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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소리 Jan 12. 2023

푸른 제주의 길 다시 걷다.

소소한 일상 에피소드 세 번째

3일 차, 갈 때까지 간다.


이틀간 구만보를 걷고 나서도 또 길을 나서는 것 보면 의지가 강한가 보단 미련하게 보인다.

오늘이 제주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다. 올레의 시작과 끝. (21번, 1번)

 



21번의 시작 제주해녀박물관

21번 코스의 시작점은 제주해녀박물관이었다.  

올레길의 마지막 코스를 걸으니 온전히 제주길을 다녀온 기분이다. 다만 다리가 너무 아픈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어제 지칠 때로 지쳐있던 20번 코스의 후반부에서 만났던 신사분이 생각난다. 

드실 물과 귤 한 봉지를 한 손으로 들고, 나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배낭을 메시고도 편안히 걸으셨는데, 이미 축 쳐진 나에게 귤하나를 건네어주셨다. 그리고 소소한 얘기들을 건네면 걷는데, 뒤쳐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분을 좇아가느라 다시금 발에 불이 붙은 듯 걸음을 떼었다. 평소 같으며 쉽게 따라갔을 터인데, 몸 상태가 이미 바닥이었던 때라 붙어 걷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었다.



구좌읍의 풍경은 온통 바다와 당근밭이다. 밭고랑을 넘어 다니는 꿩을 보면서 '여기 참 평화로운 곳이구나' 

싶다. 당근은 구좌의 명물이란다. 당근은 씨를 뿌려 재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허리춤에 둥그런 방석을 차고, 몸빼 바지를 입으신 그리고 햇빛 가리개가 넓은 모자를 쓰신 할머님들이 부지런히 당근 묘목을 심고 계신다. 한쪽에서는 자동으로 분사되는 스프링클러 장치를 통해 사방 곳곳으로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간혹 삐그덕 

소리가 나는 곳을 보면, 물이 분사되지 않았는지 땅의 젖음과 마름이 쉽게 구분되었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니 다시 바다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과 발목에선 마디마다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상쾌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아래에서 '지금 이렇게 좋은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싶다가 도 이 자유로움과

싱그러움이 너무도 좋았다. 금요일인 오늘 이 시간 홀로 이런 곳에서 걷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일이면 돌아갈 것이고, 주말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가면 회사와 집에서의 보통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지금이 좋았고, 현재를 만끽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발도, 지친 어깨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영원을 사는 신들은 순간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바로 

이 순간이라는 말... 지금과 참 잘 어울린다.




울림 있는 글귀

쉼이란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산길에선 풀썩 주저 않지 않는다. 단지 큰 바위에 잠시 기대어 쉴 뿐이다. 그러나, 올레길에선 신발도 벗도 엉덩이도 바닥과 딱 붙게 하여 쉬는 방법을 택한다. 그게 올레길에서의 휴식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을 마신다. 그런 후에 다시 보아를 돌려 트레킹화를 단단히 고정하고 모자를 바로 쓰고, 배낭을 고쳐 멘 후 일어선다. 그리곤 다음 길을 나선다.




2시간째 해변가를 걷고 있다. 제주에 오면 질리도록 바닷길을 걷고 싶었다. 도시의 강변에서도 걸을 수는 있으나 시야가 탁 트인 제주의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고 싶었다. 

잠시 경로를 벗어났지만 괜찮다. 

잠시 다른 길을 택할 뿐 결국 내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두루미

시야에 갈매기도 짙은 녹색의 해안가로 떠내려온 물미역이 보인다. 종달리 해변에서는 두루미 무리가 큰 군집을 이루고 제방으로 잔잔해진 드넓은 해안가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목을 찍어 내리며 먹이를 찾는 녀석들과 날개를 터는 녀석,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녀석, 사뿐사뿐 산책하듯 하거나 마치 차 한잔씩 테이블 위에 놓고 수다 떠는 사람들처럼 대화하는 모습의 두루미들까지 다양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조해녀의 집

슬슬 배에서 신호가 온다. 기가 막히게 점심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다리고 무거워졌고, 어깨도 조금씩 땀이 차면서 불쾌한 기운이 들 때 즘 저 멀리 지난 여행 때 방문했던 '오조해녀의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표메뉴인 전복죽과 문어숙회 한 접시를 시키고, 먼저 나온 밑반찬으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지난 대가족 여행에서 급하게 먹어 치웠던 때를 회상하며, 홀로 나름의 만찬을 즐긴다. 밥 한 톨 남김없이 쓱싹 해치우고, 마지막 남은 

숙회 한 점까지 입으로 밀어 넣은 후 나의 애틋한 점심은 끝이 났다. 




바닷길 너머 성산일출봉의 중후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이번 여행의 끝은 광치기 해변으로 삼았기에 이제 끝이 보인다. 

끝이 보이는 일과 시간이란 늘 평이하거나 생각보다 쉬웠다. 학창 시절의 시험이나 졸업이 그랬고, 군대 생활이 그랬다. 지나갈 거 같지 않던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그리고 단지 몇 장면을 쥐어짜듯 해야 겨우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추억이 되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또 시간을 보냈다. 내가 걸어온 지난 삼 일간의 십이만 보가 이렇게 눈앞에서 끝이 난다는 생각이 들자, 아쉬움 반 후련함 또한 반이었다. 

여정을 계획하고 필요한 예약을 하며, 준비물을 챙겨 실행에 옮기면서 난 아직 젊음이라는 것이 충분할 만큼 남아 잇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흥분시킬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내일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오늘을 저당 잡히는 것과 같다. 지금을 포기하고 미래에 위임하는 거었고도 같다. 

물론 내일도 중요하나 지금... 바로 지금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바로 보지 못한다면 내일이란 의미가 없다. 그냥 생각 없이 살아갈 뿐인 것이다. 


해수사우나에서 지친 몸을 달래준 후 금요일 퇴근 후처럼 푹 쉬었다.


상쾌하게 일어나 바다 내음 가득한 성게 미역국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한 후 가족에게 줄 먹거리 선물을 샀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 떠나온 곳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나의 푸른 제주의 길 걷기 여행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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