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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Sep 25. 2022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1. 하수처리장 구 씨 (10)

“일단 엄마든 구주성이든 아버지를 살리고 싶다면 지하 차고부터 정리하고 같이 생활하세요. 아버지는 사는 이유가 가족뿐인데 그런 사람한테서 가족을 뺏어놓고 아버지께 이러는 거 너무들 하신 거 아니에요?”


구윤학의 아내도 구주성도 마음속으로 수긍은 했지만, 쉽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진 못 했다. 그 이기적인 태도에 구주영은 화가 났다.


“사람이잖아! 그리고 가족이고 아버지잖아! 그렇게 빨대 꽂고 쪽쪽 빨아먹었으면, 아니 앞으로 뭐라도 더 쥐어짜 내고 싶으면 살리긴 해야 할 거 아니야!”


구주영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구윤학을 감싸 일으켜 푹신한 소파 의자로 앉았다. 본인은 구윤학을 마주 보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구윤학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구주영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더 구윤학의 눈물은 심해졌다. 구윤학은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딸의 손 한쪽을 맞잡았다.


“제발... 날 도와줘, 주영아...”


구슬프디 구슬픈 늙은이의 눈물 젖은 말이 구주영의 마음을 적셨다.


“오늘 일 그 누구도 밖으로 내뱉지 말아요. 저기 밖에 있는 애들한테도. 그리고 구주성 네 와이프한테도 말이야. 만약, 이 집안에서 고발자가 나온다면, 나는 그 사람을 공범이라고 고발할 거야.”


구주영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선 다시 모든 것들을 예전으로 돌려놓아야만 한다. 단순히 암이나 멍울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밖에 모르던 아버지다. 가족에게 외면받고 자살조차 가족들에게 해가 갈까 봐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암을 달고 있는 아버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일지라도 가족 그 자체다.


“알았어?”


구주영의 단호한 목소리에 기가 눌린 구주영의 엄마이자 구윤학의 아내와 구주성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구윤학은 '왜 더 빨리 구주영을 찾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구주영은 구윤학을 다시 부축해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눕혔다.


“여기서 쉬고 계세요. 저는 좀 더 얘기를 해야겠어요.”


이 말을 끝으로 구주영은 방문을 닫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서는 구주성과 구주영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미 수영장을 채울 만큼의 눈물을 흘린 구윤학에게 그들의 싸움을 엿들을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구윤학은 오늘 나눈 대화로 가족들의 마음을 느꼈다. 혹여 자기 때문에 조금의 피해라도 볼까 봐 무서워 마음속으로 덜덜 떨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아무리 자신에겐 희망의 씨앗이라도, 가족들은 자신의 희망을 뺏기 위해 패악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구윤학이 가족들이 자신의 희망을 빼앗으려 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가족들을 사랑한다. 아주 애절하고 뼈저리게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족들과 한집에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주성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죄송해요... 집 내부는 빠른 시일 내로 바꿔놓을게요. 일주일만 차고에 계세요. 도배도 하고 어머니랑 같이 생활하실 수 있게 예쁘게 꾸며놓을게요.”


“그럴 필요 없단다... 난 그저 지하 차고에 있어도 가족들과 한집에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걸... 주영이가 워낙 세서 네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구나.”


구윤학의 말이 맞다. 구주성은 자신의 자존심을 잔뜩 할퀴고 헐뜯은 구주영이 빨리 이 집에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중이었다.


“누나는 조금 전에 갔어요. 인사 못 드리고 간다고 죄송하대요. 다음 아버지 휴일에 또 온다고 하네요.”


구주영은 아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집을 튀어 나갔을 게 분명하다. 예전부터 종종 그래 왔으니까. 그래도 구윤학은 구주영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지 못하고 보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공사니, 뭐니 난 괜찮단다, 주성아. 그저 불안해하지 말고 날 믿고 보내주렴. 네게 아무런 피해도 안 주고 곱게 떠날 테니 말이다.”


그렇게 구윤학은 다시 올라올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로 자신을 다시 지하 차고에 가두었다. 그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믿는 그이기에,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구윤학은 가족을 사랑하는 중이다. 비록 희망은 죽음뿐일지라도.




얼마 안 가 구윤학에게 택배가 왔다. 구주영이 보낸 택배였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진통제와 영양제가 들어있었고 특이하게 포장된 무언가와 편지도 함께 들어있었다. 편지에는 진통제와 영양제에 대한 설명, 그리고 특이하게 포장된 무언가가 피와 소변이라고 적혀있었다.


냉각 포장된 것이니 검사 전날 뜯어놨다가 검사 때, 제출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 줄엔 가족이 아닌 당신을 위해 살길 바란다며 눈물로 번진 글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윤학의 일과는 예전과 다름없이 다시금 흘러가고 있었다. 해가 땅 위로 찾아오기 전 출근해 지하 벙커 같은 분뇨처리장에서 일하고 해가 지평선을 다 넘어가 어디 있는지 찾아볼 수 없을 때가 되고서야 퇴근해 쓰러지듯 잠을 잤다. 여전히 갑작스레 찾아오는 통증에 힘겨운 날들이었지만, 구주영이 보내준 진통제는 꽤 효과가 좋았다.


