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남편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너를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단지 강아지가 키우고 싶다던 철없는 시절을 지나, 내가 책임을 지고 살아가겠다는 시절에 도달해서야 널 만날 수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너이기에 나의 결혼으로 너와 함께 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매일 네가 없는 빈자리와 허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앓아눕거나 큰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너와 따로 살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편과는 이미 2017년도부터 결혼까지 생각하며 연애를 했다.
내가 입양 과정에서 딱 한 가지 실수를 한 게 있다면, 남편에게 네 입양 여부를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가족 모두가 선뜻 동의해서 잔뜩 신나 있는 상황이라, 미래의 가족이 될 남편에게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남편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되었지만, 나는 당연히 결혼을 해도 너를 키울 거라 여겼다.
당연히 남편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네가 지나가던 사람도 좋아하던 시절,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은 매 주말 나와 널 위해 시간을 보내주었다.
함께 동네 산책을 하고 큰 공원까지 안고 가서 산책을 했다.
네가 온 이후로 대부분의 데이트는 당연히 너와 함께 하는 2인 1견의 데이트가 되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널 챙기는 거에 더욱 정성을 들였다.
만약 내가 반대의 상황에 놓인다면, 남편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남편은 네게 지극정성이었다.
너 역시 남편이 널 얼마나 예뻐하는지를 알기에 남편을 부르는 애칭만 입에서 흘러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장난으로 남편의 애칭을 부르면, 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칭얼거렸다.
남편의 애칭은 네게 마법 주문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가족 모두가 놀랄 정도로 남편에 관한 네 애착과 기다림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네 존재에 관해 상의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 남편인데, 넌 그저 만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남편과 나는 당연히 결혼을 했고 우리는 한 집에 사는 가족이 되었다.
남편은 본인의 의사 여부도 묻지 않고 너와 살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너를 아껴주던 남편은 기꺼이 너를 가족으로 맞아했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너를 위해 시작한 적금에서도 남편은 제외됐다.
너를 데려올 당시 의사표현을 한 적이 없고 물어본 적조차 없기에, 양심상 나를 포함한 4명의 가족들이 해결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의 이유로 버려지는 강아지의 수가 많아졌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났지만, 1인 가구에서 2인 가구로 바뀔 때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유기된다.
분명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환경적, 상황적 요소가 있을 거다.
결혼할 상대가 털 알레르기가 심하다든지,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아 한다든지 등 상황은 많다.
모두가 내가 겪었던 상황처럼 운 좋게 넘어가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반려동물 유기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는 원래 살던 가족이 모두 동의를 했기에 백설이와 만날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없어도, 내가 책임지지 못할 상황이 되어도 백설이에게는 같이 살 가족이 있다는 거다.
엄마와 아빠는 매일 백설이를 보고 싶어 하고 안부를 묻는다.
아빠는 둘째를 데리고 오자고 하지만,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백설이는 나와 남편이라는 가족, 엄마와 아빠라는 가족, 이렇게 두 가족이 있는 것과 다름없다.
어느 가족과 지내든 환영받고 예쁨 받고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살 거다.
반려라는 말의 무게는 이런 것이다.
내가 피치 못할 상황에 놓였더라도 책임질 방안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해 보험을 들듯이 말이다.
내가 좋을 때만 골라서 옆에 놓고 싶다면, 그건 반려가 아니다.
선택에 따라 가족도 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도, 그건 엄연히 사람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오늘도 누군가는 가족을 버렸고 버릴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그건 명백한 살인과 다름없다.
반려동물은 집에서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길 위에서 혼자 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보호소에 들어가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안락사 위기에 놓인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 반려동물을 버린다면, 반려동물이 죽길 바라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