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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27. 2022

행복한 턱시도 집고양이, 소피

7년째 집고양이로 사는 턱시도 고양이, '소피' 이야기

"아이고! 당신! 또 고양이를 데려오면 어떡해요? 저번에는 납작한 닥스훈튼가 뭔가를 데려 오더니 또 이번엔  고양이예요? 그런데 샴고양이네!"

"일하는데 예쁜 고양이가 버려져 있길래 데려왔지."아줌마의 잔소리에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이 아저씨는 일만 나갔다 하면 뭐든지 주워서 집으로 가져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번엔 샴고양이를 데려왔는데 잿빛 털색에 라벤더 블루의 미묘한 눈빛이 살아있는 녀석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야~아옹! 아~웅!'하고  며칠 요란한 소리를 내던 샴고양이는 낮은 베란다 창문으로 집을 나갔다가 아침이 되어 들어왔습니다. 이때부터 샴고양이의 배는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샴고양이가 아기를 가진 것이지요.

그리고 두 달이 남짓 지난 어느 날, 가족들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샴고양이 한 마리는 여덟 마리의 대식구가 되어 아저씨네 가족을 맞이하였습니다.

"낑낑...앵앵앵...야옹~"

"아이고! 어떡해! 고양이가 이제 여덟 마리가 되었네! 그런데 이게 뭐야? 왜 새끼고양이들이 모두 새까매?"

아줌마가 놀란 듯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까만 털의 아기 고양이들은 누워있는 엄마 샴고양이의 배 주위에서 젖을 찾느라 낑낑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고양이들의 아빠는 집 밖 골목길에 사는 까만 길고양이였던 것이었습니다.

"나, 이 고양이들 다 못 키워요. 당신이 알아서 해요. 아~유! 내가 진짜 못살아!"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젖이나 떼고 어떻게 해야지, 두어 달만 좀 참아 봐" 아저씨가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한 달이 남짓 지난 어느 날, 아줌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가져오더니 까만 고양이 새끼들을 상자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양이 상자를 자동차 뒷트렁크에 싣고 아줌마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로 가져갔습니다. 카페에 오는 손님들에게 보여주면서 한 마리씩 입양하라고 권유할 작정이었습니다.



장원장은 토요일 오전까지 계속 누워서 늦잠을 자다가 점심때가 되자 일어나서 씻었습니다.

금요일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한 장원장은 '향기 나는 까만 물'을 한잔 하려고 초콜릿색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하고 시원한 카페라테 한잔이요" 장원장이 계산을 하고 친구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있을 때였습니다.

카페 주인이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아이고! 오셨어요? 근데, 샴고양이 새끼 한 마리 갖다 키우세요. 우리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글쎄, 일곱이나 낳았지 뭐예요? 갖다 키우시지 않으면 이 고양이들은 모두 길바닥 신세가 될 거예요"


'길바닥 신세가 되고 만다'는 말에 측은한 마음이 생긴 장원장은 그러지 않아도 예쁜 고양이나 강아지를 한번 길러볼까 했는데 잘 되었다 생각하고 고양이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럴까요?'하고 대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페 주인이 가져온 골판지 상자를 열어본 장원장은 화들짝 하고 놀랐습니다. 새까만 새끼 고양이 일곱 마리가 낑낑 앞발을 내뻗으며 장원장과 눈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샴고양이가 아니잖아요? 게다가 까만 고양이... 좀 으스스한데..." 하고 장원장이 말하기가 무섭게 카페주인은,

"엄마는 샴고양이 맞아요, 아빠가 동네 까만 길고양이라서 그렇지, 호호호"라고 대답했습니다.

장 원장이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니 민망해서 머뭇거리는 사이, 카페 주인이 얼른 작은 상자를 가져와 까만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 담았습니다.

'아! 내가 왜 그랬지? 먼저 고양이를 보고 선택했어야 했는데! 까만 고양이라니!'

장원장은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며 '이런 우연이 진짜 인연이겠지' 하고 위안하며 상자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장원장은 '삑삑삑삑'하고 3층 현관문 비번을 누르며 '혹시 까맣다고 아이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하고 긴장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현관문 소리를 듣고 '엄마다!' 하며 현관문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장원장은 살며시 내려놓은 상자를 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고양이 키우고 싶댔지? 오늘 엄마가 우리 고양이 데려 왔어, 예뻐?"

"꺅! 엄마! 너무너무 고마워! 고양이 너무너무 귀엽고 예뻐!"

아이들의 눈에는 그 까만 고양이가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는지 두 아이 모두 아이스크림이 녹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핑크색 하트로 변한 눈의 아이들이 새끼 고양이를 안아주자 고양이에게서 '갸르릉 갸르릉'하는 작은 자동차 엔진 소리가 났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골골송을 들어보는 아이들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듣는 소리에 놀란 아이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고양이 엔진 소리의 원인을 알아내고 안도하였습니다.

