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리 Sep 25. 2022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1. 하수처리장 구 씨 (완)

시스템이 선고한 구윤학의 형벌은 물혹 제거와 한 달에 한 번 세부 건강검진, 그리고 감독관의 감시하에 취업 기관 거주와 추가 노동 10년형이었다.


1년 정도면,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구윤학은 자신의 죽음을 빼앗아간 모든 것들에 절망하고 절규했다. 재판 내내 소리를 지르던 구윤학은 판결을 받고 더욱 절망했지만, 반항할 기력조차 없이 교도관에 붙들려 재판정에서 끌려나갔다.


재판정 밖 난간의 의자에 구윤학을 앉힌 교도관은 구윤학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 구윤학이 그 물을 홀짝이는 사이 판사로 보이는 둘이 지나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네 그거 들었어? 오늘 그 암 환자 사건 있잖아.”


“아, 암이라고 했는데, 물혹이었던 그 사건?”


“그래, 그거. 근데 그거 고발자가 아들이래.”


“뭐? 진짜? 아무리, 보상금이 1억이라고 해도 제 아빠를 팔아먹어? 대단하다 정말.”


판사가 지나가며 흘린 얘기를 들은 구윤학은 손에 들고 있던 물 잔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3층 난간 밑으로 뛰어내리기 위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지만, 그마저도 교도관에 제지되었고 몸에 남아있는 모든 힘을 모아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다. 그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구윤학을 제지하기 힘들었던 교도관이 테이저건을 쏘았다. 그때야 구윤학은 눈물만 흘리다 실신했다.




구윤학이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동안 분뇨처리시설 사무실 옆에는 조그마한 컨테이너가 들어섰다. 컨테이너 속에는 간이침대와 텔레비전 등의 간단한 가구가 채워졌다. 구윤학이 회복을 마치면, 그 컨테이너에서 빚을 갚고 노동형을 다 채울 때까지 살게 될 것이다.


구윤학이 병원에 격리당해 회복하는 동안 구윤학와 그의 아내의 이혼 소송도 진행되었다. 구윤학은 그저 서면으로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그 둘의 이혼은 성립되었고 위자료로 구윤학은 자신의 집을 아내에게 뺏겼다.


구윤학의 딸 구주영 역시 재판을 받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자살 방조와 노동자 건강 검진 결과를 조작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보낸 진통제와 영양제, 그리고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살리려 했다는 유능한 변호사의 변호와 유망한 인재가 될 2급 노동자라는 이유로 처벌은 받지 않았다. 다만, 재판 이후 모든 가족과의 연을 끊었다.




구윤학 사건의 재판을 끝낸 후 최상훈은 영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선배의 충고 이후 피고인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고 이해하기 위해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 고찰했다. 그래서 때로는 선배에게 꽤 인간적 이어졌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최상훈은 그 어떤 감형 사항도 입력할 수 없었다. 피고인에게 인간적인 친절을 베풀 수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


피고인은 자신이 빚을 진만큼 일해서 갚는 게 당연한 건데, 그게 싫어 죽음으로 도망치려 한 자다. 한데 무엇이 자신의 양심을 건드리고 찔러대는 것일까. 무언가 자신이 잘못 판결한 부분이 있는지, 재판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상훈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버려진 아버지의 처참함을 처벌했다는 사실에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께름칙함을 느꼈다.




얼마 후, 구윤학에 대한 이혼 재판 소식과 공범으로 피고인 신분이 된 딸의 소식이 더 들리며 이번엔 최상훈이 커피를 사 들고 선배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에 딸린 영접실 테이블에 커피 두 잔을 내려놓자 선배가 영접실 의자에 앉았다.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최 재판장?”


“선배가 예전에 그랬죠. 피고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노력했어요. 선배가 말하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려고. 근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전 열심히 그 사람의 생애를 이해하려 했고 피고인의 죄목을 입력했어요. 감형 사유로 입력할 만한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그 피고인 재판 이후에 이혼 소송도 잡혔다지? 공범으로 몰린 딸은 유명 변호사 선임해서 재판을 앞두고 있고. 불쌍한 사람이지 뭐.”


커피를 홀짝이는 선배의 표정은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과 비슷했다.


“분명 전 제대로 재판을 했는데 뭔가 잘못된 거 같아요...”


더는 최상훈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계획대로, 국가가 정한 규칙대로만 살던 최상훈에게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상훈, 본인은 정확히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구윤학은 치료를 끝낸 후 분뇨처리시설로 돌아왔다. 모든 일과를 감독관의 감시하에 매일을 전과 다름없이 일했다. 출퇴근 버스를 탈 필요도 없어졌다. 구윤학의 집은 분뇨처리장 사무실 옆 조그마한 컨테이너가 되었으니까. 되레, 퇴근 후 매일 혼자였던 일상에 감독관이라는 사람이 함께하며 온기를 더했다.


어느 날, 장현석이 말을 걸었다.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


“자네는 나 없는 동안 새로운 친구라도 만들었나.”


“이곳엔 자네만 한 친구가 없더군.”


장현석은 말을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 자네는 고발자가 아니었잖아.”


구윤학이 자신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 뜸을 들이던 장현석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네... 자네 아들이 고발자라는 걸. 가족밖에 없는 자네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네가 너무 가슴 아파할 거 같았어...”


한때는 장현석을 미워했지만, 지금의 구윤학은 장현석에게 미안함만 가득했다. 자신을 이리도 위하는 친구를 의심했다는 사실도, 친구의 거짓말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도.


“자네 내가 예전에 한 말 기억하나? 내가 자네를 구하는 데에도 이유는 필요 없겠냐고 말이야.”


예전에 장현석과 구윤학이 술을 먹었을 때, 장현석이 구윤학에게 한 말이었다.


“항상 고민했다네. 어떻게 해야 자네를 구할 수 있을지. 꼭 살려내야만 구하는 건지, 죽음뿐이 자네를 구할 수 있는 건지...”


“죽음만이 날 구할 수 있었다고 나는 여전히 믿네.”


망설이던 장현석과 달리, 구윤학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래, 그렇구먼... 자네가 반지를 가져갔을 때, 자네에게 일부러 더 화를 냈네.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자네가 자네 피와 소변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진짜로 우정을 저버릴 생각은 하나도 없었네.”


장현석의 말에 구윤학은 장현석이 자신에게는 화를 내면서 다른 노동자들이 헛된 소문을 만들지 못하도록 막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자네와 계속 친구로 있을 수 있어서 좋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구 씨?”


구윤학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들의 잠시 끊어진 줄 알았던 우정은 앞으로도 꽤나 오래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십여 년 후, 신입 노동자가 충원된다는 풍문이 돌더니 사실이었다. 2명의 신입 노동자가 들어왔다. 구윤학은 신입 노동자들에게 별 관심도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새로운 신입 노동자들에게 분뇨장에 밀어 넣으며, 도 넘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신입 직원 한 명이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구윤학은 직원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주성아...”


“아버지! 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


분뇨장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신입 노동자 중 한 명은 십몇 년 만에 보는 구주성이었다.

이전 12화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