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원수
키워드: 원수
아들, 너 어렸을 때 전주로 캠프 같이 갔던 학사님 기억하지?
응 그치, 근데 왜?
그분이 어번에 신부님 되셔서 우리 본당으로 처음 미사하러 온신대. 같이 갈 거지?
한동안 미사를 드리는 일에 소홀했던 터라 오랜만에 성당에 나간다는 게 무언가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거절한 명분이 그 어색한 쑥스러움을 이길만하지는 않았다.
아, 정말!? 그럼 가야지. 이번 주 일요일이라고?
맞아. 그럼 엄마는 장 좀 보고 올게.
네!
유스티노라는 세례명, 아직도 주기적으로 만나는 동갑내기 삼총사, 언제나 내 방 스탠드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나의 미래를 비추어주는 영국에서 산 십자가까지.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천주교라는 존재는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굳이 내 최근 동아리에서의 별명이 '티노'였던 것을 생략하더라도, 성당이 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당에 가면,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우리의 인생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자들의 인생에 맞추어 각색해서 전해주신다. 두꺼운 성경 속에는 수많은 인간적인 메시지들이 들어가 있고, 우리는 사제라는 직함을 단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전달받는 것이다. 그 속에는 수많은 좋은 말씀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단연코 가장 유명한 한 가지는 다음일 것이다.
"네 원수를 사랑하여라."
굉장히 이상적인 말이지만, 실상 어떤 일이 닥치면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n 년을 사귀다가 갑자기 잠수를 탄 이성친구, 함께 모았던 여행자금을 가지고 튄 군대 선임 등을 사랑한다? 한참을 욕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아량을 베풀고 또 나아가 사랑한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일수록, 그가 가는 길을 축복해줘야 한다.
먼저,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다.
나의 믿음을 배신했다는 생각 속에 너무 밉더라도, 그렇게 나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선사한 사람일수록 함께 했던 좋은 기억도 많을 확률이 높다. 때로는 꽃길 속에서 함께 사랑을 나눴던 동반자일수도 있고, 또 인생에서 가장 힘든 터널과도 같은 시기를 함께 이겨나간 전우일 수도 있다.
어느 순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계기로 그 사람은 내게 고통을 안긴 사람으로 변신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와 함께 추억은 유효할 확률이 높다. 아니, 유효성을 따지기 전에 적어도 그 순간에는 인생 가장 큰 행복을 나눴던 것에는 틀림없다.
또, 많은 경우에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지막에 안 좋은 모습으로 원수와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순간, 세상이 기억하는 나와 그 사이의 모습은 그것이 전부가 된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진짜 추억과는 별개로...
그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끝의 순간에 그를 아름답게 놓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와 그의 관계가, 진실과 전혀 동떨어진 모습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와 미래의 나 자신이 더 멋진 사람을 거듭나기 위해서다.
운전을 하다 보면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 나가는 오토바이 등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욕하면, 결국 아픈 건 내 목이요, 그 욕설을 가장 크게 듣는 건 나의 귀다.
원수를 대하는 태도도 결국 마찬가지다. 이미 '남'이 되어버린 그(녀)를 욕하고 억울해해 봤자, 결국 마음이 안 좋고 분해지는 건 나 자신이다. 어느새 모르는 사람 1 이 되어버린 상대를 보내고 남게 되는 건, 마지막으로 그를 대한 '나 자신의 태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남이 되어버린 그에게 욕을 하는 순간, 혀의 울림에서 구강을 거쳐 입술을 떠나간 육두문자는 나에게 돌아온다. 그의 불행을 바라면서 스스로 초라해지는 건 멋지지 않다. 오히려 상대방 가는 길에 시원하게 진달래꽃 한 번 뿌려주면서, 사뿐히 즈려밟고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는 편이 낫다. 그러면서 거울에 비친 세상 쿨한 나의 모습에 웃음 한 모금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리하자면,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시기가 나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희석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원수가 떠나는 길을 축복해야 한다. 또, 그와는 별개로 나 스스로가 멋있는 사람이기 위해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간 '남'이 되어버린 그 사람이 아닌 남아있는 '나 자신'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