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코뮤니스트의 시

어느 평범하고 우울한 아침 불현 듯

by 김균탁commune

어느 평범하고 우울한 아침 불현 듯

- 김 균 탁


위암이 전이된 채 발견돼 일찍 세상을 뜬

장모도 불쌍하고

뇌경색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아빠도 불쌍하고

경증 치매, 당뇨 초기, 고지혈증, 불면증, 우울증에 걸려

대답 없는 병간호를 해야만 하는 엄마도 불쌍하고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은 하지만

눈 뜨자마자 유전된 우울증 약을 털어 넣고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타러 가는

내가 볼썽사납고 이런 나를 또

불쌍한 듯 바라보는 가난한 아내의 가엾은 눈이

불쌍하다

불상 앞에 서서 아무 생각도 없이

경전을 읽으며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다가 이런 생각도 없이

불현 듯 울고 싶지만

또 까닭 없이 찾아드는 나의 불면증은 어쩌나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라도

병원비를 내놓고 나면

어린 자식들 입에 물려줄 밥은 또 불쌍해서 어쩌나

볼썽사납게 끼니를 생각하는 내가

불현 듯 울고 싶은 날들이 찾아와

울고만 있으면 그런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뜻 모를 어린 것의 눈빛과

뜻을 조금은 이해하는 덜 어린 것의 눈물과

어린 손주들보다 더 어려져만 가는 엄마의

멍한 눈은 또 어떻게 하나

글썽일 눈물을 긁적일 시간도 없이

한 숨도 잠들지 못한 걱정들을 한숨에 치닫는 듯

몇 개의 알약처럼 시작되는 어느 평범하고

조금은 우울한 아침

아빠 힘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은 착각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고지서 같은 아침

그냥 불현 듯 불쌍한 사람들이 떠오른

아주 평범하고 아주 조금 우울한 아침


오래된 경전 속에 쓰인 글자들처럼 조금은

흐릿하고 흐느끼듯 흘러내린 아침

평범한 듯 우울한 그냥 야옹하고 울어버리고 싶은

어느 날 아침, 그리고 불현 듯…….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뮤니스트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