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기준 최고의 육아템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의 크기는 15평,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한겨울이라도 남서향 창문에서 들어온 햇볕이 주방 끝까지 닿을 정도로 작은 집.
침실은 매트리스 하나 두면 꽉 차는 크기였다. 남들은 일부러 침실에 침대만 둔다는데 이 집에서는 수면에 집중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조금이라도 집을 더 넓게 쓰고 싶어서 침대 프레임과 소파를 없앴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침대나 패밀리침대를 사고, 수유의자를 산다는데 우리 집의 행보는 정 반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집에 여윳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터넷에 '출산 준비 리스트', '신생아 육아템'을 검색하면 끝도 없는 리스트가 펼쳐진다. 그중 최상단에 위치한 아주 몇 가지만 빼놓고 나머지는 패스, 패스, 패스... 아기침대, 기저귀갈이대, 트롤리, 장난감보관함, 역류방지쿠션, 바운서, 아기매트 등등. 누군가에게는 필수템이라고 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한 채 신생아 시절이 지나갔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이것들 전부 없이 하는 육아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애초에 사용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쓰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는 못하겠다. 다만 이 물건들을 전부 들였을 때 거실이 얼마나 좁아질지 청소가 얼마나 복잡해질지를 생각한다면 그냥 차라리 없이 살았던 것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 후 꽤 텀을 가지고 둘째 육아를 했다. 당시 첫째와 분리 목적으로 아기침대, 먼저 아기 낳은 친구가 물려주어서 역류방지쿠션을 써 보긴 했지만 그 외에는 여전히 마련해두지 않았다.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나고 보니 아기침대와 역류방지쿠션 둘 다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다만 딱 하나 써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워터탭, 아기비데라고도 불리는 것이었다. 워터탭은 기존 세면대에 붙이기만 하면 물줄기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주는 장치로, 위로 분사되는 물을 이용하여 아기 엉덩이를 씻기기 편하기에 '아기비데'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물티슈를 많이 쓴다는 말을 들었더래서 아기 응가는 무조건 물티슈로 처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키울 때는 아기 엉덩이에 물티슈를 대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로 닦아내는 편이 훨씬 깔끔하고 편했기 때문이다. 물론 화학성분이나 방부제, 미세플라스틱이 신경 쓰이는 것도 한몫했다.
다만 아기 엉덩이를 닦을 때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손바가지로 퍼다가 닦이는 것은 좀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다.
(첫째) 아이가 기저귀도 떼도 스스로 변기에 앉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워터탭이 절찬리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아기비데'라는 별명이 붙은 데에는, 이 탭이 물줄기를 위로 솟구치게 하기 때문에 손바가지 같은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데에는, 그 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간간이 들려오는 말이, 이 워터탭이 아기 엉덩이 닦을 때만 쓰는 게 아니란다. 물줄기가 위로 한줄로 쭉 올라오기 때문에 양치질을 할 때 양치컵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마침 양치컵의 빨간 물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으므로 워터탭의 효능(?)에 눈길이 갔다. 앞으로 양치컵 교체하는 비용과 물때와 씨름하는 나의 노고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한 번쯤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검색창에 워터탭을 입력하니 모양도 가격도 제각각으로 나와서 그냥 느낌이 오는 것 아무거나 구입을 해 보았다.
세면대에 설치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기존 수전 토수구의 필터를 빼낸 뒤 분사방향을 조절하는 워터탭 본체를 부착하면 되는 형식이다. 10분도 되지 않아 양치컵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실사용을 해 보니 장점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제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헤드를 요리조리 움직이니 세면대를 구석구석 닦아내기에도 그만이었다. 오호라!
워터탭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을 때였다. 일단 양치컵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니 양치컵 살균소독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가족끼리의 교차감염도 염려되는 부분인데 아예 입이 닿는 부분이 없으니 확실히 신경이 덜 쓰였다. 만약 가족 수가 많은데 각자의 양치컵을 사용하는 중이라면, 워터탭 하나로 욕실의 많은 물건을 비워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워터탭 설치 후 약 1년 반 후,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드디어 워터탭은 '아기비데'라는 별칭의 역할도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신생아 머리를 감길 때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서 해야 하는데 세면대에서 서서 머리를 감기니 허리와 무릎이 살 것 같았다. 물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직관적으로 보이니 신속 정확 샴푸 가능. 아기 좋고 나도 좋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육아는 템빨>이라는 MZ세대 중에서 '없이도 다 키울 수 있다!'의 계승자. 그래도 이 수전만큼은 육아필수품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 바로 나다. 아기가 어리면 어린 대로, 크면 큰 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욕실에서 그 꼴 보기 싫은 빨간 물때 낀 양치컵들을 치울 수 있으니. 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