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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올인원

니 것, 내 것 없이 한 번에

by 파슈하

지하상가, 이름만 들어도 아직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그곳.

대학생 시절,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꼭 지하상가를 지나가야만 했다. 내가 가는 길 양 옆으로 티셔츠도 바지도 가방도 구두도 끝없이 줄 지어 있건만.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비싼 가격을 하지는 않았지만.

절약만이 미덕인 줄 아는 엄마의 눈을 피해 그것들을 집으로 모셔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게는 (아빠보다도 손위인) 막내고모와 10살 많은 사촌언니로부터 물려받은 옷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브랜드도 괜찮고 옷감 질도 괜찮고 단 하나, 나와 취향만 맞지 않는 그 옷더미를 무시한 채 티셔츠라도 한 장 사가는 날에는 엄마의 꼼꼼한 검수와 함께 잔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결국 내 작은 지갑이 열리는 곳은 양말 가게 정도였다.

한 켤레에 천 원, 비싸봐야 삼천 원. 양말이라는 것은 부피도 참 작아서 가방에 쏙 넣은 채로 현관을 쓱 통과하기도 좋았고, 양말 더미에 한 두 켤레 더 올려놓는다 한들 별로 티 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혼자 지하상가를 떠돌다가 기가 막히게 예쁜 양말을 골라 데려오는 것이 일종의 낙이자 취미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엄마도 나의 양말이 점점 늘어나는 것들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사 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사 오는 양말인 데다 가격도 천 원, 이천 원 정도니 그에 대해서는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연교차 40도에 육박하는 뚜렷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라 아니던가!

봄에는 봄에 어울리는 꽃양말, 여름엔 더위를 극복할만한 얇은 망사양말, 가을엔 진중한 컬러의 무지양말, 겨울에는 알록달록한 극세사 양말. 조금만 있으면 신상 양말들이 지하상가 매대로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양말들이 많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레이스가 어디 달려있는지에 따라 양말의 분위기가 참 많이 바뀐다. 면 혼용율이 얼마냐에 따라 착용감도 세상 각각이다.


진짜 멋쟁이는 양말에서 드러난다고 했던가.

머리부터 발목까지는 딱히 멋쟁이가 아니었지만, 그 말 자체는 한창 낮아져 있던 나의 자신감을 끌어올려주기에 제법 괜찮았다. 발 끝을 볼 때마다 '어쩌면 나도 멋쟁이일지도?'란 생각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이 양말 수집은 엄마가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옷'을 사모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양말은, 그렇다. 이미 종류별로 꽤나 많이 있는 양말은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달 있다가 결혼식을 올렸다. 나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가다 보니 양말이라는 존재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첫째로, 예쁜 레이스 양말은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것. 몇 번 신지도 않았는데 너덜너덜해졌다. 세탁기가 아니라 손빨래를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두 번째, 양말의 짝 맞추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이맘때 즈음부터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천천히 옷의 종류를 줄여나가게 되었는데, 옷의 종류가 단순해지니 양말도 그게 맞추어 단정한 것만 찾게 되었다.

특히 나는 발목까지 오는 검은 양말을 좋아해서 자주 신었었는데, 여기서 산 검은 양말과 저기서 산 검은 양말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한쌍 같은 모습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면의 짜임이라든가 미묘한 색 차이는 물론이고 밴딩의 위치들이 서로 제각각 달랐다. 실수로 짝이 아닌 양말을 신고 나간 날에는 하루 종일 발끝에서 나만 아는 불편함이 전해져 왔다. 이런 찝찝한 기분이 들지 않으려면 빨래를 걷을 때 양말 짝을 잘 맞추어야 했는데 이게 참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박람회에 구경 갔다가 <보풀이 나지 않는 양말>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침 집에 있던 양말들이 하도 신어서 하얗게 보풀이 올라오고 있던 게 생각났던 터라 시ㅡ원하게 똑같이 생긴 검은 양말 네 켤레를 구입하였다.

헌 양말이 있는데 새 양말이 들어오면 이전의 짝 맞추기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신고 있던 헌 양말을 (조금 아깝긴 하지만) 이때 한 번에 전부 비우기로 했다.

그랬더니 세상에. 이후로 빨래를 하고 나서 양말 짝 맞춘다고 끙끙대는 일이 싸악 사라졌다. 아니 이렇게 편할 수가? (물론 남편 양말과 아이 양말은 여전히 짝을 맞추어야 했지만.)



짝 맞추지 않는 양말에 대한 편리성이 너무 대단히 좋아서, 아이 양말도 통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커서 양말을 교체해야 할 시기가 오자, 나는 인터넷에서 아주 똑같이 생긴 회색 양말 5켤레 세트를 주문했다.

희한하게도, 아이 양말은 마트나 옷가게에서는 똑같은 양말만 묶음으로 팔지 않는다! 꼭 색이 다른 양말 3~4켤레 세트로만 판다


이제 빨래 정리할 때 까만 건 내 것, 회색은 아이 것. 갤 필요도 없이 같은 양말끼리 모아서 차곡차곡 쌓아두면 양말 정리 끝이다.


아이가 쑥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었던 해에 급히 외출을 한다고 손에 잡히는 대로 양말을 신고 나갔다가 돌아와서 보니 회색인 아이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렇다. 마냥 작은 줄만 알았던 아이의 발이 이제 나만큼이나 커져 있던 것이었다.

마침 아이의 양말이 닳아서 구멍이 뚫리고 있었던 터라 양말 교체를 해야만 했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들어서 아이에게 "너 엄마랑 같은 양말 신어보는 게 어때?"라고 물으니 좋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마침 나의 양말 4켤레도 5년 넘게 매일매일 신었더니 보풀은 나지 않았지만 슬슬 구멍이 뚫리고 있던 참이었던지라, 새롭게 <보풀 없는 검은색 단목양말> 7켤레를 새로 구입하였다.


빨래를 하고 난 뒤 검은색 발목 양말만 쏙쏙 골라서 작은 바구니에 잘 담아두면 그것으로 내 양말, 아이 양말 정리는 한 번에 끝. 신을 때에도 모두 똑같은 색 양말이므로 손에 집히는 것 두 장 아무거나 잡으면 되었다. 솔직히 양말 하나가 구멍이 나거나 사라져도 문제없다.

아들이 조금 더 큰다면, 아마 아빠와 양말을 공유하면 될 것이다. 이제야 세 돌 지난 딸도 큰다면, 그땐 나와 양말을 공유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옛날의 나처럼 알록달록 양말을 좋아해서 모으는 일도 있겠지만, 단정한 까만 양말이 필요하다면 난 언제든 내 것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


남편과 아이들의 의견이 없는 나만의 미래 계획에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양말을 통일하면, 편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발끝까지 멋쟁이 타이틀'은 포기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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