오늘도 다름없이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작업복을 갈아입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주변 노동자들의 눈길이 이상했다. 한동안 따라오지 않던 수군대는 소리도 구윤학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때였다. 양복을 차려입은 하수처리장의 상급자가 구윤학을 불렀다. 상급자의 뒤에는 경찰 제복을 입은 이들도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다른 노동자들이 더 크게 동요했다.


“구윤학 씨 본인 맞습니까?”


경찰 제복을 입은 우람한 체격의 남성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당신을 치료를 방치하고 병사로 위장해 자살을 시도한다는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윤학의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그렇게 구윤학은 경찰서와 병원은 끌려다니며 여러 조사와 검사를 받았다.


부인할 말조차 없었다. 구윤학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누구에게 소변과 피를 받았는지, 왜 치료를 받지 않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입을 꾹 다무는 것뿐이었다.




구윤학의 첫 면회 신청자는 당연히 가족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현석이었다. 두 사람은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 보고 앉았다. 흠흠 거리며 헛기침 소리가 몇 번을 오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장현석이었다.


“내가 고발자네. 내가 자넬 고발했어.”


고발자가 누군지 말해주지 않았던 경찰과 병원, 관계자들이었는데, 장현석이 스스로 찾아와 구윤학에게 말했다.


“자넬 고발한 대가로 난 1억이란 보상금도 받게 되었지.”


구윤학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년을 알고 지냈다. 처음 자신의 멍울에 대해 말했을 때도, 암이라고 하였을 때도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 주었던 진정한 친구였다. 도와주지 않을 테니 알아서 살라던 장현석이 왜 갑자기 마음을 돌린 걸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버티면 끝낼 수 있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그 누구도 아니고... 어떻게 자네가...”


“날 먼저 배신한 건 자네야. 그래도 전 여편네가 반지를 퍽 마음에 들어 하더군. 그러니 실컷 내 탓이나 하게.”


장현석의 덤덤하게 말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는 중이었다. 허나, 고발자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장현석 때문에, 충격을 받은 구윤학은 장현석을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자네도 날 고발하지 그래? 나와 한 거래가 있지 않나.”


충격을 머금은 구윤학이 긴긴 생각 끝에 장현석의 물음에 답했다.


“아니... 나는 그럴 생각이 없네...”


그들은 그 이후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주어진 면회 시간 15분, 그렇게 침묵만을 유지한 채 서로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흘려보냈다.


면회를 마치는 알람 소리가 울려도 그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경찰들이 들어와 말도 없는 두 사람을 반대 방향으로 놓인 문으로 끌고 갔다.


장현석이 스스로가 고발자라고 고백을 한 면회 이후로 구윤학에겐 그 어떤 면회도 없었다. 면회는 가능했지만, 찾아오는 가족도 누구도 없었다.


구윤학은 독방에 수용돼서 하루는 장현석의 배신에 대한 분노, 하루는 가족들과의 따뜻했던 기억, 하루는 다시 분노, 그러다 하루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에 상실감을 느꼈다.




구윤학의 재판은 얼마 되지 않아 열렸다. 구윤학은 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느라 보지 못했던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가족들의 표정은 어떨까 궁금했다. 가족들이 속상해할 표정을 볼 자신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한 증언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재판정에 들어선 구윤학은 제일 먼저 관중석을 보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앉아있지 않았다. 재판장이 들어오고 정식 재판이 시작할 때까지도 관중석에는 몇몇 기자들만 있을 뿐이었다.


재판 도중 증인으로 채택된 의사 한 명이 나와 구윤학의 건강 상태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윤학 씨 목의 멍울은 그저 양성 물혹입니다. 암이 아닙니다.”


구윤학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암이고 온몸으로 암의 고통을 받아들였다. 구윤학은 머리와 팔, 다리로 뿌리와 줄기를 내리는 암세포들을 느꼈다. 그런데 그저 물혹일 뿐이라니.


“각혈 또한 건조한 곳에서의 오랜 생활과 편도염이 겹쳐 만들어낸 것일 뿐입니다.”


도저히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구윤학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껏 소리쳤다.


“물혹이라니! 단순 물혹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


구윤학 옆을 지키던 교도관 둘이 구윤학을 자리에 앉히려 애썼지만, 구윤학은 멈출 줄 몰랐다.


“분명 온몸으로 느꼈어! 죽을 듯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내 암이 팔다리 하나 빼놓지 않고 구석구석 퍼져가는 걸 내가 느꼈다고!”


구윤학의 발악에 재판정이 소란스러워지자 재판장 최상훈은 판사 봉을 두드렸다. 그러자 교도관 둘은 더욱 강하게 구윤학을 제압해 자리에 앉히고 손으로 입까지 막아 버렸다.


“구윤학 씨가 느낀 통증은 물혹이 커지며, 주변 신경을 눌렀기 때문이라 판단합니다. 혹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겠죠.”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윤학은 발악했지만, 자신을 짓누르고 입을 막아버린 교도관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재판은 그렇게 구윤학의 절규로 마무리되었다. 재판장 최상훈은 시스템에 구윤학의 죄목과 참고사항을 입력했다.




구윤학의 죄목은 이러했다.


1. 병사를 위장한 자살 시도

2. 치료 거부

3. 노동자 건강검진 결과 조작

4. 동료 협박으로 인한 피와 소변 갈취

5. 공범을 포섭하려 한 행위


재판장 최상훈은 감형 사항은 따로 입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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