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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는 없는 이별 - 다시 시작된 세계

제3화 수련(2)

by 김균탁commune
제3화 그림.png

일족 족장은 성호와 오후를 돌아보며 말했다.


“호야, 후야! 너희도 혹시 그 소문 들었느냐?”


성호와 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호가 먼저 말했다.


“네. 금방 태랑이에게 들었습니다.”


오후는 그런 성호를 한심한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오는 길에 이미 그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그래, 소문을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멧돼지 족이 다시 나타난 것 같구나. 둘 중 하나가 가서 진실을 좀 알아봐야 겠다.”


성호가 오후보다 먼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말했다.


“네, 일족 족장님 제가 가서 진실을 알아오겠습니다.”


그러자 오후가 성호를 밀치며 앞으로 나왔다.


“아닙니다. 멍청한 성호 녀석 보다는 똑똑한 제가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성호는 오후를 째려보며 멱살을 잡았다. 성호에게 멱살을 잡힌 오후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성호를 바라보았다.


“야, 오후! 내가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거든. 그러니까. 넌 뒤로 빠져.”


“야, 너 멍청한 거 목족뿐만 아니라, 화족, 수족에도 소문 다났어. 그러니 네가 빠져.”


둘이 또 싸우려 들자 태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일족 족장이 지팡이를 들어 둘의 사이를 가로 막았다.

“싸우지 말고, 둘이 함께 가거라. 천오백 년 전에 멸종한 멧돼지 종족이지만, 멧돼지 종족은 엄청나게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혹시 혼자 가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둘이 함께 다녀오도록 하거라.”


“저 혼자서도 가능한데……, 네, 족장님.”


“저도 혼자 가능합니다. 성호 이 바보 자식이랑 같이 가면 오히려…….”


“어허! 이놈들”


“알겠습니다.”


“네. 함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성호와 오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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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와 오후가 함께 떠나고 태랑이는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권법은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일족 족장님의 말에 따라 수련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했다. 태랑의 손에 여섯 부족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내가 여섯 부족을 구해야 한다고…….


어릴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힘든 수련. 힘든 훈련. 힘든 압박감만이 태랑이를 감쌌다.


그리고 반항심이 생기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왜? 나만 행복하면 되는 거지. 자신이 무슨 이유로 여섯 부족을 책임져야 하는지 몰라 반항하면서 수련을 게을리한 적도 있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태랑은 할아버지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섯 부족의 족장님이 자신을 볼 때마다 지그시 보내는 그 애틋한 눈빛. 그리고 기대감. 태랑은 수련에 온 힘을 쏟기 위해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성호가 없으니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만 왠지 게으름을 피우기는 싫었다. 그냥 온 정신을 주먹에 집중하고 나무 인형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 탁, 탁, 탁. 타닥, 타다닥. -


나무인형을 때리는 태랑이의 주먹 부딪히는 소리가 적막이 내려앉은 수련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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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의 수련이 끝나자 해가 산 중턱에 걸려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초저녁 바람이 땀에 훔뻑 젖은 태랑이의 옷을 흔들었다. 흙투성이가 된 태랑이는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눈을 감고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바람의 끝에서 평화로운 냄새가 풍겨오는 듯 했다.


하지만 붉게 물들었다가 점점 샛노랗게 변하는 노을을 보며 태랑이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직 수련이 부족한데, 그렇게 강력하다는 어둠의 아이를 만나면 과연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노을을 보던 태랑이의 마음에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끼어들어왔다.


태랑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둠의 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바람이 눈을 감고 있는 태랑이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을 때, 누군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랑아, 태랑아! 엄마가 너 밥 가져다 주래.”


태랑이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나는 쪽에는 태랑이가 너무 좋아하는 수연이가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뛰어오고 있었다.


노란색 치마에 분홍색 저고리, 한 발 한 발 뛸 때마다 마치 선녀가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것 같았다.


태랑이는 넋을 놓고 달려오는 수연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붉은 노을과 수연이, 그리고 이 평화로움. 태랑이는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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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태랑이 앞에 다가온 수연이가 광주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 어서 먹어. 오늘은 주먹밥이야. 이거 내가 만든거야. 그러니까 많이 먹어야 해.”


태랑이는 너무 감격스러웠다. 수연이가 직접 만든 주먹밥이라니. 그 맛은 아마 천국의 맛일 것이다.


