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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사탕 Feb 18. 2022

임지형의 ‘나는 동화작가다’를 읽고

아이들을 싫어하는 동화작가

이 책의 저자인 임지형 작가는 동화작가다. 동화작가가 쓴 “나는 동화작가다”라는 제목의 책, 읽기 시작할 때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했던 이유다. 몇 장 읽다 보니 금방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마지막 말을 읽으니 ‘어른을 위한 소설’과 ‘아이들을 위한 동화’의 중간쯤 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글은 크게 반전이 많지는 않지만 굉장히 술술 읽힌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유리안 작가는 동화를 쓰는 작가다. 20여권의 책을 내고 요즘 통 소재가 떠오르지 않고, 글쓰는 것이 순탄치 않아서 고민을 하는 작가. 이 작가에게 숨은 비밀이 하나 있다. 놀라지 말라! 그건 바로 아이들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동화 작가인데,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모르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아이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한 것이 '자기들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잘 안다'는 이유라고 한다. (순간, 우리 어른들도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좋으면 작가가 엄청 멋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번득 떠올랐다.) 여하튼, 주인공인 유리안 작가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특이한 동화 작가다.


거기에 더해, 작가가 싫어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더럽거나, 조금이라도 불결한 것에는 치를 떤다. 비닐장갑 낀 손으로 음식을 나누다가 다른 물건을 만진 것을 보고 그 음식을 안먹을만큼 결벽증을 가졌다. 그런 작가에게 방송국에서 초등 아이들 5명과 본인 집에서 1주일을 함께 생활하는 리얼다큐를 찍자고 제의를 해온다. 과연, 유작가는 아이들의 불결함에 치를 떨 것이 분명한데 이 제안을 수락했을까? 어찌된 일인지 작가는 거절을 못하고 결국 받아들인다. 그 일주일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순식간에 더러워지고, 말대답하거나,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하는 것이 생활인 아이들, 생각만 해도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싶다.


유작가에게 ‘물방울 톡톡 싱그러움’이라는 긴 이름을 지어주는 윤미, 탐정 코난 같은 막강한 관찰력을 가진 만화가를 꿈꾸는 정민, 네일아트를 잘하는 세나, 동화작가가 꿈인 하영, 특이한 생김새를 가진 태현이 이렇게 5명의 막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과 음식을 만들고, 생일도 아닌데 생일로 치고 케이크를 만드느라 정신 없이 보낸 1주일. 방송은 막강한 편집의 힘으로 멋지게 만들어져서 방송된다.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연락을 받는 유작가.


교실에서 매일 매일 생활해도 난장판인 아이들이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개성도 강한 친구들이라면 1주일의 동거는 저절로 상상이 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유작가가 아이들과 적응을 해나간다는 것. 다시 방송국에서 1박 2일 여행을 제안받고 떠난 뱃길은 시작부터 험난하다. 태풍이 몰아치는 탓에 결국 계획했던 섬으로 가지 못하고 계곡 산장으로 바뀐다. 그 곳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날씨 탓에 산장에는 작가와 아이들만 들어가게 된다. 기다리면서 아이들과 놀다가 다친 태현이를 위해 엉겅퀴를 찾으려다 산에서 구르기까지 한 유작가. 아이들과의 몸부대낌은 작가를 변하게 만든걸까? 깔끔과, 완벽함을 좋아하던 유작가는 이제 대충 더러워도 아무렇지도 않아진다.


순간 마음 안에 전등불 하나가 켜진 듯 환해졌다. 아이들 모습이 온전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비로소 아이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 같구나.”


그랬다. 아이들은 흐르는 물처럼 매번 달랐다. 마치 개울에서 계곡으로, 계곡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흐르는 물처럼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있기에 가능한 거 아닐까? 어떤 틀에 묶어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늘 어른들이었고, 그래, 그렇다면 나 동화작가 유리안의 할 일은? 아이들이 자기 결 따라 잘 흘러갈 수 있게 지금부터 마음의 길잡이가 되어주면 좋겠지?


“흐흐흐, 이 녀석들, 너흰 이제 내 손안에 있다. 딱 기다려라!”


책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주인공이 이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것, 아이들을 이해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과연 아이들과 몇 일을 보낸다고 이렇게 될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아이들과 몇 십년을 함께 보낸 교사들도 이런 깨달음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어쨌거나, 동화 작가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흐르는 물처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 진정한 동화작가로의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책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물론 중간 중간 아쉬운 전개가 있지만 동화작가의 소설인 탓인지 속도감이 있어서 좋다. 아이들을 좋아하려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작가가 아이들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진짜 동화작가를 만나면 꼭꼭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아이들을 위해 글 쓰는 사람인데, 정말 아이들을 좋아합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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