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순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나는 내내 야무졌다.
배고프고, 억울하고, 지독하게 서러워도
목소리가 떨렸을 뿐, 고개는 꺾인 적이 없었다.
학교는 멀었고,
책은 빌려 읽어야 했고,
시를 쓴다는 건 사치 같은 세상이었지만
나는 풀꽃처럼 고개를 들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당신이 왔다.
관식이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괜찮다”는 말을 먼저 건넨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그건 분명하다.
말로도 받았고,
밥으로도 받았고,
때로는 입 닫고 울고 있는 내 등을
가만히 토닥이던 손끝으로도 받았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잃을 때마다
그 사람은 조금 더 나를 껴안았다.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진 못했을지언정,
외롭게 두진 않았다.
금명이를 낳고,
동명이를 보내고,
살면서 나는 수없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한 번도
무너진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늘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금명이가 컸고
딸이 나 대신 시를 쓰는 사람이 됐을 때,
나는 비로소 안다 싶었다.
우리가 이룬 건 위대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단지 ‘끝까지 살아낸 것’이구나.
그리고 이제 나는
이 작은 방 안에 앉아
종이 위에 내 인생을 조금씩 눌러 적는다.
내 삶의 제목은
‘폭싹 속았수다’다.
속았지만
수고했고,
속았지만
행복했다.
나는,
풀처럼 살아서
결국 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