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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Oct 12. 2022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평화로운 일상은 너로 인해 깨진다.

정신을 바짝 붙들어 매고 고요한 날들을 보내는 와중, 넌 내 삶을 산산이 짓밟는다.

너와 만나며 바뀐 점은 네게는 한없이 높은 잣대를 들이밀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그렇지만 네 발자취 한 걸음, 한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고요했던 시간은 일종의 경고였다.

운수 좋은 날의 최후가 그러하듯, 나의 최후도 비슷했다.

애정 과잉에서 벗어나고자 내 방문을 닫고 자기 시작했다.

그러자 넌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복걸하며 울다 결국 짖기 시작한다.

견뎌야 하는 시간이지만, 네 서러움이 가득한 그 마음을 이해시켜줄 수 없는 내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너와 나는 잘 이겨냈다.

(지금은 도루묵이 되었지만 말이다.)

네가 울고 짓는 소리에 예민해져 불면증이 심한 내가 더욱이 잠을 못하게 된 것 빼고는.


가장 큰 문제는 네가 아무 곳에나 배변을 보는 것이었다.

이건 당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4개의 침실, 모든 곳에 네 흔적을 남기기 바빴다.

엄마, 아빠는 그런 네게 화를 내고 혼내려 했지만, 나는 막아섰다.

네가 평생 집에서 편히 오줌 한 번 못 누게 될까 봐.

내 침대의 침구가 모두 세탁기로 들어가고 침대를 말리기 위해 드라이기를 들고 있어도 난 화내지 않았다.

그저 네가 집에서도 볼일을 보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집안 곳곳에 네 배변패드가 놓였다.

어디든 좋으니 네가 편한 곳을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배변패드가 아니라 다른 곳에 볼일을 봐도 난 묵묵히 그걸 닦아주고 너와 산책을 나갔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게 몇 번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묵묵히 네 실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네 실수는 내가 보듬어주면 끝나는 일이었고 너와 나 둘만의 비밀이면 되었다.


아빠에게 대적하는 일이 힘에 부쳤어도 내가 널 지키고 있다는 것 하나로 모든 일이 세상 값진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를 지킨 시간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는 한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기분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널 위해 초콜릿 제품 자체를 끊었던 내가 처음으로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초콜릿 라테를 사 온 날이었다.

나는 당연히 네가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책상이라 할지언정 나는 네 행동을 더 관찰해야 했지만, 잠시 한눈을 팔고 방을 떠났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불에는 초콜릿 라테가 쏟아져 있었고 넌 그 위를 핥짝이고 있었다.

정말 와르르 눈물이 쏟아진다는 느낌과 함께 내 안일함에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단순한 미안함과 걱정이 아니었다.


내가 널 죽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올바르지 못한다면, 자칫 너무 여리고 나약한 네가 죽는다는 무서움이 뒤따랐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고 다행히 집에 함께 있던 엄마가 달려왔다.

널 죽일 수 있는 독배가 든 건지도 모르고 너는 그저 내가 좋아서, 내가 들고 온 컵을 물고 책상에서 내려와 침대에서 뜯어낸 것이었다.

엄마는 이불로 흡수되어 네가 얼마 먹지도 못했을 거라 애써 나를 달랬다.

나는 떨려서 제대로 자판도 누를 수 없는 손으로 병원에 전화했다.


카페인도 안 들어있고 다량 섭취로는 보이지 않으나 혹여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바로 병원에 내원할 것을 권했다.


그 전화를 끝내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중성화 수술 이후 퇴원하는 네가 나를 향해 엄살을 부리던 걸 본 후, 더 이상 네가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일은 없게 하겠노라 다짐했건만.

한 순간의 안일함으로 널 지켜주지 못한 보호자가 되었다.


너만은 내가 무엇으로부터든 지키고 남부럽지 않게 사랑하겠다 수천 번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너를 위험하게 만든 건 ‘나’라는 사실이 제일 괴로웠다.


그날 나는 혹여 한밤 중이라도 네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밤새 너의 옆자리를 지켰다.

곤히 잠든 네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혐오는 다시 시작되었다.


달이 지배한 시간 동안, 너 조차 지키지 못하는 내가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너의 세계가 되고 너의 우주가 될 자격이 있는지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생긴 강박은 여전히 유효하다.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놓을 때는 책상 의자를 멀찌감치 떼어놓을 것.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1년이 지나서야 초코 라테를 다시 마시게 되었다.

너를 위한다면, 혹시나 모르는 일들을 위해, 내가 좋아하던 초콜릿이라도 흔쾌히 먹지 않았다.


그리고 물을 제외한 모든 건 내가 잠시 없는 순간에도 네가 함부로 열 수 없도록 했다.


이 작은 습관들로 너를 애달피 내 손에서 보내야 하는 날들이 저 멀리 사라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제는 나의 취향과 취미보다 너의 취향과 취미에 발맞춰 가는 것이 일상이다.


쌉싸름한 우울함을 달래주던 달콤한 초콜릿보다 네가 안전할 수 있다면, 난 그거로 된 거다.

만약 최악의 경우에 그때 일로 내가 널 잃었다면, 나에게는 네게 미안함을 사죄할 기회도 없었을 테다.

나는 평생 절절매며 첫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가 죽을 날이 서둘러 오기만을 기다렸을 거다.


나에게 트라우마가 된 것보다 행동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준 네가 감사하고 대견할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네 일이라면, 흔하디 흔한 일 하나에도 손을 벌벌 떨고 심장이 쿵쾅이며 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환자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가끔은 궁금할 따름이지만.

너는 항상 내 우위에서 나의 가치관과 생활관 등 모든 것을 바꾸려 들 것이다.

너는 내가 시험에 들도록 하는 신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나는 네가 만든 시험에 맞춰 내 전부를 다 받쳐 널 사랑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한 선택이었고 알량한 책임감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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