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사랑받았더라”

애순은 우리 엄마였고, 관식은 우리 아빠였다.

by 이소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사랑 이야기고, 시대 이야기고,

제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자꾸

우리 집 냉장고 앞에 선 엄마가 생각났다.

장 보러 나가기 전,

두세 번은 똑같은 쿠폰을 확인하고

가격표를 외우는 엄마의 뒷모습.

말없이 내 약봉지를 뜯고

숨죽여 나가던 뒷모습.


애순이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난한 시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절망들 속에서

애순은 울면서도 웃었고,

짓밟히면서도 단 한 번도 등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늘 일찍 일어나 밥을 했고,

생색 한 번 없이 온 가족을 챙겼다.


그게 사랑인 줄

나는 정말, 몰랐다.




관식도 그랬다.

눈에 띄는 말은 없지만

늘 애순 곁에 있었고

딸에게는 아버지라는 무게보다

‘등이 따뜻한 사람’으로 남으려 했다.


우리 아빠도 그런 사람이었다.

돈을 벌어다 줬고,

운전해줬고,

가끔은 퉁명스러웠지만

내가 진짜 울 땐 말없이 손을 잡아줬다.


그게 위로였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았다.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사랑은 말보단 밥이었고,

안아주는 것보단 자리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나는 몰랐다.

부모라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시를 쓰고 싶었던 사람이고,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고,

울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거라는 걸.


‘폭싹 속았수다’는

내가 우리 부모를

처음으로 사람처럼 바라보게 만든 드라마였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신을 점점 덜어내고

내 이름 말고,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만 불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그 사라지는 사람들을

놓치기 전에 한 번쯤 불러보려 한다.


“엄마, 아빠 수고했어.

그리고 나,

폭싹 사랑받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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