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버린 항아리는 되돌릴 수 없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눈치를 받으며 억지로 넘긴 음식들로 속이 울렁였다. 스트레스로 인한 두동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며칠 째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래도 한 명뿐이라지만 처음보다는 나아진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다리가 좋지 않아 거의 하루종일 앉아만 있어야 했던 아이였다. 친절한 성격으로 어눌한 내 독일어를 이해해 줬다. 그 덕에 우리는 매일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며칠 뒤 그 아이가 나갈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아.
무언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
“잘 지내.”
가지고 온 짐을 챙겨 병원을 나가는 뒷모습에 심장이 뛰었다.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이곳에서 정해놓은 몸무게를 넘으면 되는 것이다. 기준은 키를 기준으로 흔히들 말하는 BMI 지수의 정상 범위 안에 드는 것.
나는 언제쯤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 것인가. 한 달에 대략 3kg이 증량했고 지금까지 총 7kg이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40kg조차 되지 않는 무게, 정상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참이나 남은 숫자였다.
반년 동안 이어진 병원 생활은 내 정신을 점차 갉아먹었다.
그래. 이것은 내 잘못에 대한 처벌이었다.
몇 날 며칠이며 밤마다 입을 막고 고통을 토해냈다.
포근했던 침구는 언젠가부터 물에 빠진 듯 축축하기만 했고, 눈가의 붉은 기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깊은 어둠은 유일한 나의 친구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라.
그리고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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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일주일에 단 두 번뿐인 병문안이 가능한 날이었다. 굳이 달랐던 점을 뽑자면 그날따라 내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병문안을 온 사람이 아빠가 아닌 엄마였다는 점.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거의 두 달 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그리 반갑지가 않았던 것은 얼굴을 보자마자 이어지는 엄마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라 장담한다.
“살 좀 쩠네?”
몇 달 만에 본 딸 얼굴에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말이 정령 이것뿐이었을까. 하지만 내 감정과는 달리 엄마의 입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몸무게는 얼마나 올랐냐,
남기는 거 없이 전부 다 먹고 있냐.
힘겹게 버티고 있던 항아리에 거대한 충격이 가해졌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째깍이는 시계 초침이 머릿속에 울렸다.
엄마를 집에 보내면서까지 부글거리는 속을 잠재울 수 없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음식을 집어넣고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몰아쳤다. 과연 오늘 온 것이 엄마가 아니았다면 어떠하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병문안 따위 오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에 날카로워진 신경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한번 금이 간 항아리는 그 안의 내용물을 붙잡을 수 없었다.