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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27. 2022

고양이보다 똥꼬 발랄한 빌런 시베리안 허스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나온 저는 젖소 고양이입니다.

오늘은 저와 같은 한옥에 살고 있는 어떤 빌런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빌런은 얼굴이 나와 같은 고양이라고 하기엔 주둥이가 뭉툭하고 목소리가 매우 허스키합니다.

푸른 빙하색 눈동자에 불꽃무늬의 하얀 눈썹털이 마치 '늑대의 후손'같은 위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만,

사실, 그 녀석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면 전혀 늑대스럽지 않은 덩치만 큰 빌런 고양이 같습니다.  

언제나 빵빵한 이중 구조의 털옷을 두툼하게 입고 분홍색 혓바닥을 내밀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더워라. 젖소야, 오늘 날씨 진짜 덥지?"

추운 겨울이 되어 수은주의 빨간 기둥이 영하를 찍을 때도, 한옥집 마당에 눈이 소복하게 쌓일 때도,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의 키가 아래로 자랄 때도 이렇게 묻습니다.

"헥헥헥헥! 고양아, 집사야, 날씨가 정말 무지하게 덥구나! 날씨가 왜 이렇게 더운 거냐? 너희들도 덥지?' 하며 분홍색 혓바닥을 아예 입 밖으로 쭉 내밀어 놓고 있습니다.


집사가 말하기를 그 이상한 놈은 '고양이'가 아니고 추운 시베리아에서 온 '강아지'라고 했습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시베리안 허스키'이고, 이름은 '뼈스키'라고 했습니다.

우리 고양이들은 덩치만 큰 그 녀석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우리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절로 납니다.

보통 마당의 강아지들은 대문 옆에서는 그 집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양떼를 모는 초원에서는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양떼몰이를 하고, 집안에 사는 뽀시래기 강아지들은 주인이 귀여워할 애교를 부리곤 합니다.

하지만, '뼈스키'는 대문 옆에 살면서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경계는커녕 반가워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댑니다. 그리고, 그 허당 빌런은 이렇게 말합니다.

 

"응. 어서 들어와, 인간. 정말 반갑다. 그런데 호주머니에 뭐 맛있는 거 좀 가지고 왔어?' 하며 코를 씰룩씰룩거리기 시작합니다.

집을 지킬 생각은 애초부터 머리에 저장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이면 못생겼건 잘 생겼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다 반갑고 친구 같고 그런가 봅니다.

저 녀석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보다 못한 내가 '! 뼈스키! 개념  챙기고 살지?'라고 말하자 녀석은 "내가 ? 나는 지금이  좋은데~"라며 나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보냅니다.


하루는 지나가던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야! 저 개, 눈 좀 봐! 무섭게 생겼어! 이거나 먹어라!" 했을 때도 풍성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하늘색 눈을 천진스레 꿈뻑이고만 있었습니다.

이 녀석은 애초부터 '미움' 이라던가'배신', '절교' 따위의 감정은 머리에 들어있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날은 집사한테 사람처럼 말대꾸를 하면서 집사의 말을 흉내 내려고 했습니다.

'아앓! 아랋뢇뢇앓!' 집사는 그 견종이 똑똑해서 말대꾸를 잘하고 사람 말을 따라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외국에 사는 어떤 허스키는 'I love You'라고 사람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  

몸집은 우리 고양이의 7배 정도 큰 녀석이 하는 행동을 보면 스스로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보름달이 환하게 떴을 때 녀석의 정신은 또렷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네발로 늠름하게 서서 보름달을 보며 '오오오~우!' 하더니 비장함이 깃든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선조께서는 시베리아 추운 들판에서 썰매를 끄셨다. 그만큼 강인한 지구력을 자랑하는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 바로 여기 서있다! 1925년 겨울, 알래스카의 디프테리아에 걸린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왕복 1000km의 폭풍우를 뚫고 약을 배달하였던 시베리안 허스키! 영하 50도의 강추위도 뚫고 질주하는 허스키의 튼튼한 심장의 뜨거운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단 말이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똥멍청이, 고양이 녀석들아!"

그것을 보고 나는 '뼈스키'가 마치 지구를 구하기 위해 먼 우주에서 날아온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느껴졌습니다.  순간 나의 가슴도 뭉클하게 뜨거워졌습니다.

우와! 대단하다! 우리  허스키!’