"언니! 그건 고양이가 행복해서 내는 소리래! 아유! 우리 애기야!"

까만 아기 고양이는 속으로 '이 집사들 정말 재미있네!' 하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까만 고양이는 집사들을 향해 '야옹!'하고 말을 걸어 봤습니다.

그러자, 장원장이 "이 고양이 '야옹' 하는 톤이 꼭 '소프라노' 같네! 얘들아! 우리, 고양이 이름을 소프라노라고 하는 게 어떨까?"라고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네! 좋아요! 우리 아기 소프라노! 소프라노, 이제부터 네 이름은 소프라노야"

그렇게 까만 고양이의 이름은 '소프라노' 줄여서 '소피'가 애칭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인터넷 검색으로 '고양이 키우기, 고양이 종류, 고양이 언어... 등을 검색하더니 소피가 '턱시도 고양이'란걸 알아냈습니다.


그날부터 저녁이 되면 소피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소피의 귀여운 재롱을 구경하였습니다.

가족의 중심이 갑자기 소피가 된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아빠는 소파에 떨어져 앉아 "새까만 고양이가 뭐가 귀여워"하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 귀여워... 어떡해... 너무 귀여워..."를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마치 소피의 이름이 '귀여워'이었던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집고양이가 된 소피의 삶은 먼저 해야 될 과제와 규칙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역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습니다.

 

소피는 꼬박꼬박 종합백신의 예방접종을 해야 했고, 시기에 맞춰서 심장사상충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손을 잘 씻고 방청소를 스스로 잘 해야 했고 고양이가 먹을 깨끗한 물을 항상 잘 챙겨 줘야 했습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소피는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그 이상한 소리를 듣고 소피만 빼고 가족회의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 날, 가족들은 소피를 데리고 '중성화 수술'을 하기 위하여 동물병원으로 갔습니다.

진찰을 마친 소피는 피검사를 한 뒤에, 젊은 수의사 선생님과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가족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소피는 목 주위에 원기둥 같은 넥 카라가 달려있고 아랫배가 무척이나 당기면서 찢기듯 아팠지만 꾹 참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피는 집안의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아프다는 걸 들키지 않고 쉬고 싶었습니다. 가족들의 '귀엽다', '괜찮아? 소피?'하고 묻는 소리도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습니다. '왜 배가 갑자기 이렇게 아픈 거야? 이렇게 아픈 건 정말 처음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힘이 없고 졸린 거지?" 소피는 구석으로 가서 음식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평상시와 같은 '야옹!' 하는 소프라노 노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둘러앉아 소피를 걱정하더니 아침이 되어 모두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버렸습니다.


혼자 남은 소피는 아린 배를 동그랗게 말고 축 쳐져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있을 점심 무렵에 아빠가 들어오더니 포근한 냄새가 나는 작은 이불을 소피에게 덮어주면서 말했습니다. "많이 아프지? 얼른 나아라. 그리고 이거 조금이라도 먹어, 알았지?" 하며 살살 토닥여 주고 직장으로 다시 나갔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걱정을 하며 약과 죽 같은 음식을 소피의 입으로 흘려 넣어줬습니다.

3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소피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여 몸집이 홀쭉해졌습니다.

소피는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거실 구석 어두운 곳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열흘이 가까워지자 이제 소피는 배가 아프지 않은지 제법 걸어서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집사가 된 가족들은 완쾌된 소피를 보고 진심으로 반가워했습니다.


그러나 소피는 집사들과 함께 살려면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먼저, 엄마 집사는 고양이는 절대 never, ever! 침대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집사 방에 절대로 허락 없이 탐험하러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피는 엄마 집사 방 앞에 단정히 앉아 '야옹?'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엄마 집사는 '들어와, 소피'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들어가서 침대를 보며 '야옹?'하고 묻습니다.

엄마 집사는 '침대는 안 돼, 소피'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엄마 집사 침대 위엔 올라가지 않습니다.


아이 집사 방으로 놀러 갑니다. "야옹?" 하고 물으니, 아이들은 "이거 엄마 알면 안 되는데... 어서 올라와, 소피! 우리 소피, 너무 귀여워"라고 말합니다.

아빠 집사가 그것을 보고 "이 못생긴 새까만 고양이! 또 침대 위에 올라갔네! 혼나려고!"하고 말합니다.


토요일 아침, 아이 집사들과 엄마 집사는 모두 수영을 하러 나가고 없습니다.

아빠 집사는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다가 거실에서 서성이는 소피를 보고,

"이리 와, 우리 소피! 아유~ 귀여워"라고 하며 오라는 신호로 소파를 가볍게 톡톡 하고 두드립니다.

"치! 언제는 까만 고양이 못생겼다고 해놓고! 야옹!"

소피는 못 이기는 척 중얼거리며 아빠 집사 무릎에 기대어 소파에 앉습니다.

그리하여, 턱시도 집고양이, 소피의 행복한 골골송은 7년째 이 집안 가득히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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