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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Nov 27. 2022

'상실과 회복' 그리고 '범주'에 대하여

일주한권 문철환콜 프로젝트 - 그  세번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0) 서론

엔트로피: 세상의 모든 것들, 즉 만유는 결국 무질서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열역학 법칙에서 기원한 엔트로피는, 인간이 여러 원자들의 결합체로 있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면서 분해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질서 정연한 안정적인 것에서 결국 불안정해지다가 무질서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책 속에서 주인공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식으로만 변화할 뿐 어떠한 노력으로도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결국 주인공 자체의 삶이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1) 상실과 회복에 대하여


1-1 마음가짐

하지만, 그런 법칙이 존재하고 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데이비드에게 닥친 파괴와 상실의 비극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곳에 물고기들이 있었다. 바닥 위 모든 곳에 유리 파편이 흩뿌려져 있었다. 에탄올과 시체 "냄새가 코를 쏘아댔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보다 고약한 피해는 실존적 피해였고, 모든 물고기의 표본들과 이름표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47초 사이에 창세기가 뒤집힌 것이다. "

책에서 데이비드는 물고기를 모으는 학자다. 그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곳에서 갖은 물고기의 표본을 채집하여 유리병에 담아 연구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자,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뜻밖의 자연의 공격 (지진)에 의해 그의 평생에 걸친 작품들이 깨지고 죽어버리며 물거품이 되고 만다.


우리도 살면서 다양한 것들을 잃어버리면서 살아간다. 오랜 기간 고생해서 모은 돈,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유품, 때로는 사랑하는 연인과 같은 사람까지. 특히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파도로 우리에게 들이치곤 한다. 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잃어버림, 그리고 그에 따른 공허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까

결국은 의지다. 돌이키기 힘들어 보이는 상실에도 우리가 삶이란 길을 굳건히 걸어가게 만드는 것은 삶에의 의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의지를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마음'일 것이.


마음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다. 현재는 부단히 지나온 과거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시간과 연결되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단순히 한 인간의 존재 속에 속할 뿐 마음의 그 어느 파트도 차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를 살게 하는 과거에 대한 마음가짐과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심적 대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1-2 회복; 과거와 미래

과거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마음가짐을 먹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들이닥친 비극에 심적으로 대비하는 방법으로는 '긍정적 착각'이 있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다양한 연구들이 긍정적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좌절을 겪은 뒤에도 크게 낙담하여 포기하는 일이 적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낙관성을 기반으로 하여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탈피하여 현재의 시간 속에서 안녕한 존재로 삶에 녹아들 수 있는 것이다. 론, 긍정적 착각이 무조건적으로 장점만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지나친 자기기만을 통한 오만함은 현실에 대한 일방적인 시선 회피로 이어져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과 판단이 잡혀있는 상황이라면, 어찌 되었든 긍정적 착각을 통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하며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것은 삶에 있어서, 특히 상실된 삶에 있어서 자기 회복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미래에 관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릿'이다. 그릿이라 함은 미국의 심리학자 앤잴라 더크워스가 개념화한 용어로, 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를 뜻한다. 즉, 재능보다는 노력의 힘을 강조한 개념인 것.

앞서 지난 고통에 대하여 '긍정적 착각'을 통한 낙관성 획득을 통해 안녕한 현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공과 성취를 위한 용기와 투지가 중요하다 것이다. 특히, 미래의 성취와 성공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가짐과 결과를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재능이 아닌 마음가짐 개선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노력의 측면이라고도 동시에 말하고 싶다.


2) 범주에 대하여

2-1 눈앞에서 회 뜨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 (feat. 수산시장)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의 문장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위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글에서 드러나듯 단순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물고기 상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안타까운 이야기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바로, '범주'에 관한 이야기였다.


"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어류라는 범주가 사실은 굉장히 무책임하고도 대충 만들어진 범주이자 그룹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산독수리, 산염소, 산두꺼비를 싸잡아서 산어류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유독 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물고기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어류'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부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고기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을 과학적으로 타당한 한 집단에 몰아넣겠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필자 또한 고민에 잠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학을 전공하고 있지는 않기에 구체적으로 어류를 묶어서 분류하는 것이 얼마만큼이나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감을 둔다는 저자의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얼마 전 TV에서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프로그램에 연예인들이 매니저와 함께 수산시장에 찾아간 장면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등장하였던 자막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다시금 떠오르게 된다. 분명히 멀쩡히 살아서 헤엄치고 있는 각종 물고기들과 옆으로 기어 다니는 꽃게 등이 나오는 장면에 '싱싱하게 먹음직스러운 각종 해산물', '군침도는 먹거리'라는 자막이 달렸던 것을 기억한다. 만약 그 자막이 유기견 보호소 체험한 장면에 달렸다면..? 아니 하다못해 우리가 평소에 자주 먹거리로 접하는 소가 있는 목장에 농장 체험을 갔을 때 그런 자막이 달렸다면? 아마 여러 동물 보호단체와 사람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항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은 아무런 논란도 없이 높은 시청률과 함께 방송을 통해 각 가정집에 안전하게 송출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진짜 유독 '어류'라고 통칭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2-2 인간 사이의 차별은 괜찮은가


나 너 우리 너희 그들 백인 흑인 황인 등등.. 우리는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다음과 같이 서로를 구분 지으며 범주를 나누고 기준을 잡아 살아가고 있다. 과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임의의 언어를 잡고 표현한 각각의 지시어와 이름표들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유효할까. 아니면 오히려 그러한 범주화가 우리 인간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아닌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가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마지막 순간의 회한이나 깨달음 따위를 보여주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실제로 책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는 '우생학' 같은 무서운 공포 이야기도, 애초에 처음부터 구분 짓는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학문일 것이다. 범주를 기반으로 사람을 나누고, 나눈 그룹에 서열을 갖다 붙이면서 때로는 열등한 사람들을 궁지로 내몰기도 하는 우생학.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치의 인종청소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인종에 서열이 있고 우열한 민족만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몇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이처럼 범주라는 것은 어쩌면 의미 없는 것이오, 더 나아가서는 인간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독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고, 어류라는 것을 특정 짓는 것조차 우리 인간의 임의적인 감각을 토대로 들이댄 잣대라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우리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말도 안 되는 주관적인 기준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게대가 그것들이 인간 사이에 불합리한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말이다.


3) 상실과 범주를 넘어서서,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

돌이키기 힘들어 보이는 상실과 우리를 차별 짓는 범주를 넘어서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에 나오는 '잔잔한 그물망'이 그 해답일 것이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생학자들은 이 점을 눈치채지 조차 못한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비록 우리 인간 사회가 많이 험악해지고 '정'이라고 불리는 따뜻한 감정이 예전에 비해 많이들 사라졌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니, 사라질 수 없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촘촘하고도 잔잔한 그물망이 어쩌면 그 모든 구분과 차별 속에서도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며 서로를 의지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책 속에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메리가 애나를 생각하며 살아남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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