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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Oct 13. 2022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힘들게 끊었던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약물 중독으로 입원해 있던 나는 너와 함께하기 위해 단번에 약을 끊었다.

내 상태에서 단번에 약을 끊는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금단 현상을 겪는 듯 내 몸은 제대로 된 체온조절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진정 나에게 필요했던 건 서서히 약물을 줄이고 일상을 되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약이라면 치를 떨었고 내가 당장 약을 끊지 않는다면, 너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네가 단잠에 빠진 시간, 나는 잠들지 못하고 죽을 듯한 불안함과 우울감을 껴안고 버둥거렸다.

낮에는 무기력증과 지난밤 미처 해소하지 못한 피로를 안고 살았다.

차라리 약물 중독으로 사리 분별하지 못하던 시간이 더욱 편할 정도로 내 삶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점차 약이 없어도 큰 불안함과 공황은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우울증과 불면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서 약이라도 지어온다면, 그걸 알게 된 엄마, 아빠의 반응이 부정적일 거라 죽음의 기분을 느끼는 날에는 시한부 환자처럼 삶을 보냈다.


내게는 책임져야 할 네가 있기에 그나마 그 고통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매일 산책을 나가 맑은 공기도 마시고 몸을 움직이면서 너와 눈을 맞추고 웃는 게 내게 안정, 그 자체였다.


2020년, 그 해 가을은 코로나도 문제였지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도 큰 문제였다.

산책을 나가기 전 날씨를 체크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날도 미세먼지가 낀 흔하디 흔한 그런 날이었다.

먼지가 좀 게이자 밥을 먹던 나는 엄마에게 먼저 너와 나가 있으라고 재촉했다.


느긋하게 밥을 먹고 네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나오기 전 분명 소파에 지박령처럼 있던 아빠가 그 자리에 있었다.

상황이 파악되는 데까지는 금방이었다.

두 달 전에 지나가던 네 귀를 물었던, 동네 보호자들 사이에서 문제견으로 뽑히던 웰시코기였다.


한 번은 실수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두 번은 아니었다.

가해견 보호자는 리드 줄을 놓쳤다고 말하지만, 이미 가해견 보호자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산책을 하는지 다른 보호자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풀 냄새를 맡으며 있었고 가해견이 리드 줄을 풀어헤치고 갑자기 달려와서 너의 목과 배를 물었다.


산책을 나와있던 20대 초반의 보호자가 자신의 부모를 불렀고 나는 그 부모에게 화를 내었다.

내가 제일 화났던 부분은 병원비를 보상하면 되지 않냐는 뻔뻔한 태도였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해결되지 않는 화를 억누르는 좋지 못한 습관으로 우울증이 겪어온 사람이다.

절대 쉽게 본성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성을 잃는 건 순간이었다.


나는 도대체 개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두 달 사이에 개물림 사고가 두 번이나 발생하는지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산책을 나왔던 딸은 자기 엄마에게 왜 화를 내냐며 내게 되물었다.


내가 한 말은 “내 새끼가 다쳤는데 내가 제정신일 수 있겠느냐. 그럼 내가 너네 집 개새끼 똑같이 물어줄 테니까 그걸로 퉁치자,”였다.


상대방은 뭔 개소리냐고 했지만, 난 진심이었다.

너를 다치게 한 것들은 그 순간 모조리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사람은 죄가 있어도 개는 죄가 없기에 참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분노에 일가견 있는 아빠가 되려 말릴 정도로 나는 고성을 냈다.

처음으로 아빠가 날 때릴 듯이 행동했지만, 무섭지 않았다.


이 와중에 가해자는 자신이 내 엄마뻘은 되는데 내가 반말을 한다고 지적했다.

나는 시원하게 “네가 내 엄마도 아닌데, 어른이 어른다워야 존중을 해주든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사람한테 왜 존대를 해야 하냐”라고 말해주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날 모욕죄로 고소하겠다는 말도 했다.

차마 엄마, 아빠가 있어서 욕은 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욕을 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

기왕 그렇게 소리칠 거, 이렇게 마음 아플 거, 뭐가 되었든 욕이라도 해줄 걸.


경찰의 중재로 상황이 마무리되었고 너는 병원에 가야만 했다.

물인 부위는 동맥이 지나는 목과 제일 약한 배로 이건 명백히 사냥과 죽임의 의도가 다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을 새워 널 간호했다.

다음 날 나는 신경정신과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도저히 화를 다스릴 수 없어서.


이후 엄마와의 통화에서 가해견주의 보호자가 우리 때문에 이사를 갈 것이다, 나 때문에 자기가 정신적으로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정말 나만큼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지 궁금하지만, 단언컨대 나만큼 받았을 리 없다.

그리고 이사는 어차피 집주인이 전세를 빼 달라고 해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


미안함과 사과할 줄을 모르고 거짓만 늘어놓을 줄 아는, 나이만 들었을 뿐 어른이 아닌, 밑바닥 인성의 사람이었다.

나는 그때 네게 상처 입힌 사람에게 똑같이, 혹은 더 깊은 상처를 입히고 싶었다.


나의 일상과 네 하루를 망친, 죄책감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저 상처 주고 보복하고 싶었다.

평생 모욕과 수치심을 느끼길 바라면서.

그게 널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였다.

이미 나와 너에게 생긴 트라우마가 가해자에게도 새겨지게 만들 절호의 기회였다.

그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표출했지만, 나의 우울증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었다.


표현을 안 해도 문제, 표현을 해도 문제가 생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일은 나를 다시 좀먹었지만,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무례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 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네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의를 불문하고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내며 살아갈 것이다.

너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중 시도 때도 없이 빛이 나서 제일 엉망이지만, 가장 사랑스럽고 여린 존재이니 말이다.

분명 극단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내 정신건강이 이로운 일은 아닐 테지만, 화를 내든, 안 내든 어차피 아프고 힘들 거라면, 시원하게 소리라도 지를 거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2년 후에, 남편이 말려서 참았지만, 참지 않아야 할 일을 참아 버리고 스트레스에 치여버린 우울증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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