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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도 미니멀하게!

by 미니멀파슈하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별똥별은 우주에 있는 운석의 파편이 지구의 중력에 의해 대기권으로 끌려 들어오며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불타는 현상이다. 상황에 따라 떨어지는 속도는 다를 수 있지만, 보통 시속 수만 km에 달하며, 육안으로 보면 몇 초 동안 반짝이는 정도로 관측된다.


동전 던지기, 물 떠놓기, 돌탑 쌓기 등등 수많은 소원성취 필승법 중 <별똥별에 소원빌기>가 단연 눈에 띄는 이유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도 빌 수 있을 정도라면 평소에도 절절히 외우고 있을 간절함 있기 때문 아니겠냐는 말을 어디서 듣고 나니, 소원을 빌 순간이 왔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면 바로 이걸 외쳐야지, 딱 정해놨다.



가족행복
세계평화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별똥별이 아니라 별똥별 할아버지가 와도 재빨리 읊조릴 수 있을 것 같다. 유성이 떨어지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해 낼 수만 있다면야.


하지만 이 간단하고도 단순해 보이는 사자성어 이면으로 나의 욕망은 그득그득 차 있다. 일단 가족행복. 이 단어 안에는 다음의 가치가 포함된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건강할 것

학생 또는 직장인으로서, 부모 또는 자식으로서의 본분을 다 할 것

나보다 가족을 먼저 챙길 수 있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것

가족이 원하는 취미생활을 공유하고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을 것

심각한 걱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을 것

원하는 삶의 목표를 명확히 알고 그에 집중하는 기쁨을 알고 있을 것

인생의 고난은 '흠, 어떡하지.' 정도로 넘길 수 있을 정도만 갖고 있을 것



아이가 학업에서 굉장한 두각을 드러내어 하버드냐 옥스퍼드냐 고민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고(물론 만약 아이가 이걸 진심으로 바라서 이 고민을 하는 날이 온다면 그 또한 축복할 일이다만), 내가 갑자기 복권에 연속 당첨돼서 깜냥에도 없는 돈이 통장으로 굴러들어오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 가족 모두 하하 호호 웃을 수 있고, 고민이라곤 오늘 점심 뭐 먹지 정도로 치우고, 그러나 짬짬이 삶이란 무엇인가 고뇌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가족행복>의 실체인 것이다.


이 수많은 가치를 실체로 이루기 위해선 내가 따로 해야 할 일도 많다. 몸을 위해 식생활을 다듬고 땅을 밟아주고(운동하겠단 소리다), 마음을 위해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사색도 해야 한다. 그저 내가 엮은 실타래가 멋진 줄기를 사고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약간의 행운을 별똥별, 동전, 물, 돌에게 빌려오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에게 4글자로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다고 손가락질하지는 말아 달라.




반면 세계평화는 내 의지보다는 행운의 힘이 조금 더 필요하다. '소원을 빌 일이 생겼는데 잘 생각이 안 나면 무조건 <가족행복> 다음으로 <세계평화>를 외쳐야겠다고 처음 정했을 때는, 그저 어렸을 때 읽었던 정의의 사도ㅡ만화 주인공의 오마주 정도였다.


하지만 팬데믹의 시기를 겪어보니, 세계의 평화가 실로 나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내가 세계평화를 위해 행동한 것이라곤 소원을 비는 순간 <가족행복> 부록 느낌으로 <세계평화>라고 외친 게 전부이므로 참으로 미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세계가 평화롭지 못해서 나에게 끼친 불편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마 팬데믹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것이다.


일단 전염병 때문에 그 좋아하는 여행을 하지 못했다. 바닷바람의 짭짤한 냄새를, 동남아의 이국적인 향신료 맛을, 지중해의 바늘 같은 햇살을, 겨울에 느껴보는 뜨끈하고 습한 바람을 아이에게 선물할 수 없었다. 또 전쟁이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 기름값 상승, 물가 상승으로 예전과 같은 돈을 쓰고도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다. 특히 외식할 때 절실히 느낀다. 불안정한 환율은 어떤 식으로든 불안의 형태로 바뀌어 우리의 삶에 침투해 들어왔다. 하지만 팬데믹도, 전쟁도, 유가변동도, 환율도 내가 뭘 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러니 다들 만약에 소원을 빌고 여유가 조금 있다면 세계의 평화도 함께 빌어달라. 나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 그래도 효과는 좋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미니멀하면서도 맥시멀한 소원은 급히(?) 소원을 빌 순간이 오면 참으로 빛을 발했다. 유서 깊은 성당이나 종교적 의미를 담은 동상 앞에서, 동전이 떨어져 있는 호수나 돌탑 같은 곳에서도 말이다. 이상하게 그런 곳에 가면 말문이 턱 막히고 마는데 그럴 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리 정해둔 이 소원 구절을 끌어온다.



이번 추석에도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랐다. 추석 당일에 장 보고 돌아가는 마트 옥상 주차장에서 달을 만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별 다른 말이 생각나질 않아 <가족행복 세계평화>를 속으로 외쳤다. 아이도 달을 보고 굉장히 만족해하며 차에 올라타길래 무슨 소원을 빌었냐니까 '비밀'이란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이미 가족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빌었다. 내 소원에는 무조건 네가 들어가 있으니. 너의 소원은 이중으로 접수되었단다. 이렇게 간절히 빌었는데,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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