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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이해의 시작

by bonfire

자기이해의 시작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너무 흔해서, 때로는 진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흔함 속에 가장 깊은 사유가 숨어 있다.
자기이해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자신을 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성격, 습관, 취향.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반응의 결과다.
환경에 대한 적응, 타인의 기대, 사회적 역할.
그 속에서 진짜 ‘나’는 자주 가려진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지만,
그 존재를 이해하려면 감정과 경험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자기이해는 머리로만 하는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 기억과 상처, 욕망과 두려움이 함께 움직이는 과정이다.

자기이해는 불편하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를 마주해야 한다.
그 마주침은 때로 부끄럽고, 때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진실해진다.

자기이해는 고립이 아니라 연결이다.
내 감정을 이해할수록, 타인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상처를 들여다볼수록, 타인의 상처도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이해는 공감의 시작이고, 관계의 깊이를 만드는 토대다.

나는 가끔 나 자신을 낯설게 바라본다.
익숙한 말투, 반복되는 행동, 무의식적인 반응.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자기이해는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계속되는 일이다.

자기이해의 시작은 질문이다.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 질문 속에서 흔들리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 흔들림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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