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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는 없는 이별-다시 시작된 세계

제4화 멧돼지 족(1)

by 김균탁commune
제4화 그림.png


오늘은 금의 날, 미르와 태랑이가 수련을 하는 날이었다.


미르는 사과 세 개를 공중으로 던졌다. 태랑이는 공중에 올라간 사과를 향해 표창 세 개를 차례대로 던졌다.

표창은 사과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태랑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르에게 말했다.


“미르 아저씨, 봤죠? 제 실력. 이제 사과 맞추는 것 쯤은 문제도 아니예요?”


미르는 어깨를 쭉 올리는 태랑이를 보며 말했다.


“이 녀석아, 사과 세 개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겨우 사과 세 개를 맞춰 놓고 우쭐거리는 거냐?”

미르의 말에 태랑이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쳇! 세 개 다 맞추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데요. 아저씨도 겨우 맞추면서 무슨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미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태랑이를 보며 말했다.


“세 개는 기본이라고, 나는 열 개, 백 개가 날아와도 다 맞출 수 있다. 이 녀석아. 그게 용족의 특기인데, 그 정도 비기 다루기를 못하면 내가 왜 너를 가르치고 있겠냐? 자, 이제 표창 던지기 연습은 그만하고 변신술이나 해보자. 지난 번처럼 실수하지 말고. 자! 그럼 돼지로 변신해 보거라.”


태랑이는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돼지는 몇 번이나 연습했잖아요. 좀 더 근사한 것 없어요? 맨날 돼지만 연습해요? 쳇! 완벽하게 변신해서 보여줄 테니까. 잘 봐요.”


태랑이는 정신을 집중하고 돼지로 변신했다. 그리고는 네 발로 기어 미르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어때요? 완벽하죠?”


“하하하! 이 녀석아. 이게 무슨 돼지냐? 네 꼬리를 봐라. 돼지인지 아닌지?”


태랑이는 꼬리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돼지로 변한 목이 돌아가지 않아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태랑이는 미르를 향해 물었다.


“왜요? 완벽하지 않아요?”


미르는 정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태랑이의 꼬리를 잡아서 들어올렸다.


“이 녀석아, 너 정말 빛의 아이가 맞기는 하냐? 꼬리를 봐라. 이것이 돼지 꼬리인지. 쯧쯧. 이건 너구리 꼬리다. 이 녀석아. 빛의 아이가 무슨 변신도 제대로 못하냐?”


태랑이는 미르에게 복슬복슬하게 털이난 너구리 꼬리를 잡힌 채로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사실 정신을 집중해서 해야하는 일은 잘 안 돼요. 그래서 맨날 수참이 아저씨랑, 태린이 아저씨한테도 혼나잖아요. 수참이 아저씨랑 연습하면서 물을 만들어 버리고, 태린이 아저씨랑 연습하면서 불을 만들어 버리고, 물, 불을 원하는 데로 쓸 줄 알아야만 진정하게 강해지는 거라고 했는데, 항상 정신 집중이…….”


태랑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성호와 오후가 급하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태랑이는 성호랑 오후가 멧돼지 족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 아닌지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미르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기 성호 아저씨랑, 오후 아저씨가 급하게 일족 족장님을 만나러 가는가 봐요. 우리도 가보면 안 되요?”


미르는 태랑이의 꼬리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 녀석아, 수련 도중에 어디를 간단 말이냐? 변신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지 맨날 놀 궁리만 하고. 수참이랑 태린이가 맨날 혼내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미르가 꼬리를 잡고 흔들자 태랑이는 너무 어지러웠다.


하지만 성호와 오후 아저씨가 저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멧돼지 족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 뻔했다.


아니면 성호와 오후가 멧돼지 족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이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이야기를 못 듣고 미르에게 잡혀 있다니 태랑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미르에게 말했다.


“그럼 다시 변실술을 보여주세요. 이번에는 어떻게 변신하는지 정확하게 보고 저도 진짜 완벽하게 따라할 테니까요?”


미르는 태랑이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그래? 어떤 걸로 변신하는 것을 보여주면 확실하게 알겠냐?”


태랑이는 곰곰이 생각하는 척했다.


미르는 지금 태랑이가 꾀를 부린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 했다.


미르는 용족답게 언제나 우직할 뿐이었다. 태랑이는 깊게 생각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아저씨, 거북이 보여주세요. 거북이. 그건 딱딱한 부분도 있고 부드러운 부분도 있어서 엄청 힘들 것 같아요.”


미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북이 한 마리가 태랑이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미르는 태랑이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어떠냐? 이제 알겠냐?”


그런데 미르가 올려다 본 곳에는 태랑이가 없었다. 태랑이는 이미 성호와 오후가 간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거북이로 변한 미르가 태랑이를 잡으러 뛰어갔지만, 거북이로 변했기 때문인지 도저히 태랑이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미르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태랑이의 꾀에 속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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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와 오후는 일족 족장의 방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태랑이는 이야기를 엿듣기 위해 방문에 귀를 세우고 문에 바짝 귀를 붙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오후였다.

“족장님, 멧돼지 족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일족 족장은 오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정말 멧돼지 족이 맞더냐? 아니면 그냥 어둠의 아이의 장난일 수도 있지 않느냐?”


이번에는 성호가 말했다.


“분명 멧돼지 족이었습니다. 멧돼지의 발자국을 찾았는데, 그건 네 발로 걷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발로 걷는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멧돼지 족이 다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일족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호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멧돼지 족은 어둠의 아이에게 멸족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후 우리 여섯 종족 모두 멧돼지 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그런데 멧돼지 족이 다시 나타났다니. 어둠의 아이가 부활의 능력까지 지녔다는 말인가? 허허. 아니면 멧돼지 족이 멸족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말인가?”


