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던 그녀가 아무런 암시도 없이, 내게서 사라졌다. 물을 무서워했던 그녀는, 역설적으로 마지막에는 내게 잠수를 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려주면서 나를 떠나갔다. '우리 그만 만나자'라는 하루 만에 달린 카톡 답장을 끝으로. 그녀의 집 주변을 초조하게 헤매다가, 그녀의 안위를 확인하고 안도가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을 직시하고 이내 목구멍에서 눈물 섞인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그리고, 진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는 택시를 얻어 탔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글을 위한 소재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의 이러한 이번 주의 경험 때문에 이 책과 주제를 선정하였다고 보는 것이 순서가 맞겠다. 어쨌든 나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서 글을 쓰는 지금에도 생생하기까지 하다. 연애라는 것이, 특히 20대의 연애라는 것은 결혼이 전제가 되지 않는 이상 당연히 끝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진심을 다해 사랑한 연애의 끝은 결코 아무렇지 않지는 않다. 그리고, 정지 없이 거리를 헤매며 정처 없는 나의 마음을 달래다 집에 들어온 나는 이전에 읽었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떠올랐고 이번 주는 이와 관련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2)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2-1) 사랑의 시작
필자가 지금 글을 작성하고 있는 카페. 그 카운터 뒤에서 두 남녀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하 호호 즐거워만 보인다. 어쩌면 또 다른 아름다운 두 남녀의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사랑의 시작은, 그 다양함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유와 과정을 논하기에 앞서 사랑이란 것 자체에 대해 저자는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살펴보자.
'Perfect other human being'... 알랭 드 보통은 책 속에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완벽한 어떤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진다고 말한다. 서로를 이해해 주면서, 함께 있으면 외로움을 절대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나의 정신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많은 것들을 의지하는 그런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은 생각보다 서툴게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책에서 저자가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져 버리곤 한다. 이런 낭만적 미망은 우리 대부분이 알면서도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열에 아홉,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로맨틱 본능을 믿는 것은 동물적인 감각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조금 더 예쁘고 안정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이성적인 판단도 동반되어야 하겠다.
2-2) 사랑의 중간
그렇다면 사랑을 진행하는 과정, 그 프로세스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할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곧 나의 모든 개인적 특징을 버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무가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책에서 등장하는 클로이와 인물들을 살펴보면, 자신이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초콜릿을 좋아하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기 없다는 발언을 하자 어느새 초콜릿 러버가 되어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비단 책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리는 많은 때에 자신의 많은 것을 숨기거나 포기한 채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이나 가치관에 그 퍼즐을 억지로 변형시켜서 끼워 맞춰주곤 한다.
사랑의 중간에 있어서 이러한 불필요한 노력은 조금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상대에 맞춰 어느 정도 자신의 루틴이나 생각을 각색하는 노력은 필요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예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 신으려 하다 보면 예전과 달라져 피폐해진 자기 자신의 튼튼한 뿌리를 목격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한 말이지만, 뿌리까지 변형시키며 만남을 이어오던 그 상대와의 사랑도 끝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3) 사랑의 마지막
이별이라는 단어가 사실 굉장히 무겁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필자가 장담컨대 세상 사람들의 99% 이상은 이별이란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확신 속에 백년가약을 맺고 결혼한 부부마저도 한국에서는 그 70% 이상이 이혼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굳이 더 긴 부연설명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이 안 되는 또 한 번의 역설처럼 들리는 문장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이 문장이 단순히 읽히기 위한 용도로 인위적으로 써졌다는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이유로 싸우고, 삐치고 또다시 화해하는 단계를 거치는데, 대부분이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안 좋은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형태가 다채로운 만큼 이별의 모양도 다양하겠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라던가 행복한 헤어짐이라는 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당연하게도 찾아오는 헤어짐의 순간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끝을 내는 것은 가능해 보이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그간의 알아감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앞길을 축복하며 헤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사랑의 마지막 단계에 있어서 상대방을 미친 듯이 혐오하게 되거나 증오하게 된다면, 그것은 한때 내가 그녀 혹은 그를 열렬히 사랑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 보는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렇게 된다면 지나친 집착이나 지하 깊숙이 빠지는 정신적 우울, 혹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따위를 마음속에 잔여 시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대부분이 서로를 저주하기 바쁘겠지만 말이다.
아, 이건 그냥 참고로 말하는 건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서 심장이 뜨거워지는데 누군가에게 얘기할 사람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공공기관이 제공해 주는 상담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필자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로 머리가 가득 채워졌을 때, 국가의 상담 도움을 받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3) 제대로 된 사랑을 향해
그렇다면 완전한 사랑에 가까운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며 우리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장식해 낼 수 있을까?
두 가지를 조금 더 신경 써보면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먼저 제대로 탐색하고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와 연결되는 다른 사람들의 천 길 마음속을 모르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자신의 마음의 한 길조차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책의 저자 알랭 드 보통 또한 그 자신을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기나 취미 생활,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우리 자신을 잘 알아낼 필요가 있다. 전쟁도 지피지기여야 백전 백승이라는데, 사랑에 있어서 나 자신조차 모르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제대로 파악해야 제대로 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우리 스스로가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갖기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우리는 노력과 수고 끝에 누군가와의 진실된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연인 관계에 있어서의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나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 같지만 조금 나에게 특별한 존재 정도로 여기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전 글에서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잘못된 착각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사랑에 있어서도 잘못된 소유 욕망은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구속, 그리고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히려, 한 발치 물러나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면서 현재를 공유할 때, 쉽지 않은 확률을 뚫고 제대로 된 '찐'사랑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4) 사랑은 엽기 떡볶이를 닮았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사랑이라는 관념은 우리들에게 도대체 무엇일까?
사랑이란 건 결국, 매운 떡볶이와 비슷하게 다가온다. 필자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엽기적으로 맵다는 떡볶이를 즐겨 먹는다. 그리고, 다음날 그 화장실에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도 그 도전을 지속하기를 멈추기 어려운.... 흔히들 '나 다시는 연애 안 해. 진짜 지쳤어 이제 나는'이라고 말한 친구가 한 달 뒤에 멋진 남자 친구, 예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자랑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게 아픈데, 나는 내일이 되면 또다시 새로운 아픔을 찾아 정처 없이 세상을 헤맬 것이다. 마음이 살짝 따듯해지려 한다. 비록, 그 표정은 조금 시무룩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