그러나 이튿날 아침, 해가 떠오르자 내가 발견한 것은 어제의 늠름했던 옵티머스 프라임이 아니라, 똥만 뭉텅이로 크게 싸지른 허당 강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잘 잤어? 젖소 고양이? 내 밥 넘보지 마! 다 내 거니까!" 뼈스키가 말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어제 헛것을 본 것이지"하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낮동안의 따사로운 햇살이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 갈 때, 집사가 뼈스키를 데리고 집 앞 산책로로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핑크색 목줄이 뼈스키의 잿빛 털옷과 함께 반짝였습니다.

뼈스키는 흥분하여서 '집사! 빨리 가자, 빨리 가! 내가 알래스카 썰매처럼 빨리 확 끌어 줄게!" 하였습니다.

매일 하는 훈련을 잊어버리고 산책만 가면 앞장서려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뼈스키는 그 힘센 앞발로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앞장서서 끌었습니다. 덩치가 큰 뼈스키의 힘에 집사는 뒤로 몸을 한껏 젖힌 채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즐거워야 할 산책길이 오늘도 뼈스키의 차력쇼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잠시 후, 기진맥진한 집사가 뼈스키와 함께 정원으로 들어오더니 뼈스키의 참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줄을 새로 매고 집사는 뼈스키에게 '앉아. 기다려! 옳지! 가자'를 계속해서 반복하였습니다.

뼈스키는 '싫어! 내가 왜! 내 맘대로 하고 싶어!'라고 하더니 그렇게 고집부리면 결국 자기만 힘들어지는 것을

알아채고 조금씩 집사의 명령에 순응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훈련을 마친 집사는 뼈스키에게 '내일도 함께 훈련할 거야. 사람도 평생교육이 필요하듯 강아지도 평생교육이 필요한 거야"하며 목줄에 녀석을 묶자 뼈스키는,

"왜 나는 묶여 있어야 해? 고양이도 자유롭고 집사도 목줄이 없는데 왜 나는 묶어 놔?"하고 물었습니다.

집사는 "너를 지금 풀어놓으면 이 동네가 아주 난리 날 걸!"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집사의 뒤를 따라가며 " 동네가 뭐야? 아마 신문에 크게 날 걸!" 하며 뼈스키에게 “메롱!"이라고 시늉하였습니다.


집사는 커다란 흰색 봉지에서 사료를 크게 뜨더니 뼈스키에게 한 그릇 주고 다른 봉지에서 고양이 사료를 꺼내어 옴폭한 수키와에도 부어 주었습니다.

뼈스키는 훈련이 고단했는지 허겁지겁 씹지도 않고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했습니다. 그리고는,

"어? 내 밥그릇은 왜 비어 있지? 누가 내 밥 다 먹었어? 누구야!” 하고 투덜대더니 옆에서 고양이밥을 먹던 나와 할미 고양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았습니다.  


나른한 식곤증에 초저녁 잠이 일찍 든 뼈스키가 두 앞발을 앞으로 쭉 뻗고 기지개를 켜더니 빵빵한 털이 덮인 몸과 머리를 부르르 하고 세게 털어 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뼈스키를 묶어 놓은 쇠고리가 느슨해졌었는지 아니면, 뼈스키의 힘에 고리가 부러졌는지 그만 말뚝과 분리가 되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차! 큰일 났다'싶어서 얼른 맨드라미꽃 옆 한옥 담벼락을 발판 삼아 기와지붕으로 얼른 뛰어 올라갔습니다.

뼈스키의 하늘색 눈이 순간 번뜩이더니 줄이 끊어진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 보였습니다.

"하! 내, 이런 날이 오다니! 햐~ 바로 이거지! 빨리 집밖으로 나가자!"

뼈스키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한옥 대문을 향하여 돌진하더니 대문 아래로 기어서 뛰쳐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제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저 정신없는 뼈스키가 한순간에 그것도 한밤중에 집을 나가버린 겁니다.

"야옹! 야옹!" 나와 할미 고양이는 목청을 있는 대로 크게 하여 집사를 불렀습니다.


혼란스러운 바깥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다가 깬 집사가 졸린 눈을 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뼈스키의 집을 급하게 가리키며 이 큰일 난 상황을 집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집사는 경황이 없어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뼈스키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한여름의 소나기까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스키를 찾아 큰 도로까지 나가 봤습니다.

캄캄한 도로가에는 소낙비가 내려 어두움을 더하였고 비에 비친 노랑 가로등이 줄지어 서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사는 쿵쾅쿵쾅 사정없이 뛰는 가슴과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소방서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혹시나 이놈이 동네 쪽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고를 치면 어떡하지?' 하며 빨개진 얼굴로 노심초사하였습니다.