태랑이는 진짜 자신의 주먹만 한 주먹밥 하나를 집어 입 안이 가득 차도록 집어넣었다.


‘아!’


그런데 주먹밥은 태랑이가 꿈꾸던 그 맛이 아니었다.


주먹밥을 입에 넣자마자 먼저 짠 맛이 찾아왔다. 그 다음은 혀가 녹아내릴 정도의 매운 맛. 그리고 밥알은 어떻게 뭉쳐졌는지 모를 정도로 푸석푸석했다. 태랑인 목이 막혔다.


하지만 좋아하는 수연이 앞에서 맛없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태랑이는 물을 한 사발 들이키며 엄지를 번쩍 치켜 들었다. 그런 태랑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연이가 다시 커다란 주먹밥을 하나 집어 말했다.


“이거는 내가 진짜 정성을 들여 만든거야. 너 기력 보충하라고, 온갖 재료를 다 넣었어. 집에 있는 귀한 재료 다 넣는다고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다고.”


태랑이는 수연이가 내미는 주먹밥을 사양하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태랑이는 또 한 입에 주먹밥을 우겨 넣었다. 이번에는 정말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랑이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수연이는 그런 태랑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왜? 맛 없어?”


태랑이는 물로 입을 헹구며 수연이에게 다시 엄지를 들어보였다. 수연이는 그런 태랑이의 모습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날 태랑이는 수연이가 만든 12개의 주먹밥을 진짜 주먹이 터지도록 먹었다.


그날 밤 태랑이는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느라 한숨도 못 잤다.


그래도 수연이가 직접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태랑이에게는 너무 큰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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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전등이 켜진 방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세 명의 실루엣이 어두운 호롱불을 따라 일렁거렸다.


그 세 명은 일족 족장과 성호, 오후였다. 일족 족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조사 해보니 정말 멧돼지 족이 맞더냐?”


일족 족장의 물음에 성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네, 희미하지만 멧돼지의 냄새가 분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흔적을 보니 엄청난 괴력을 가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인명 피해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성호의 말이 끝나자 오후가 말했다.


“하지만 화족 산으로 가는 길에 그 흔적이 끊겼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나타날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될 때마다 그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일족 족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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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고 태랑은 수련장이 아닌 주막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주막 안에는 수연이가 바쁜 엄마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주막을 찾는 손님들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국밥을 나르고, 방을 안내하고 수연이는 엄청 바빠 보였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수연이의 모습이 태랑이의 눈에는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때 무언가 따끔한 것이 태랑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아야야야야!”


태랑이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엉덩이 쪽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었다.


태랑이는 깜짝 놀라 땅에 엉덩이를 비비며 불을 껐다.


태랑이의 뒤에서 수참이가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하하하! 이놈아, 지금 수련장에 있어야할 시간 아니냐? 그런데 여기서 무엇하느냐?”


태랑이는 빨개진 얼굴로 수참이에게 대답했다.


“아이, 참, 수참이 아저씨,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저 정말 깜짝 놀랐다고요.”


“하하하, 그러게 이 녀석아, 누가 몰래 남의 집 처자를 훔쳐보라더냐. 그러니까 벌 받은 거다 이녀석아.”


태랑이는 얼굴이 더 붉어지며 수참이에게 말했다.


“에이, 아저씨. 수연이가 예쁜 걸 어떻게 해요. 물론 음식 솜씨는 아직 아주머니를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수연이 정말 예쁘지 않아요?”


수참이는 그런 태랑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 녀석아, 연예는 우리의 중요한 임무를 끝내놓고 하자꾸나. 어둠의 아이가 이 지구를 멸망시키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걸 모르냐. 그러니 어서 수련장에나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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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참이는 태랑이의 팔을 끌고 수련장으로 경공술보다 더 빠르게 뛰었갔다.


수참이와 태랑이가 수련하는 것은 마법이다.


그것도 불의 마법.


손끝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을 이리저리 상대방을 향해 날리는 수련이 수참이가 태랑이에게 가르쳐야할 임무였다.


