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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소리 Jan 07. 2023

푸른 제주의 길 다시 걷다.

소소한 일상 에피소드 첫 번째


음식 가격이 제법 나가지만 항상 제주에 가면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 막입이라 그런지 재료가 신선해서 

그런지 평범한 식당에 가도 유명 맛집에서 웨이팅 하며 기다리지 않고도  제주에 서의 음식들은 늘 맛있기만 했다. 식사 후에는 늘 바다가 보이는 화려하거나 모던한 혹은 잔잔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다. 가족 여행의 패턴은 늘 비슷하다. 대학 친구들 세 가족 총열명이 함께 했던 지난 6월의 제주 여행은 

이렇듯 맛있는 식사와 멋진 풍경, 그리고 지칠 만도 한데 그러지 않던 우리 아이들의 활발한 모습과 어른들의 유쾌함과 여유스러움 가득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넉 달 만에 홀로 다시 제주를 찾았다. 

어둠이 내린 4시에 집을 나서 6시 김포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시작된 나 홀로 여행은 11시 백록담에서 잠시 쉼표를 찍을 때까지 이어졌다. 나 스스로 정한 이번 제주 여행의 타이틀은 '진짜 제주를 만나는 것'과 어느덧 사십 대 중반에 접어든 '몸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고 싶음'이었다. 10월 말임에도 다행히 기온은 포근했으며,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공항도 한산했다. 서울처럼 제주도 구름이 조금 낀 화창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예보를 그대로 믿고 싶었다. 여행 첫날의 기분이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믿고 싶었다. 

회사와 가정을 뒤로하고 나의 3박 4일간의 휴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잰걸음으로 게이트를 통과하니 7:10분, 입사 사전 예약을 8시로 하였기에 바로 택시를 잡았다. 단풍 절정이 아닌지라 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했고, 출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관음사로 향하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이번 코스는 관음사에서 시작하여 성판악으로 하산하는 길로 잡았다. 인터넷에 소개된 총 예상시간은 9시간 30분이나 이전 두 번의 한라산 산행의 페이스로 볼 때, 8시간 내 컷을 예상했다. 단, 이번에는 혼자인 것과 3박 4일간의 짐이 어깨 위에 있다는 것이 지켜볼 변수이긴 했다. 7:40분경 주차장에 도착을 하나. 이미 주변에 열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등산객들이 몸을 풀거나 막 산행을 시작하고 있었고, 나 역시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산행 채비를 하였다. 보아를 몇 차례 더 돌려 등산화를 단단히 조여주고, 배낭 측면에 물병하나를 꽂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관음사의 등산 초입은 산책로 같았다. 평이한 난이도에 바닥에 거적을 깔아 놓아 정리된 평평해진 바닥은 

걷기에 무기가 없었다. 날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등산하기 좋은 그런 아침이었다. 산책로 같은 초입도 긴 보폭으로 스트레칭을 하듯 1시간을 걷다 보니 제법 땀이 맺혔다. 1500미터까지의 등산로는  무난하였으며,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 내가 참 멋진 곳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호기로운 여유는 딱 여기까지였다.  삼각봉 대피소를 지나 헬기장까지 오르는 길은 

쉼 없이 이어진 나무 계단 길이었다.  너무 숨이 차올라 바닥만 보며 한걸음, 또 한걸음 오를 뿐이다.

다행히 그 끝이 있다는 안도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고, 어느덧 정상 부군에 다다랐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우선 눈에 들어 온건 두 가지였다. 백록담 비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서있는 약 50미터쯤 돼 보이는 늘어선 줄과 물이 완전히 말라버린 백록담이었다. 싸리 눈이 간간이 내리더니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다. 그 와중에도  유튜브  생방송을 하는 아저씨 한분과 삼삼 오오 모여 김밥등 간식을 드시는  분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대충 50분은 걸릴 거 같은데..’ 백록담 부근에서 몇 분이 주고받는 말소리를 들었다. 

도저히 사진 한 장 찍으러 이 짓은 못할 거 같았다. 

그래도  비석 사진은 한 장은 싶었기에 사람들이 교체되는 타이밍에  착각! 

약간 비스듬하나 귀한 사진 한 장을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말라버린 내부에서 작은 물웅덩이라도 없나 찾을 요량으로 뚫어져라 집중해서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그렇게  황량한 백록담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너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까닭으로 제대로 된 점심 준비 없이 산을 오르니, 더는 허기진 배속을 달랠 수 없었다. 




하산하는 길은 정상 부근 좁은 길에 오가는 사람들로 약간 정체되었을 뿐, 순식간에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낭을 뒤지다가 오래전 넣어둔 초콜릿 몇 개를 발견하고는 유통기간 같은 건 신경 쓸 여력 없이 

바로 입안에 밀어 넣고는 흐뭇해졌다. 

오늘은 무조건 고기다!

몸에 무리도 없는 상태고  단풍 구경도 했으니, 앞만 보고 거침없이 산을 내려왔다. 그러다 낯선 곳을 

발견하고는 이내 잠시 발길이 멈추었다.




 ‘솥밭’


전에 성판악 코스로 두 차례나 오르면서도 유심히 보지 않아 알지 못했던 차분하면서 보물스런 곳이었다. 

내가 만나 온 그간의 소나무들은 대체로 눕거나 옆으로 자란 것들 뿐이었다. 물론 바닷가의 해송들은 대체로 쭉쭉 뻗어 솟구치며 자라기도 했으나 군집 내에서도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삼나무와 소나무가 어울려 군집을 이루며 자라나는 곳. ‘사려니 숲’을 위시로 삼나무는 어디서 만나든 그 높은 위용을 뽐내며 하늘을 향해서만 곧게 자리고 있었다. 그런 숲을 보고 있노라면 시원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 삼나무와 함께 자라는 소나무라니…  ‘왜’ 그럴까?' 잠시 고민을 한다. 삼나무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소나무가 올곧게만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참 신기한 곳이라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저건 ‘생존’ 때문인 것 같다. 햇빛을 받고자 하는 생존본능. 뭐. 그런 본능.

낯설었지만 멋진 장소라 배낭에서 다시 폰을 꺼내 사진으로 몇 장 남긴다. 속밭을 지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도 자연에서 보고 배운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에 오게 되면 그때는 아내와 딸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허기를 달래려 

달리 듯 내려왔다. 


관음사 초입과 같은 길고도 잘 정리된 산책로가 길게 이어졌고, 기어이  저 멀리 길 끝에 열린 공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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