그때, 이 천진난만한 질주견은 큰 도로 너머 초록색 벼가 한참 자라는 들판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주인과 항상 산책으로 다니는 길이라 익숙하였기에 더 멀리 탐험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평소 맡아본 익숙한 냄새가 났고 혼자서 자유롭게 나왔다는 사실에 뼈스키는 아주 들떠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여름밤 소나기가 들판에 세게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소 비 맞기를 좋아하는 뼈스키는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들어 내리는 소나기가 혓바닥에 쏟아지는 재미를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빗물에 노랗게 비치는 동네 불빛이 있는 곳으로 탐험을 가야겠다 생각하고 비가 내리는 들판을 웃으며 질주하였습니다.



소방서에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 시베리아 허스키 한 마리가 목줄을 끊고 도망갔어요........ 혹시 동네분들이 놀라시거나, 허스키가 문제를 일으킬까 봐....... 신고가 들어오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뼈스키가 들판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습니다

뼈스키는 이제 이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고 주인과 다니던 익숙한 냄새도 여름밤 거센 소낙비에 사라졌음을 알았습니다.

이제야 집을 나온 것을 후회하고 돌아가려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도 익숙한 냄새가 씻겨 나간 길은 어디가 디인지 도무지  길이 없었습니다.

'나 이제 어떡해...주인... 고양아...'


뼈스키는 불빛을 따라 동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냄새가 솔솔 풍겨 왔습니다.  커다란 콧구멍을 킁킁거리며 그 냄새를 따라갔더니, 하얀 백구 한 마리가 집 마당에 목줄을 하고 비를 맞고 우뚝 서있었습니다.

낯선 개를 보고 경계심이 발동한 백구는 마당이 떠나가라 컹컹! 하고 크게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그 집 아저씨가 밖을 내다보았고 마당의 백구가 뼈스키를 보고 흥분하여 짖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저씨는 뼈스키를 보고 한눈에 목줄을 끊고 집을 나온 허스키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아저씨는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간식으로 뼈스키를 유인하며 말했습니다.

"이리 온! 와서 간식 먹어라! 간식!"

들판을 쏘다니느라 배가 고팠던 뼈스키는 '간식'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서 아저씨가 내미는 손에 서서히 다가가 간식을 받아먹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저씨의 큰 손이 뼈스키의 머리로 굵은 줄을 넣어 묶어 버렸습니다.

뼈스키는 한마디로 이제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의 웃는 얼굴이 아련히 떠올랐고 젖소 고양이와 할미 고양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왜 내가 집을 나왔을까....?" 낯선 사람에게 잡히게 된 신세라니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소방서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 여보셔유? 소방서쥬? 아, 글씨 내가 집 나온 허스키 한 마리를 잡아다 묶어 놨슈. 워디서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틴디...목에 그 머시냐, 번호도 있네유"

아저씨는 뼈스키를 비닐하우스 옆 기둥에다 갖다 묶어 놓고 소방서에 전화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몇 시간 전에 허스키를 찾는 신고가 들어왔었거든요"


'따르르르릉' 첫 번째 핸드폰 신호음이 끊기기도 전에 집사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 여기 소방선데요. 동네의 어느 분이 허스키를 잡아서 데리고 오셨네요. 이 허스키가 선생님의 허스키인지 와서 확인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집사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를 보고 흥분하여서 "젖소야! 뼈스키놈 찾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라고 말하며

새 목줄을 꺼내어 동네 소방서로 얼른 달려 나갔습니다.


뼈스키 녀석은 그렇게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소나기가 그친 새벽하늘에는 아기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고 뼈스키는 무슨 꿈을 꾸는지 "하아~앓앓앓앓"  잠꼬대를 하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아침 해가 올랐습니다. 

집사는 우리의 늦은 아침밥을 챙겨주고 뼈스키도 잘 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집사는 소방서와 뼈스키를 찾아준 동네 아저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며 빵과 커피를 한가득 챙겨서 나갔습니다.

한옥에 우리끼리 남겨지자 나와 할미 고양이는 아직까지 자고 있는 뼈스키를 바라보면서 " 녀석은 아마 간밤의 소동이 꿈인줄 알 걸. 정말, 이상한 놈이니까..."하고 웃었습니다.

간밤의 소낙비가 방울방울 맺힌 나란히 줄을 선 빨간 맨드라미 꽃송이들도 뼈스키를 보고 '다행이다'라고 하며 깔깔깔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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