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바라보며
책을 펼치면서 가장 새롭게 다가온 것은 작은 목차들이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가 네 생명을 구할거야’, ‘나는 물구나무 서서 우리 집을 바라보며’, 마지막 챕터는 ‘오늘은 루누 누나가’였다.
탐정소설, 추리소설로 인도의 이야기를 펼쳐 내는 것도 특이하고, 애드거 상을 비롯해서 많은 상을 받은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것도 신선했다. 책은 엄청 빨리 읽히는 정도로 쉽지는 않았다. 일단 인도의 낯선 풍경을 만나는 것이 생각보다 신기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인 4학년 자이가 파리, 피아즈라는 친한 친구와 함께 없어지는 친구들을 찾으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이에게는 7학년, 육상 대회를 준비하는 루누 누나가 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자이가 사는 맞은 편 동네에는 아파트가 있고 또 그 동네 아이들을 위한 사립학교가 있다 하지만 자이가 사는 평범한, 그리고 가난한 이 동네에는 한 반에 아이들이 넘쳐나고, 누가 한 명 결석을 한다고 해도 크게 찾아 나서지 않는 그런 공립학교만 존재한다.
맨 처음 없어진 친구는 바하두르다. 술을 먹는 주정뱅이 아빠 탓에 엄마를 도와 동생들을 보고, 일을 해야 했던 바하두르. 엄마는 바하두르를 찾기 위해 경찰에게 뇌물까지 주었지만 경찰은 다 때가 되면 돌아올 거라며 아이의 실종 같은 것은 아예 관심도 없다. 자이와 파리, 그리고 피아즈가 열심히 바하두르의 흔적을 찾아 다니면서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관찰한다. 촌장의 아들인 쿼터도 의심스럽다. 바하두르가 일했던 가게의 하킴 아저씨도 알 수가 없다.
얼마 후 이번에는 옴비르도 없어졌다. 마닐라에 가고 싶다고 바하두르가 동생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자이는 용기를 내어 집에 숨겨진 돈을 훔쳐서까지 친구들과 함께 보라선 전철을 탄다. 도시에 간 자이와 친구들은 도시의 거지 무리라고 할 수 있는 구루와 제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구루에게서 자이는 멘탈이라고 하는 넝마주이 소년들을 거느린 대장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이렇게 멀리까지 진출해서 친구들을 찾는 노력을 했던 자이는 점점 더 탐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 그 와중에 점점 더 많은 친구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안찰이라는 여자친구도 사라졌다. 끊임없이 없어지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슬픔, 그러나 도와주지도 않는 공권력. 어쩌면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인도의 상황이 어떤지 가끔 대중 매체에서 보면 의문스럽다. 어쩌면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많은 면들이 두려워서, 그리고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더 신비스럽다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정령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정령이 검은 개나 고양이나 뱀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령을 볼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이 사원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정령의 존재를 느끼게 되지. 나뭇가지가 목덜미를 간질이는 것 같은 느낌에서, 셔츠를 부풀리는 산들바람에서, 기도하는 동안 점점 더 가벼워지는 마음에서 정령의 존재를 느껴. 네가 지극히 무서워하는 거 다 보이는데 우리 말을 믿어. 우리는 오랜 세월 이 정령들의 사원은 지키고 관리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정령들은 누구도 해치지 않아.
자이의 누나인 루누도 사라졌다. 루누를 찾으러 온 가족은 집 주변과 마을을 다 헤집는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된 쓰레기장에서의 배낭. 그 안에는 아이들의 물건이 하나씩 들어 있다. 그 배낭을 버린 범인은 과연 누굴까? 왜 아이들을 죽였을까?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도 내내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인도에서만 그랬을까. 우리나라도 못살던 시절, 사람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한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던 때도 있었다. 어디론가 팔려가는 사람들, 사창가로 간다는 말도 있었고, 해외로 팔려간다는 말도 있었다. 인도의 상황은 공권력이 사람들의 편에 있지 않으니 더 심한 일들도 빈번하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마지막 결론은 더 가슴 아팠다. 처음 범인으로 추정된 사람들은 하수인에 불과했다. 진짜 범인은 돈 많고 권력 있는 누군가. 심지어 경찰도 그냥 집을 수색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면서 구경하는 정도다. 인도만 그랬겠는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니였을까? 재벌가의 자식이나 돈많은 권력가들의 집을 수사할 때 이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사정사정하거나,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것이 몇십 년 전에만 그랬을까, 지금은 정말 다 가능한 것일까? 권력의 말도 안되는 부당함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치게 하는 억울함이었던 것은 80년 광주항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불과 40년 전의 일이다.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찾는 것조차 권력에 의해 차단당하는 것은 참으로 우습다. 인신매매 및 신장 매매 아동 포르노 제작. 이런 범죄도 돈이 많은 사람은 다 빠져나가는 세상이다. 비단 인도만 그러하겠는가.
“오늘이든 내일이든, 인간은 누구나 가까운 사람을 잃게 될 거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넝마주이 대장이 말한다.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늙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고. 하지만 그들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깨닫게 될거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걸. 우린 이 세상에서 한 점의 먼지에 불과해. 햇빛을 받으면 한순간 반짝이다가 곧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먼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라.”
깊고 무거운 내용에 비해 주인공과,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가볍다. 독특한 내용과 이야기 구조 탓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의 깊은 이야기 속에 들어가게 해준 탓인지 읽고 난 후 한참 동안 생각이 흘러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다만 세상 어디에 있든지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보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더 뒷맛이 씁쓸하다고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