과 시끄럽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집사가 잠이든 조용한 밤이 오면 달빛을 배경으로 하고 우리는 밤새도록 시끄럽게 달리고 쫒고 욕을 하며 싸웠습니다.
"이야~옹! 야옹! 캭! 캭! 캭! 흐아악! 죽어볼래!"
사람들은 "길 고양이들 때문에 기분 나빠! 꼭 아기 우는 소리를 내고 싸운다니까!"라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마아가렛 꽃이 또 바람에 살살 흔들릴 때, 집사는 여느 때와 같이 우리의 아침을 챙겨주려고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집사는 크고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고양이 사료를 한스쿱 푸면서 말했습니다.
'젖소야, 그 고랭이와 사이좋게 같이 살면 안 될까? 너도 처음에 그렇게 우리 집에 와서 한 식구가 되었잖아"
나는 못 들은 것처럼 가만히 고양이 사료 한알을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고양이 사료가 과자 소리처럼 '바스락'하고 귀여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습니다.
그 고양이 녀석처럼 배가 고프고 하악질을 입에 달고 살던 나의 길고양이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나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 그리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쁜 말을 많이 했었잖아. 그 호랑이 닮은 녀석도 얼마나 많이 외롭고 사는 게 힘이 들까?'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나의 길고양이 시절의 삶도 정말 많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길거리에는 마실 깨끗한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어서 항상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먹다 버린 쓰레기를 허겁지겁 뒤져서 정신없이 먹다 보면 쓰레기를 파헤쳐 놓는다고 사람들이 욕을 하며 쫓아냈습니다.
게다가, 오염된 음식 쓰레기와 염분기가 많이 든 사람의 음식으로 겨우 허기라도 때우고 나면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고 심한 입병이 났습니다.
게다가 염분을 많이 섭취하다 보니 몸이 퉁퉁 부어서 무거운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고양이는 아프다는 걸 잘 숨깁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저! 많이 먹어서 돼지처럼 뚱뚱한 고양이 좀 보소! 얼마나 많이 먹어댔으면... 하하하하!"
"아니에요! 아파서 그런 거예요!"라고 소리쳐 대꾸했지만 나의 말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처음 한옥 대문에서 소심한 걸음으로 정원 안을 살피며 기웃거렸을 때 집사는 나를 못 본척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나는 집사의 그런 행동을 보고 일단 안심하며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지는 않아'
다음 날 대문에서 안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 집사가 천천히 걸어오더니 멀찍이 앉아서 눈을 깜박깜박했습니다.
나는 순간 당황하였지만 뒷걸음쳐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오! 저 사람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친하자고 말을 하네! 그리고 저 사람은 우리 고양이 말을 알고 있는 거였어!' 나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집 없는 고양이, 집사 없는 고양이에서 나는 집 있는 고양이, 집사 있는 고양이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나는 그 길고양이 녀석이 꼭 예전의 내 모습과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대문에 또 그 녀석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 녀석에게 다정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했습니다.
"이봐! 내가 양보할게. 같이 이 한옥 정원에서 살자. 여기 집사도 찬성이야. 물론, 할미 고양이도 찬성할 거고.
그렇지만, 나는 네가 지금 완전히 좋지는 않아."
"그래? 정말이야? 정말 고마워! 대신, 나는 네가 나 때문에 기분 나쁜 거는 싫으니까 여기 한옥 대문 근처 부뚜막에서 살게"
집사는 웃으며 다가오더니 '우리 이제 천천히 친해져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다랗고 하얀 봉지에서 고양이 밥을 꺼내더니 옴폭한 한옥 수키와 그릇에 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고양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랭이! 이제 너의 이름은 고랭이야! 힘센 호랑이하고 많이 닮았으니 이름이 '고랭이'야!"
고랭이는 머쓱해하며 "야~옹"하고 대답했습니다.
노래하며 지나가는 봄바람도 우리를 보고는 흐뭇하게 웃으며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고랭이, 그 녀석 역시 이 한옥집의 가족이 되었고 한옥 대문 옆 부뚜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