일족 족장의 말이 끝나자 성호가 대답했다.


“일단 화족 마을에 피해를 입히고 산 넘어 일족로 도망친 멧돼지 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오늘 저희가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 어둠의 아이가 나타나기 전에는 모든 족이 평화롭게 살았으니, 멧돼지 족과도 대화가 통할지 모릅니다. 자세한 자초지종은 멧돼지 족을 만나 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성호의 말에 오후가 뒤를 이어 대답했다.


“네, 오늘 저희가 멧돼지 족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일족 족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들이 오늘 멧돼지 족을 만나보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래야 자초지종을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자! 그럼 서두르게.”


일족 족장의 말에 성호와 오후는 동시에 대답했다.


“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태랑이가 문에 귀를 대고 있어서 그 무게 때문에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오후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었다.


“아야!”


태랑이가 땅으로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성호가 그런 태랑이의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너 오늘 미르와 수련하는 날 아니냐?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태랑이는 아픈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오후 아저씨, 문을 그렇게 쎄 개 열면 어떡해요? 아! 엉덩이야. 그리고 저도 궁금하잖아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멧돼지 족이 나타났다는 데. 그리고 그 멧돼지 족이 화족과 일족 사람들에게 해를 가했다는 데 궁금하지 않아요?”


성호는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태랑이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아야!”


“멧돼지 족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거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자세한 진실을 알게 될 테니까. 그런데 네가 여기 있는 것을 보니까. 또 우직한 미르를 속이고 장난을 쳤구나? 이 녀석이 네가 강해지게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면 되냐?”


이번에는 오후가 성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태랑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야야!”


태랑이는 피할 시간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날아오는 오후의 날개에 뒤통수를 맞았다.


“아야, 성호 아저씨, 오후 아저씨 진짜 너무 아프잖아요.”


이마를 짚고 있던 태랑이의 손이 이번에는 뒤통수로 옮겨 갔다.


성호와 오후는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때 거북이 한 마리가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태랑이를 향해 소리쳤다.


“너 이 녀석 잔꾀를 부려서 또 도망을 쳐. 변신술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성호와 오후는 거북이가 미르라는 것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성호가 웃으며 말했다.


“미르, 자네 아직도 거북이네. 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그리고 내가 늘 말하지 않았나? 태랑이 이 녀

석은 늘 꾀만 부려서 수련을 빼먹으려 한다고.”


미르는 그때서야 자신의 모습을 둘러 보았다. 거북이로 변한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변신을 풀었으면, 도망가는 태랑이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변신을 풀지 않아서 놓쳐 버린 것이다.


미르는 서둘러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태랑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태랑이는 미르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수련장으로 끌려갔다. 태랑이는 성호와 오후를 보며 소리쳤다.


“성호 아저씨, 오후 아저씨. 저도 멧돼지 족이 있는 곳에 따라 가면 안 돼요? 제발요. 부탁해요. 네?”


성호는 미르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태랑이에게 꿀밤을 한 대 더 먹였다.


“아야! 진짜 아프다고요. 힝.”


태랑이는 또 울상을 지으며 이마를 움켜쥐었다. 울먹이는 태랑이를 향해 성호가 말했다.


“이 녀석아, 미르 말대로 변신술도 제대 못해, 수참이랑 태린이 말대로 불과 물도 마음대로 못 다뤄, 그렇다고 권법을 잘하는 것도 아니야, 우진이랑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 너를 어떻게 데려가냐? 오후야? 태랑이 검법은 좀 하냐?”


성호는 오후를 보며 물었다. 태랑이는 오후에게 같이 가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오후는 태랑이의 눈을 외면하며 말했다.


“말도 마라. 엉망이다. 엉망. 저 녀석이 어떻게 빛의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일족 족장님이 빛의 아이라니까. 있는 힘을 다해 연습을 시키는 것 뿐이지. 아니면 진작에 그만뒀다. 어떻게 실력이 하나도 늘지를 않냐? 저 녀석 믿고 있다가 정말 이 세상이 끝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태랑아 너는 미르랑 수련이나 열심히 하고 있거라. 멧돼지 족에게는 성호랑 내가 갔다 올테니까.”


태랑이는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원망어린 눈빛으로 오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태랑이의 눈빛에 흔들릴 성호와 오후가 아니었다.


“오후, 이제 멧돼지 족을 찾으러 가보자고.”


성호가 오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오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호를 바라보았다.


미르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태랑이가 아픈 이마를 짚고 산을 향해 달려가는 성호와 오후를 바라보았다.


태랑이는 그 둘의 뒤를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어떻게 하면 성호 아저씨와 오후 아저씨의 뒤를 따라갈 수 있을까?’


태랑이의 머릿 속에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태랑이가 둘의 뒤를 따라갈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동안 성호와 오후는 빠른 속도로 일족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태랑이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으면 뛰어가는 둘의 뒤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따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미르 아저씨를 속여야하는데, 같은 방법에 미르 아저씨가 또 속아 넘어갈지는 의문이었다.


아마 이번에는 미르를 속이기 엄청 힘들 것이다.


한 번 속았으니 도끼눈을 하고 태랑이가 수련하는 것을 지켜볼 것이기 뻔했기 때문이다.


태랑이는 미르의 손에 매달려 수련장으로 끌려가면서 오로지 미르에게서 도망칠 궁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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