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하고 우울한 아침 불현 듯
어느 평범하고 우울한 아침 불현 듯
- 김 균 탁
위암이 전이된 채 발견돼 일찍 세상을 뜬
장모도 불쌍하고
뇌경색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아빠도 불쌍하고
경증 치매, 당뇨 초기, 고지혈증, 불면증, 우울증에 걸려
대답 없는 병간호를 해야만 하는 엄마도 불쌍하고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은 하지만
눈 뜨자마자 유전된 우울증 약을 털어 넣고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타러 가는
내가 볼썽사납고 이런 나를 또
불쌍한 듯 바라보는 가난한 아내의 가엾은 눈이
불쌍하다
불상 앞에 서서 아무 생각도 없이
경전을 읽으며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다가 이런 생각도 없이
불현 듯 울고 싶지만
또 까닭 없이 찾아드는 나의 불면증은 어쩌나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라도
병원비를 내놓고 나면
어린 자식들 입에 물려줄 밥은 또 불쌍해서 어쩌나
볼썽사납게 끼니를 생각하는 내가
불현 듯 울고 싶은 날들이 찾아와
울고만 있으면 그런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뜻 모를 어린 것의 눈빛과
뜻을 조금은 이해하는 덜 어린 것의 눈물과
어린 손주들보다 더 어려져만 가는 엄마의
멍한 눈은 또 어떻게 하나
글썽일 눈물을 긁적일 시간도 없이
한 숨도 잠들지 못한 걱정들을 한숨에 치닫는 듯
몇 개의 알약처럼 시작되는 어느 평범하고
조금은 우울한 아침
아빠 힘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은 착각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고지서 같은 아침
그냥 불현 듯 불쌍한 사람들이 떠오른
아주 평범하고 아주 조금 우울한 아침
오래된 경전 속에 쓰인 글자들처럼 조금은
흐릿하고 흐느끼듯 흘러내린 아침
평범한 듯 우울한 그냥 야옹하고 울어버리고 싶은
어느 날 아침, 그리고 불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