그런데 이 수련은 태랑이에게 너무 힘들다. 몸이 뜨겁지 않게 불을 적당한 위치에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향해 정확하게 날리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데 언제나 산만한 태랑이에게 집중력을 요하는 마법은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태랑이가 마법에 실패할 때마다 수참이는 인정사정없이 조그만 불덩이를 태랑이에게 던져 혼냈다.


화의 날, 수참이랑 수련하는 날이면 여기저기 구멍난 옷을 기우느라 밤잠을 못잘 정도로 힘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의 날 태린이 아저씨와 하는 수련과 수참이 아저씨의 수련은 상극이었다.


둘 다 동일하게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마법인 것은 똑같은데, 수참이 아저씨와 하는 수련은 불이고, 태린이 아저씨와 하는 수련은 물이다.


어떤 날은 수참이 아저씨와 수련하며 물을 만들어 혼나고, 어떤 날은 태린이 아저씨와 수련하다 불을 만들어 혼나기도 했다.


어떻게 상극이 되는 두 마법을 한 몸에 익히라는 건지 훈련이 힘든 날이면 수참이 아저씨도, 태린이 아저씨도 정말 미워 죽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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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가장 견딜만하고 재미있는 수련은 일의 날 우진이 아저씨와 함께 하는 수련이었다.


우진이 아저씨와 하는 수업은 주로 빨리 달리는 경공술, 활 쏘기 등 재미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여러 방향으로 조작하여 활을 쏘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우진이 아저씨 말로는 자신이랑 하는 수련은 제일 기본이고 언젠가는 화살촉에도 봉에도, 창에도 수의 날 수련한 물의 마법과 화의 날 수련한 불의 마법을 연계해서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단은 활쏘기의 다양한 방법을 배우고 봉술, 창술, 말타기, 달리기처럼 쉬운 것들이 더 많으니, 태랑이는 수련 중에서는 일의 날이 제일 좋았다.


그리고 우진이 아저씨는 수련하는 스승님들 중 제일 착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아!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수련을 하지 않는 월의 날이다. 왜냐하면 여섯 종족 중 월의 날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의 날은 가장 조심해야하는 날이라고 스승님들이 말했다.


왜냐하면 월의 날은 어둠의 아이를 위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태랑이는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어둠의 아이도 빛의 아이인 자신도 계속 자라 언젠가는 어른이 될 텐데 계속 아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 궁금했다.


사실 그 궁금증에는 다른 속내도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어 수연이에게 장가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일단 쓸데 없는 생각은 접어두고서 월의 날에 대해 말하자면 월의 날은 음기가 가장 강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월은 달을 뜻하고 달은 밤에 뜨기 때문이라고 대족장인 일족의 족장 할아버지가 늘 말했다.


그러니까. 월의 날에는 어둠의 힘이 가장 강력해지는 날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둠의 아이의 힘도 강력해 진다고 아저씨들은 늘 말했다.


어둠의 아이와 마주치더라도 월의 날은 꼭 피해서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태랑이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인가? 운에 맡기는 수밖에…….


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진이 아저씨를 뺀 성호 아저씨, 오후 아저씨, 수참이 아저씨, 태린이 아저씨는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


아참! 수련 중에 하루가 빠졌다. 그건 바로 금의 날이다. 금의 날은 각종 비기를 다룬다.


금의 날을 대표하는 것은 용족이기 때문이다. 용족의 날에는 각종 비기를 수련해 왔다.


태랑이는 비기를 수련하는 금의 날도 좋았다. 은둔술도 배우고, 표창을 던지는 것도 배우고, 변신술도 배우고, 단도를 정확히 던져서 사과를 맞추는 놀이도 하고. 금의 날에 하는 수련도 태랑이가 좋아하는 수련 중에 하나였다.


왜냐하면 우진이 아저씨 만큼 용의 날의 스승님인 미르 아저씨도 좋았기 때문이다. 미르 아저씨는 사람 좋기로 온 동네에 소문이 나 있었다.


대신 단점이 있다면 미르 아저씨에게는 유머 감각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절대 웃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월의 날을 뺀 나머지 날들, 화의 날, 수의 날, 목의 날, 금의 날, 토의 날, 일의 날. 태랑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수련했다.


물론 수련이 부족하다며 항상 혼나기는 일 수 였지만, 혼나는 정도는 매일 다르니까.


그리고 자신에게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둠의 아이로부터 이 별. 이 지구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수연이와 영원한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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