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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철학기행

8화 — 규칙의 이름으로

by bonfire

8화 — 규칙의 이름으로

아침이 밝았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너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사람들은 벽돌을 옮기고, 쓰레기를 치우고, 밤새 꺼져 있던 불을 다시 피웠다.
아이와 나는 한쪽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몸은 여전히 상처로 무거웠다.
그러나 아이의 표정은 오랜만에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여기에 남을 수 있을까요?”
그의 눈빛은 너무 맑아서,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뒤, 모든 사람들이 넓은 마당에 모였다.
중년의 여인, 이 공동체의 지도자처럼 보이는 그녀가 앞에 섰다.
손에는 커다란 나무 그릇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오늘의 식량이 담겨 있었다.
옥수수 가루, 말라붙은 고기 조각, 그리고 조금의 물.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은 이게 전부인가 봐…”

여자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차갑게 말했다.
“우린 규칙대로 나눈다. 일한 만큼 먹는다.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나도 아이와 함께 줄에 섰다.
내 차례가 오자 여자는 내 몫을 작은 그릇에 덜어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앞으로 나오자, 그녀는 손을 멈췄다.

“아이는 오늘 일하지 않았다. 규칙을 잊었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감쌌다.
“그는 아직 작다. 일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굶길 수는 없다.”

여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곳의 규칙은 예외가 없다. 예외가 생기면, 모두 무너진다.”

아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말이 얼마나 용기 없는 위로인지.
굶주림은 용기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안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웠다.
‘규칙을 받아들여라. 살아남으려면 적응해야 한다.’
‘아니야, 규칙이 인간성을 짓밟는다면, 그건 더 이상 규칙이 아니다.’

나는 결국 그릇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말했다.
“내 몫을 나누겠다. 아이에게도 조금은 돌아가야 한다.”

주변이 술렁였다.
여자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건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칙이 잘못된 게 아닌가?”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명했다.
“아이 하나를 굶겨서 지켜지는 공동체라면, 그건 이미 죽은 거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여자는 깊은 숨을 내쉬며 우리를 노려봤다.
“오늘은 넘어가겠다.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넌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그녀가 등을 돌리자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아이의 손이 내 옷자락을 꽉 잡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어딘가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밤이 찾아왔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아이의 숨결이 곁에서 고르게 들려왔지만,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규칙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갈라놓는 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 규칙이 우리를 지키는가, 아니면 우리를 옭아매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내 가슴 속 불안만이,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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