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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철학기행

6화 — 깨어난 자의 무게

by bonfire

6화 — 깨어난 자의 무게

어둠 속에서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깊고 끝없는 구렁텅이, 소리가 닿지 않는 어둠.
그 안에서 나는 오래 전 잊혀진 목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이름조차 흐려져, 손에 잡히지 않았다.

희미한 빛이 번져오자,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숨은 칼날처럼 거칠었다.
옆에 아이가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작은 손으로 나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살아 있어요… 제발, 살아 있어요.”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탈자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싸움 끝에 혼란이 벌어졌고, 그 사이 아이가 나를 끌고 이곳까지 옮긴 듯했다.
폐허가 된 건물 한 구석, 부러진 기둥 아래 우리는 숨어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피 묻은 천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는 내 상처를 막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른답지 못하게 떨리는 손이었지만, 그 손길은 단호했다.

“저… 버리지 않았어요.
저 혼자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그 말은 내 가슴을 더 깊이 찔렀다.
나는 무너진 듯 웃음을 흘렸다.
“너는… 나보다 강하구나.”

나는 눈을 감고, 고통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이 아이를 지키겠다고 결심했지만, 정작 아이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내가 던진 질문들이, 이제는 아이의 행동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생존은 단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붙드는 것이 아닐까?

밤이 되자 아이는 내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내 열에 눌려 잠들지 못하는 듯, 그의 눈은 계속 반짝였다.
나는 간신히 몸을 돌려, 별이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을 바라봤다.
멀리 불빛이 어른거렸다.
아마 다른 생존자들의 거처일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희망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겐 경고처럼 보였다.
다시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또 다른 선택과 갈등이 기다린다는 의미였다.

“있잖아…” 아이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 싸우고, 빼앗으려만 할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남은 힘으로 서로를 해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끝내 지켜내기 위해서일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답을 알았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아이의 눈이 슬프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그는 내 손을 꽉 잡았다.
그 손의 온기가 내 안 깊숙이 스며들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죽음의 구렁텅이는 여전히 나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아이의 손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 손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 존재.
불타버린 도서관에서 보았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존재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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