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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따라가는 사람 Jul 02. 2022

[일상] 좌충우돌 텃밭 가꾸기(2)

자연이여 나에게 조금씩만 힘을 나눠줘. 

텃밭 초보가 가장 가꾸기 쉬운 것은 상추와 부추라고 한다. 둘 다 모종을 심으면 그때부터는 알아서 잘 자란다는 것이다. 텃밭이란 것을 이때까지 가꿔본 적이 없으니 정말 그런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2월에 텃밭을 배정받고, 무엇을 심을까 생각하면서 보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3월이 되었다. 3월에는 심으려고 했는데, 아직은 봄이지만 봄이 아닌 시절이라 지금 심으면 그건 그냥 얼어 죽으라고 내놓는 격이고, 적어도 3월 말은 되어야 뭔가 할 수 있다고 하니, 시간을 벌어들인 기분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고민 없는 고민을 하다가, 3월 말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정말 무엇을 심을지 정해야 하지만, 여전히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종이 아니라 씨를 뿌리겠다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용감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텃밭 농사를 잘할 수는 있을지 확신 못하는 상황에서 비싼 모종을 사다 심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다이*에서 파는 적상추 씨앗은 1,000 립(!)이 1,000원인데, 인터넷에서 파는 상추 모종은 하나에 1,000원 안팎이다). 설마 다 심으면 20개 정도는 성공하겠지... 아니면 그때 다시 생각하지 뭐... 이렇게 "대충" 결정하고서는 상추 씨앗을 말 그대로 막무가내로 흙 속에 묻었다. 사는 김에 총각무의 씨앗도(이건 500 립에 1,000원이다) 묻고, 같이 구매한 퇴비를 흙더미 위에 마구 흐트러 뿌린 후 물을 흩뿌렸다. 흙 색깔이 거무튀튀해지니까, 뭔가 제대로 한 것 같은 착각도 들고 누군가의 고향에서 맡을 수 있는 미묘한 향도 함께 맡게 된다. 어쨌든 텃밭을 놀리지는 않았으니 됐다.  


심어놓고 다른 텃밭을 보니 비닐을 덮은 집이 많다. 물어보니 새들이 쪼아 먹기도 하고, 3월은 꽃샘추위가 있어서 비닐을 덮어야 한단다. 그래? 그럼 나도 하지 뭐. 김장비닐을 넓게 펴서 덮고,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근처에 버려진 나뭇가지와 돌로 잘 고정시켜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뿌듯하다. 다음날부터 아침에 꾸역꾸역 나가서 비닐을 걷고 물을 주고, 다시 비닐을 덮는 루틴을 시작하였다. 비닐을 걷을 때마다 고향의 미묘한 향이 올라온다. 그래도 설마 조금은 자라겠지???  드래곤볼 손오공의 심정으로 되뇐다. 대지여, 나에게 힘을 조금만 나눠줘. 

놀랍게도 상추와 총각무의 새싹이 솟아올랐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많이...
싹이 트는 것을 보고 신난 우리 아이들이 꼬마농부를 자처한다


3월을 지나고 4월에 접어들자 햇살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싹이 텄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많이 솟아올랐다. 어디가 상추고 어느 줄이 총각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 자라 보면 알겠지. 어쨌든 감동이다. 감동받은 김에, 부모님께서 주말농장에 심어 두신 참나물과 부추도 조금 얻어와서 옮겨 심었다. 이때부터 국민학교 초등학교 시절 관찰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상추와 총각무, 부추와 참나물이 마구잡이로 섞여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수확하면 서너 봉지는 거뜬히 나왔다

상추와 무청이 막 자라기 시작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올라온다. 상추도 빨리 자라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총각무의 무청이다. 이게 이렇게 많이 자라는 거였어? 여기에 질세라 참나물과 부추도 올라온다. 부모님께 전화로 여쭤보니 매주 한 번 이상 잎을 수확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하신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당분간 상추는 안 사 먹어도 될 것 같다. 


5월 중순을 넘긴 후 충분히 뿌리가 커진 총각무를 다 뽑아냈다. 그래도 상추는 굳건하고 풍성하게 잎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던 상추가 6월을 넘기니 뭔가 달라졌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이제 곧 봄 상추 수확이 끝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면, "다 녹는다"라고 하신다. 무슨 말씀인가 갸웃 거리는 사이에 장마가 시작되었다. 

점점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
정말로 상추가 "녹아내린다"

진짜다... 정말 상추가 시들시들하고 점점 약해진다. "녹는다"는 말씀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제 한 번 정도 더 잘라먹으면 끝인가 싶다. 그동안 고마웠다.... 요즘 상추값 많이 올랐는데...


주말에 장맛비가 다시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확해야겠다. 이제 뭐를 심어야 하지? 대지여 다시 한번 너의 힘을 조금만 나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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